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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다. 참 오랜만에 어린아이들이나 읽을성싶은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어라?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 어른 책보다 더 어렵다. 글자만 있는 책보다 어렵다. 쪽수도 적고 그림 설명도 많은데 왜 이리 어려운 걸까. 그렇다고 난해하다는 뜻이 아니다. 죽 읽으면 되는 책이 아니란 뜻이다. 내용을 파악하면 되는 책이 아니다. 책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답을 못하고 넘겨야 하는 것도 있다.

독일의 작가 안체 담의 <왜 거짓말을 할까?>는 내겐 어려운 책이다. 아마 내게 익숙한 도서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책의 표지에 있듯 '토론이 되는 철학 그림책'이란 부제에 충실해서 그럴 수도 있다. 책은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의 난맥을 발견하게 했다.

철학이 그리 쉬운 분야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토론이라니? 특히 거짓말이란 주제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어떤 이는 거짓말을 하는데 진실보다 더 진실하게(?) 한다. 어떤 이는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보다 더 거짓말처럼 한다. 그러니 거짓말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상황 증거는 그가 범인이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본인은 딱 잡아뗀다. 언론은 뇌물이 의심스럽다고 보도하고 준 사람은 돈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어느 누구에게 단 한 푼도 안 받았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스토리가 이렇다 보면 거짓말과 참말의 구별이 쉽지 않다.

질문 48가지가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왜 거짓말을 할까?> (안체 담 글·그림 | 김영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017. 9 | 111쪽 | 1만3000 원)
 <왜 거짓말을 할까?> (안체 담 글·그림 | 김영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017. 9 | 111쪽 | 1만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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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체 담은 끊임없이 거짓말과 진실에 대한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일테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할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까?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될까? ...

거침없을 뿐 아니라 쉴 사이 없이 퍼붓는다.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림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책이 어렵다. 쉼이 없는 질문공세 속으로 빠져들었다면 나처럼 어떤 독자도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냥 그림 한 번 쓱 보고 몇 안 되는 글자 읽어 내려가면 이처럼 쉬운 책이 없을 것이다.

저자 안체 담은 논픽션 그림책의 대가다. 그는 독일 태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였다. 네 명의 딸의 엄마로서 딸들을 키우며 터득한 경험과 지식으로 그림책을 내 많은 독자층을 가진 인기 작가다. 한국에 소개된 작품들만 해도 <무 - 없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7은 많을까요?>, <너는 누구니?> 등이 있다.

저자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그림책을 내면서 무거운 주제인 철학적 명제를 서슴지 않는다. 답을 쉽게 노출시키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삽화, 구성, 그림 등을 통해 독자 스스로 답을 유추하도록 유도한다. 쉽게 말하면 정답이 없는 질문들의 나열로 책이 엮어졌다.

<왜 거짓말을 할까?>는 철학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이다. 책을 완독한 후에 거짓말을 하며 사는 게 괜찮은지 자숙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고 나면 무엇인가 가슴에 남는다. '질문을 통해 배운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거짓말을 할까?"(6쪽)

이렇게 질문하고는 여러 상념에 사로잡힌 얼굴들의 모습을 책장 한 가득 그려놓았다. 웃는 사람, 찡그린 사람, 곱슬머리, 안경 쓴 사람, 남자, 여자, 어린아이, 노인...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일생에 한 번쯤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독특한 매력이 여기에 있다.

거짓말 하는 '거짓말 안 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난 어렸을 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11쪽)
이렇게 말하며 어린아이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당당한 어른의 모습(그림) 앞에서 독자는 무얼 생각할까.
 “난 어렸을 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11쪽) 이렇게 말하며 어린아이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당당한 어른의 모습(그림) 앞에서 독자는 무얼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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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11쪽)

이렇게 말하며 어린아이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당당한 어른의 모습(그림) 앞에서 독자는 무얼 생각할까. 나는 책 내용이 진실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도덕, 윤리 그리고 철학적 상상,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질문이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이 독자의 지적 상상력에 날개를 단다.

인간이 인간인 게 무엇 때문일까. 참 무거운 질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답이 있는 질문이다. 동물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러나 법에 저촉되어 끌려가는 이들의 면면을 전해주는 매스컴 속의 인간들은 동식물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인간에게 도덕과 관용에 대해 생각하는 절대 권력을 줘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거짓말에 대한 토론의 장을 활짝 열고 있지만 이는 순수한 어린이들이나 어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 어린아이들조차도 순수하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 진실과 거짓이 서로 어울리며 상생하는 것 같은 시대,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진실이 묻히는 시대, 권력자의 거짓은 진실이 되고 추종자의 진실은 거짓이 되는 시대... 그래서 더욱 이런 논의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탄핵된 전직 대통령은 자신은 사익을 위해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더니 느닷없이 40억이라는 돈이 당시 청와대로 흘러들어갔다는 증거가 나온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시쳇말로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시대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더욱 거짓말에 대하여 무한상상이 필요하다.

저자는 그래서 애써 "진실과 거짓을 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라며, 1909년 북극 탐험 사진을 보여주며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을 정복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오늘날에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조차 힘들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낳을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더 이상 증명할 수가 없지"라는 말이 참 공허하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공방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더욱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시대적 필연성일 것이다. 정답이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론을 내야 한다. 그러기에 책의 주제는 영원히 인간 삶의 중심주제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진실하게 사는 건 중요하다. 그러기에 어린이 그림책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 특히 늘 진실공방의 현장으로 변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일독하기를 권한다.

저자는 그래서 애써 “진실과 거짓을 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라며, 1909년 북극 탐험 사진을 보여주며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을 정복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오늘날에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조차 힘들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낳을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더 이상 증명할 수가 없지”라는 말이 참 공허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그래서 애써 “진실과 거짓을 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라며, 1909년 북극 탐험 사진을 보여주며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을 정복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오늘날에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조차 힘들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낳을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더 이상 증명할 수가 없지”라는 말이 참 공허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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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왜 거짓말을 할까?> (안체 담 글·그림 | 김영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017. 9 | 111쪽 | 1만3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왜 거짓말을 할까? - 토론이 되는 철학 그림책

안체 담 지음, 김영진 옮김, 스콜라(위즈덤하우스)(2017)


태그:#왜 거짓말을 할까?, #안체 담, #김영진, #진실과 거짓,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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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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