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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존경, 애정, 감사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 물건을 건네줍니다. 우린 그것을 선물한다고 하죠. 최근 지인 분에게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 선물에는 환경 이슈에 관심 있는 동네사람을 사귀게 되어 반갑고 친근하단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책 제목도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입니다. 알고 보니 <딴지일보> 연재 글을 엮어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반말체 글이 생각보다 잘 읽혔습니다.

저자는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energy transition)이 시대적 과제라 합니다. 현대 사회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근대 산업혁명이 현 도시문명의 시발점이기 때문이죠. 인류는 저때부터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수요-공급 체계 위에 발전을 거듭했죠. 그리고 어느덧 21세기가 도래했습니다.

에너지(전기) 없는 사회를 한번 상상해보세요.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사회 전역에 큰 패닉이 발생할 겁니다. 저의 경우는, 은행에 저축해둔 내 푼돈의 안전, 1시간 반 걸리는 학교까지의 이동, 매주 손꼽아 기다리는 MBC 무한도전 시청, 냉장고에 쟁여둔 일용할 양식의 상태 등에 머리가 아플 것 같습니다. 전 이미 에너지 중독자입니다. 독자 분들은 어떠신가요?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표지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표지
ⓒ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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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에너지 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남용한 탓에 지구 환경이 나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본디 태양의 햇볕은 지구를 생명체가 살기 좋게 적당히 데웁니다(태양 복사 에너지). 지구는 받은 만큼의 에너지를 다시 우주로 방출하죠(지구 복사 에너지).

우리 몸이 평균 36.5도로 유지되는 것처럼 지구도 이 과정을 통해 온도가 일정해집니다. 알려진 바로는, 약 6천 6백만 년 전에 발생한 5차 대멸종 이래 온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지구 생명체가 생육하고 번성했던 것이죠.

그런데 화석연료 남용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란 악재로 닥쳐왔습니다.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대기를 떠돌면서 빠져나가야하는 에너지를 지구 안에 가두는 것이죠.

엄동설한의 비닐하우스를 상상해보면, 비닐이 온실가스, 따뜻한 하우스 내부가 지구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구 자정능력이 원체 우수하니까 온도가 조금 올라가도 금방 또 낮아집니다. 인간 특유의 '망각 메커니즘'도 한 몫 하죠. 며칠 황사, 미세먼지로 극심한 고통을 받아도 대류현상, 즉 바람 한 번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살잖아요.

하지만 만약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온도가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인류는 에어컨을 틀면 되는데, 공존하는 생명체들은 어떡하지요? 저자는 섭씨 2도를 넘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경고합니다. 지구의 모든 자연ㆍ생태계 요소는 얽히고설켜 있는지라 약간의 온도 상승으로 장마는 희미해지고 게릴라성 집중 호우가 늘어나며 해수면 상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막화까지 심화된다는 것이죠.

그 결과, 저자는 세계 전역은 농업생산 피해, 병충해 증가, 주민이주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진단합니다. 예전에도 그랬다고요? 가파른 상승치를 보이는 환경재난의 빈도와 강도 통계를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한편 지구온난화라면서 겨울은 더 추워지는 모순적 상황은 뭘까요? 지구 기후가 이렇게 변화하는데 북극 시베리아 한파도 가만히 있을 위인이 못되니, 남하하여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따라서 학계, 언론에서 지구온난화란 용어는 이제 잘 안 씁니다. 대신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인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현재 상황을 표현하고 있죠,

저자는 국제연합 유엔(UN) 내 저명한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5차 기후변화 보고서를 주목합니다. 참고로 이 유엔 조직은 세계평화를 위한 노고를 인정받아 2007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 집단답게 요즘 말로 근거를 갖고 '팩트폭력'을 행사했는데 그 중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로 초래된 기후변화는 수 세기가 지나도 회복될 수 없는 비가,역적(irreversible) 특성을 지녔고,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 평균 기온은 최대 4.8도 상승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는 저한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류와 지구의 전례 없던 생존게임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화석연료를 안 쓰자니 금자탑을 쌓은 인류문명이 붕괴할 판이고, 계속 쓰자니 지구 전체가 초토화될 지경인 거죠. 하지만 저자는 이 비극적 상황을 타개할 대안이 있다고 합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에너지 전환을 하자는 것이죠.

우리 인류는 두 가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태양, 바람, 지열처럼 자연에 무한대로 존재하는 '천연에너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 질량 대비 가장 큰 상업적 에너지로서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는, 첨단 과학기술의 상징인 '핵발전(원자력) 에너지'입니다. 저자는 이 중에서 핵발전의 민낯을 까발리는데 열중합니다.

특히나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 원전수출 신화의 신기루였습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2009년 한국전력과 UAE(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 사이의 계약 성사 배경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당시 최종 입찰 경합을 벌인 곳이 프랑스-일본 합작기업, 미국-일본 합작기업, 한국기업(한국전력)이었는데, 프랑스로 형세가 기울자 미국 정부가 지원사격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당시 주아랍에미리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미 의회에 제출한 문건을 보면 "미국의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컨소시엄일 경우 어느 쪽이든 미국에 이익이 될 것이며, 미국 내 고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정말 미국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그 후 한국이 원전 수주했단 소식을 저자는 들어본 적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근본 원인을 원천기술로 꼽습니다. 실제 한국전력이 건설 중인 신고리원전과 신한울원전의 APR-1400(개량가압경수로)에 대한 원천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웨스팅하우스의 '허락'과 재실시(원자로의 제3국 수출)에 대한 '금전적 보상' 없이는 '수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덧붙여서 웨스팅하우스 대주주는 일본 도시바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 사태는 잘나가던 원전 업계에 찬물을 끼얹은 사태라 저자는 진단했습니다. 실제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100배 이상의 방사능에 유출되었고, 반경 20km는 죽음의 지역으로 전락했으며 정부 추정 손해배상액만 52조원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원전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원천기술 보유국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산업을 견인 중인 미쓰비시, 도시바, 히타치는 각각 프랑스(아레바), 미국(웨스팅하우스), 미국(GE)와 연합하여 세계 원전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핵발전 역사를 듣고 나니 원전수출에 정부 차원에서 외교, 국방, 개발원조 등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는 데 고개가 끄덕입니다. 국가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줄 큰 단위의 금액, 인력이 투입되는 역대급 사업이기 때문이죠. 이런 황금알을 낳는 원천기술 보유국 대부분(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등)이 원전과 에너지 전환 사이에서 눈치 게임하는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자유주의 체제에서 산업계의 관성은 후쿠시마 사태 같은 국가재난과 피해 사실을 덮을 정도 우리 사회에 깊게 잠식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한 학습효과와 규모의 경제가 이 관성을 깨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예로, 1954년 첫 실리콘 태양전지의 와트당 286달러하던 가격이 우주개발 기술 향상으로 1970년대 초 100달러로 낮아졌고, 석유파동 이후 대체에너지의 관심과 2008년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 보급으로 3.37달러, 최근에는 최저 0.343달러까지 기록했다는 것이죠.

돈 냄새 잘 맡는 미국 투자 자문ㆍ자산관리 회사 라자드(Lazard)나 독일프라운 호퍼 연구소(Fraunhofer ISE)의 자료를 조사해보니 이미 태양광은 (정부 보조금을 빼고 계산한) 핵발전 보다 전력가격 낮은 상태라고 저자는 밝힙니다.

국내 상황이 궁금하여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팀이 최근 발간한 <대한민국 2050에너지전략> 보고서를 들춰봤습니다. 상기 보고서들 보다 약한 톤이지만, 태양광 발전이 핵발전과 경쟁 가능 수준에 근접했고, 2020년 전후엔 핵발전이 가장 비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외 막론하고 재생에너지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될 참인 겁니다. 주판알을 튀겨봐도 재생에너지가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탈원전 선포한 독일과 유럽연합의 전투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행보가 이해됩니다.

그런데 세계 흐름과 달리 국내에선 핵발전 옹호 목소리가 이다지도 클까요? 저자는 '정책 방향'을 문제 삼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전기요금 3.7%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징수되어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언론광고비로 쓰인단 사실을 아시나요? 게다가 전 정부의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환경부, 국토교통부에 할당된 에너지 관련 회계예산 지출액을 보면 모든 에너지원 중 핵발전이 가장 으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 정책이 핵발전 위주로 돌아가니 다른 에너지원의 기술, 확대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그의 진단은 타당합니다. 또한, 90% 이상 에너지원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우리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우리 기저전력의 석탄과 핵발전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라는데, 그 실상은 어떨까요?

경북 경주가 유치한 '중ㆍ저준위' 핵폐기물장은 1989년부터 전국 각지에 심각한 사회갈등을 폭발시킨 장본인입니다. 핵폐기물장 설비, 관리ㆍ유지비용에 들어간 실질적 비용은 5조원이 넘는다고 저자는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유치지역 특별지원금은 3000억 원, 지역지원사업비는 3조 2000억 원이라 하니, 대한민국 한 국민으로서 미래가 두려워집니다. 사용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핵폐기물장은 아직 지역선정 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수도권의 포화상태인 생활 폐기물 매립지 확보에도 쩔쩔매는데 핵폐기물 부지 추가 확보는 어찌해야할까요. 경제적으로 환산조차하기 불가능한 사회갈등과 또 다시 부어야 할 지역 지원금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요. 홍종호 교수 연구팀은 현 전기요금은 이런 '사회적 비용(+처리비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핵발전이 유지되는 한 현 세대, 또는 다음세대는 상상 못할 누진세를 얻어맞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내민 당근은 총 17개 원전 건설에 참여했던 독일의 지멘스社 사례였습니다. 이 회사는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원전사업에서 선회하여 '단계적 폐쇄' 기술과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덴마크처럼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 뒤처지는 것은 막아보자는 그의 호소를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불모지가 된 토양 위에 정부는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의 수출 토대를 다져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일군 신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부터 국가적 비전을 갖고 전국 인터넷망 확충을 통해 유비쿼터스 시대의 기틀 쌓아 IT 강국으로 거듭나고 그 혜택을 받는 현재까지 많은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는 그 이후를 위해 과거처럼 어떤 거시적 안목을 갖고 준비해 왔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화석연료, 원전에 매몰될 동안 중국과 인도가 재생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할 동안 말입니다.

저자는 원천기술도, 자금도 부족한 우리나라가 각고의 노력 끝에 상당한 핵발전 기술을 보유했단 사실에 존경을 보냅니다. 그래서 이 소중한 자산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골경지신(骨鯁之臣)입니다.

개인적으로 조사해보니 2017년 4월 기준으로 30개국에 449개의 원자로가 존재하고, 15개국에 60개의 원전이 건설 중입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많은 시설의 핵폐기물을 누군가는 처리해야하고 수명 다한 원전은 철거될 것입니다. 이 기술은 각광받을 것이고, 많은 부를 창출할 것입니다. 인적 자원밖에 없는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대체 에너지원으로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요?

현대문명을 비판하며 '3차 산업혁명' 개념을 소개한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 교수는 "쇠락하는 2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기술, 인프라 체계에 갇히길 원하는가? 아니면 떠오르는 3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기술, 인프라 체계로 이행 중이길 원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환경ㆍ에너지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아는 내용이겠거니 선물 받은 책이니 형식 상 훑으려 했습니다. 근데 이 책은 감동의 도가니 그 자체였습니다. 논문 수준의 깊고 방대한 내용이 대중에게 쉽게 읽히도록 한 자 한 자 숙고하여 눌러 쓴 저자의 노력이 글 곳곳에 묻어나 있었습니다.

글쓴이는 핵발전의 과학적 원리를 소개한 후, 인류 에너지 역사에서 핵발전의 탄생과 현재까지의 전개 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폈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드러난 문제점과 한계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대안 격으로 재생에너지 전환 개념을 하나하나 짚어줬습니다. 과외 선생님처럼 하나씩 상세하게 떠먹여주니 계속 곱씹게 됩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혼자 알기엔 아까운 내용이었습니다. 국내 핵발전 공론화 논의가 치열한 상황에서, 왜 핵발전은 안 되는지, 우리가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자의 견해를 일부분이나마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20일에 공론화 숙의 결과 나온다고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구입하셔서 읽어보시면 생각 정리에 도움 되실 겁니다. 지인과 함께 읽어보시면 더 좋습니다. 가을은 어쨌거나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 독서칼럼의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 -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

신동한 지음, 생각비행(2017)


태그:#왜에너지가문제일까, #신고리공론화, #에너지전환, #탈핵운동, #원자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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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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