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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자들의 로망은 오스트리아에서 일본인 아내와 사는 것이다."

독일 남자들은 은퇴하고 오스트리아로 귀농하는 게 소망이라고 한다. 순종적인 일본인 아내와. 한 시대를 풍미한 독일의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도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아내에 대한 로망은 선뜻 이해가 안 되지만 오스트리아에 살고 싶은 소망은 이해가 된다.

오스트리아는 우선 알프스가 연출하고 선물하는 천혜의 자연풍광과 청정환경이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전 국토가 생태공원 같다. 그냥 사람이 사는 마을도 자연스럽게 보전되어 있다. 여기에 수백년 전 신성로마제국 시절부터 전승된 농가고택 등 농촌 전통문화가 현대에 살아 숨쉰다. 게다가 모차르트, 하이든, 브람스, 슈베르트 등을 배출한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독일 남자들은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오스트리아에서도 단연 압권은 티롤(tirol)지방이 아닌가 싶다. 모든 지역이 알프스 산맥지대에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다. 먼 옛날 바다가 솟아오른 알프스 산맥 석회암 지대 지질공원의 풍광은 마치 동화나라의 수채화같다. 가령 웅장한 카이저(kaiser)산의 상서로운 자태는 그 이름 그대로 '황제'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5월에도 정상에는 하얀 눈을 이고 있으니 마치 황제가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착시될 지경이다.

이런 척박하고 기복이 심한 티롤지방에도 장인같은 농부들은 도처에 포진하고 있다. 다만 산악지형이라 농사 지을 농지도 마땅치 않고 조건마저 불리해 1차 낙농업만으로는 농가 경영이 어렵다. 그래서 치즈, 햄, 빵 등의 농식품으로 2차 가공을 하거나 3차 농박과 직판을 겸업하는 이른바 6차산업형 농가가 일반적이다.

알프스 자락 티롤 미에밍마을에 자리잡은 디스마스(dismas) 육가공농가
▲ 디스마스 농가 알프스 자락 티롤 미에밍마을에 자리잡은 디스마스(dismas) 육가공농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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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최고의 훈제 삼겹살, 디스마스 농가

오스트리아 최고의 훈제삼겹살햄 또는 베이컨(bauchspeck)을 생산하는 디스마스(Dismas) 농가도 그런 전형적인 티롤의 가족농이다. 눈 덮인 알프스 산록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해발 840m 티롤의 고지대 미에밍(Mieming)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농장은 20ha에 달한다. 하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평균 농가의 농지면적인 50ha에 못미치는 소농 수준이다. 농장주 알버 마틴(alber martin)씨는 6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티롤지방 전통방식으로 햄, 소시지 등 훈제 육가공품을 직접 수제 가공방식으로만 제조하고 있다. 2000년부터 농가에 자가도축장, 부분육 처리실 등을 설치해 훈제생햄을 자가 생산하기 시작했다.  

판매는 전부 농가 안의 직판장(hofladen)에서 직판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생햄을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굳이 시장에 나가서 좌판을 벌이거나 영업을 하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20년 넘게 이처럼' 찾아오는 손님'만 상대하는 농가직판 방식만 고집스레 고수하고 있다.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찾아올 수 있는' 직판장도 아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직판장을 열고 있다. 그것도 오후 4시간 정도만 직접 농가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에 한해 제한적인 직판을 하고 있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푼의 소득이 늘 아쉬운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의 심정으로 궁금증을 못 참고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오스트리아 최고의 육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왜 직판만 하느냐? 시장이나 마트에 나가서 팔거나 기업화, 규모화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느냐?"

 ‘욕심 내지 않는 농사를 짓는’ 알버 마틴 농장주 부부
▲ 농장주 부부 ‘욕심 내지 않는 농사를 짓는’ 알버 마틴 농장주 부부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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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먹고 살 수있는데, 왜 농사가 아닌 '장사'를?

준비했다는듯이 답은 바로 돌아왔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다.

"일단 많은 물량을 생산할 수 없어요. 오로지 스스로 농사 지어서 생산한 농산물만 재료로 사용해야 하니까요. 다른 재료는 쓸 수 없어요. 그러면 돈을 좀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정부로부터 최고의 농식품이라는 인정도 못 받아요. 무엇보다 고객의 신뢰를 잃게 되죠."

지금 농정당국에서 6차산업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국의 농업현장에 가보면 자체적인 1차 농산물 생산기반이 거의 없는 사례도 허다하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 자기 농지도 없이, 거의 외부에서 농산물 재료를 구매하는 경우다. 단지 사업의 실체는 2차 가공, 3차 유통 밖에 없는 셈인데 버젓이 6차농산업 경영체로 인증받는 경우가 흔하다. 현장에서 바라볼 때 6차산업화 지원정책의 당초 취지에 어긋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의심이 있다.

원래 6차산업화의 취지는 1차 농산물 생산기반의 농가의 소득을 제고하기 위해, 2차 가공, 3차 도농교류 및 직거래를 결합해 저부가가치의 농업을 고부가 융복합화하려는 정책목적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1차 농업이 마땅히 전체의 중심이자 토대가 되어야 한다. 만일 1차 농업의 자가 생산기반이 취약한 6차산업이란 결국 2차는 공업, 3차는 상업 또는 서비스업에 편향된 업종이 아닌가. 그건 농업이라 부르기엔 부적합한 게 아닌가.

그리고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든 두 번째 이유가 이어서 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괜히 나가서 더 팔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지금 이 정도만 해도 가족들과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데요. 왜 나가서 힘들게 고생을 해야 하죠? 왜 농사가 아닌 장사에 더 욕심을 내야 하죠?" 

예상치 못한 이유와 대답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형편이 몹시 부러웠다.

"세상에 돈을 더 벌 필요가 없다니, 돈 욕심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니."

그래서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었다. 독일이든, 오스트리아든 직불금으로 대표되는 실질적인 농업지원제도, 무상교육의 농업학교로 상징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 덕분일 것이다. 그것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의 농부들은 굳이 다른 농부와 경쟁을 하거나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설사 욕심을 부리고 싶어도 욕심을 부릴 수 없도록 법과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부들과 시민들은 한눈 팔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고, 그저 정해진 규범과 질서대로 잘 지키고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선진사회, 민주공화국인 것이다.

농가직판장(hofladen)에서 판매하는 각종 슬로푸드 육가공식품
▲ 직판장 농가직판장(hofladen)에서 판매하는 각종 슬로푸드 육가공식품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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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맛의 왕관'을 쓴 슬로푸드 

디스마스 농가의 주력 제품은 훈제 베이컨(bauchspeck)이다. 오스트리아 최고 인증 지역농특산물에게 주어지는 '맛의 왕관(Guenuss Krone)'을 수차례 수상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기업농도 아닌 일개 가족농 처지에 4성급 이상 오스트리아 최고 수준 호텔에도 납품한다고 한다.

화려한 '맛의 왕관'을 쓴 돼지 삼겹살, 훈제베이컨은 물론 훈제소시지도 일반 식품공장에서 만드는 것과 차원과 품격이 다르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자세와 철학, 그리고 가치관이 다르다. 일반 햄공장이면 2~3일이면 완성되는 것을 2주 이상 품을 들여 수제 가공한다.

하루에 5시간 훈증하고 문을 열어 환기하는 방식으로 2주 내내, 매일 반복하며 매달린다. 훈증은 오직 지역에서 자라는 너도밤나무만 이용한다. 훈증실 온도를 25℃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기술이다. 아니, 기술 이전에 정성이겠다.

농장주 알버씨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육가공 마이스터다. 마이스터라서 농업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농장으로 현장 실습 나오는 농업학교 학생들도 직접 지도한다. 마이스터인 만큼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한 육가공분야 전문 기술과 노하우는 물론, 교육자적 자질, 인성 등 3가지 조건도 갖추고 있다. 디스마스 농가의 경쟁력이자 공신력의 바탕이다. 자립경영 기반을 갖추었음은 물론이다.

알버씨의 아들은 여느 독일, 오스트리아 가족농과 마찬가지로 당연하다는듯 가업을 잇고 있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부 자격고시에 합격하고 농업마이스터 과정도 이수했다 오스트리아 가족농의 공부와 훈련은 끝이 없다. 티롤 농업회의소에서 육가공, 마케팅 등 정기보수교육과정도 이수했다. 농부인 아버지는 농부가 된 아들이 자랑스럽고 아들은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훈제 베이컨(bauchspeck)에 수여된 ‘게누스 크로네’ 인증서
▲ 게누스 크로네 오스트리아 최고의 훈제 베이컨(bauchspeck)에 수여된 ‘게누스 크로네’ 인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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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장인(Meister)이 전문 경영하는 유기농이 해답

디스마스 농가처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농가는 90% 이상 2대가 이어서 농사를 짓는 가족농이다. 가족농임에도 점점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마이스터(Meister) 과정의 농업전문대학은 농부가 되려는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몸으로 농사짓는 게 아닌 머리를 써서 연구하고 개발하는 전문농업인만이 살아남는 환경이 되고 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유기농, 친환경 농사를 철저하게 준중하고 고수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EU기준보다 더 까다로운 독일기준에 맞춰 농사를 짓고 있다. 예전에 광우병이 영국 등 유럽 전역에서 발생했을 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지 않아 그렇다는 설명이다. 오직 동물 애호적 사육원칙대로 초지와 임야에 자연방목하기 때문에 자연상태의 온갖 산야초와 유기농 자연사료로만 키운 소라서 건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오스트리아 디스마스 농가 수준의 축산명인이 있다. 정읍의 행복하누연구회 김상준회장이다.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은 "농촌진흥청이 생산을 기본으로 하면서 생산기술개발, 가공, 유통, 상품화 등 해당 분야 최고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장인정신이 투철한 자로서 농업·농촌에서 창의적인 노력으로 성공한 최고농업기술자"를 명인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김씨는 특히 '한우 사육 및 생산, 가공, 유통 등 인근 농가와 일관체계를 통한 부가가치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30여년 간 한우를 키우면서 고급육 생산이 한우농가의 살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우 종자개량과 차별화된 사양관리, 소 생리에 맞는 환경조성, 무항생제 친환경 한우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과다.

축산명인 김씨는 지금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축산농가 수준의 축산업을 경영할 수 있는 축산농부를 키워낼 교육기관을 기획하고 있다. 티롤의 디스마스 농가의 육가공 마이스터에 버금가는 육가공 장인도 양성하려는 계획이다. 일종의 농부직업전문학교인 셈이다. 가업을 잇는 후계농인 두 아들도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했다. 이렇게 우리도 농업학교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정도일 것이다. 장인이나 명인같은 전문농부(마이스터)를 키우는 교육에서부터 그 해법과 희망을 찾아야 한다. 

힌국의 축산 명인인 정읍 행복하누연구회 김상준회장
▲ 김상준 힌국의 축산 명인인 정읍 행복하누연구회 김상준회장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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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가족농가,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사회적 농부’ 이야기



태그:#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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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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