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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가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외국군과의 군사정보 공유가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이번 건은 사정이 다르다.
  •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19세기 후반 일본의 행보를 살펴보자.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러시아를 꺾기 위해 조선에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제했다.
  • 러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강요한다. 여기서 편의는 '정보'다. 일본은 이를 발판으로 러일전쟁서 승리했다.
  • 한일군사정보협정이 북한 핵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준다고? 과연 그 수확물이 한국 몫일까. 지금까지의 역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쫓겨날 처지에 놓인 집사가 집안의 열쇠와 은행통장과 무기를 들고 되레 주인을 위협하고 있다. "네 죄를 알고 그만 나가라!"는 주인의 말에 격분해, 주인을 무시하고 으름장까지 놓을 뿐만 아니라 자기 사생활의 보호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지금 그 집사는 집안의 핵심 기밀마저 외부인과 공유하려 하고 있다. 그 외부인이 지난날 주인의 원수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하지 말라며 제지하는데도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막나가는 것이다.

국정동력을 잃어 사실상 '전 집사' 처지에 놓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와중에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협정은 지난 14일 도쿄에서 가서명됐다. 정식 체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 자위대가 한국군의 정보를 공유하고 한반도 군사정보를 장악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물론 외국군과의 군사정보 공유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이게 필요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본과의 공유는 사정이 다르다. 바로 이 군사정보의 공유 때문에 우리가 일본한테 국권을 빼앗겼다. 그런 전철을 또다시 밟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박근혜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인가?

조선을 탐한 일본의 한 수

19세기 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이 조선을 빼앗으려면 두 개의 적을 사전에 제압해야 했다. 하나는 청나라, 하나는 러시아였다. 청나라는 전통적으로 조선의 핵심 동맹국이었고, 러시아는 1860년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빼앗음으로써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 뒤부터 조선 문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였다. 그래서 두 장애물을 제거해야만 일본이 조선을 차지할 수 있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한 이 해에 일본은 농민군 진압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일본군은 역시 농민군 진압을 명분으로 조선에 진출한 청나라 군대와 전쟁을 벌여 대승을 거뒀다. 바로 이 청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일본은 남은 하나의 적을 치기 위한 단계에 돌입했다.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러일전쟁을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청나라보다 훨씬 강했다.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이라 불렸다. 그래서 일본은 청일전쟁 때보다도 훨씬 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러일전쟁 당시 요동반도(랴오둥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
 러일전쟁 당시 요동반도(랴오둥반도)에 상륙하는 일본군.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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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신중함이 반영된 게 대한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 공유, 즉 한일 군사정보 공유였다. 러일전쟁이 임박한 1903년 12월이었다. 이때 일본 정부는 전쟁 방침을 확립하면서 조선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리했다.

"조선반도는 우리 국방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므로 타국이 이곳에 손끝도 대게 해서는 안 된다. 사태가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에 이르게 된다면, 먼저 조선 점령을 완결하고 이로써 우리의 근거지를 튼튼히 해야 한다. … 사전에 각종 수단을 강구해서 … 육군을 경성에 파견하여 조선 내에서 선제공격의 태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선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기 전에 조선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조선을 기반으로 선제공격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봤다. 조선을 근거지로 선제공격의 태세를 갖춘다? 이를 위해 일본은 얼마 후에 조선과 협정을 체결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1904년 2월 한일의정서다.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속 '정보 제공 강요'

한일의정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한일의정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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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반강제로 체결된 이 조약의 제1조에서 일본은 '우리를 믿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제1조는 아래와 같다.

"한·일 두 조약체결국은 항구적으로 변치 않을 친교를 유지하며,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를 확신하고 시정(施政) 개선에 관한 충고를 들을 것."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을 확신하고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런 다음, 제4조에서 구체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러일전쟁 승리를 위해 조선을 어떻게 이용하고자 하는지를 제4조에서 표출한 것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것. 대일본제국 정부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군사상 필요한 지점을 임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

외국에 나가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현지에 관한 정보다. 그런 정보의 편의를 제공하라고 가이드란 직업도 존재한다. 제4조에서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 편의 속에 당연히 들어가는 것은 정보 제공이다. 물질적 지원 못지않게 정보 제공도 중요한 편의 제공이다. 일본군의 역량만으로 알아낼 수 없는 군사정보를 조선군의 힘을 빌려 알아내고 이를 발판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수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같은 편의 제공을 토대로, 일본군은 러시아 군대가 어디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최강인 러시아를 격파하는 대이변을 연출할 수 있었다. 조선 정부의 협조가 없었다면, 일본군 단독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더는 조선에서 일본과 경쟁할 나라가 없게 됐다. 그러자 일본은 1905년에 을사늑약(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 1910년에는 조선이란 나라를 아예 없애버렸다. 한일의정서를 통해 군사정보를 비롯한 각종 편의를 제공한 것이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역사 속 '선량한 나라'는... 애석하게도 없었다

대마도의 러일전쟁 위령비 옆에서 휘날리는 일본기와 러시아기. 패자인 러시아의 깃발이 찢겨 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사진이 고르지 못하다.
 대마도의 러일전쟁 위령비 옆에서 휘날리는 일본기와 러시아기. 패자인 러시아의 깃발이 찢겨 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사진이 고르지 못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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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지금 추진하는 한일군사정보협정은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주기 위한 게 아닌가? 이 협정을 추진하는 일본과 배후에서 이를 조종하는 미국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 협정은, 일본군이 접근하기 힘든 서해 지역에서 한국군이 파악한 정보를 일본군이 쉽게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서해에서 입수되는 정보는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군에 대한 정보일 수도 있다. 일본이 이런 정보를 중국 견제에 사용하게 된다면, 한국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무런 이익도 없이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협정이 있어야 유사시에 북한군을 쉽게 제압하고 한국의 안보를 담보할 수 있지 않은가? 일본과 미국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군의 정보를 일본군에 넘겨줘 일본군이 북한군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종국에는 북한을 무너뜨렸다고 치자. 그럼 그 수확물은 한국의 몫이 될까? 당나라 태종은 신라가 백제 침공을 도와주면 백제 땅을 신라에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신라는 전쟁을 통해 백제 땅을 빼앗았다. 일본이 당나라보다 더 믿을 만한 나라일까?

한국군이 제공한 정보로 북한을 꺾게 되면,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남한까지 차지하려 하지, 북한 땅을 한국에 주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그렇게 선량한 나라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한국인들은 일본군이 군사정보의 공유를 발판으로 한국의 안보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본인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위대가 자기 나라를 자위하지 않고 한국을 자위해주리라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인지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속내는 뻔하다... 1904년의 일본의 그것과 같다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해서 전쟁 가능 국가가 되고자 하는 일본, 신(新)미일동맹을 통해 자위대가 세계 어디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만든 일본. 그 일본이 한국군의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1904년에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장악력을 높이고 일본의 영향력을 팽창하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사실상의 '전 집사' 박근혜는 국민의 권한 위임이 사실상 취소된 상태에서도 한일군사정보협정을 강행하고 있다. 주인이 반대하는 데도 그것을 밀어붙이고 있다. 물러나는 마당에 분탕질이나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 것인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그랬던 것처럼 왜 그 박정희·박근혜 부녀는 일본과의 협정체결에 이렇게 목숨을 걸까?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국민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것은 그들의 소관이 아닌 것인가?

'한일군사보호협정 가서명 강행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지난 1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플래카드 뒤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인다.
▲ "한일군사보호협정 중단하라" '한일군사보호협정 가서명 강행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이 지난 1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플래카드 뒤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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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일군사정보협정, #한일의정서, #러일전쟁, #박근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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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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