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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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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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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언론사에 이런 내용이 실린 적이 있다.

"한국계 회사에 다니는 박아무개(여·31)씨는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단체 채팅방 때문이다. 부장은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그래프)을 만들어 수시로 팀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저녁식사 시간은 물론, 주말에도 채팅 방에 팀원들을 불러 모은다. 박씨는 "가족들과 산으로 주말여행을 갔는데 통신 연결이 잘 안 됐다. 후에 답변이 없었다며 크게 혼났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2015년 11월 5일 중앙일보 미주판)

어떤가? 아주 낯익은 장면이 아닌가? 거의 전 국민이 모바일 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술적 환경에서, 퇴근 후에도 SNS나 메신저, 혹은 이메일을 통해서 직장의 업무가 연장되는 경험은 이제 흔한 일처럼 되어 버렸고,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 '연결되지 않을 권리' 입법화 예고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the right of disconnect)'를 노동법 개정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직장인들에게 근무시간 외에 직장 상사로부터 온 업무 관련 이메일이나 메시지 등을 무시할 권리를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과연 프랑스다운 발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찍이 레오넬 죠스팽 총리 체제 아래에서 지난 2000년 주 35시간 노동법을 발효시켰던 프랑스는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법 개정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5시간 노동시간 제도와 노동보호제도를 일정 부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일부 기업들의 요구에 맞춰주기 위해 엄격하다고 알려진 프랑스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를 포함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근무 외 시간에 메일이나 메시지의 수신을 거부할 권리는 노동권 보호 차원에서 이번 개정안 패키지 안에 포함된 것이다. 프랑스 노동부가 이 법안 초안을 3월에 제출하면 7월에 가서 입법화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프랑스는 연간 노동시간 1472시간(2014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나라에 속한다. OECD 평균은 1734시간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2124시간으로 멕시코(2228시간) 다음으로 OECD에서 가장 오랜 노동시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조차 사실은 절반 이하의 노동자만이 주 35시간 노동시간을 보장받고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프랑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9.5시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초과 근무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업무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이 실질적으로 주 35시간 근무 체계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엔지니어와 기술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UGIT-CGT)에서는 이런 법안이 벌써 추진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생활과 업무의 균형이 생산성 향상에 더 도움

그러면 프랑스는 오직 주 35시간 제도를 잘 지키자고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도입할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우선 건강과 웰빙을 위해서다. 근무시간 외에 일상적으로 직장 업무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해 독일 함부르크(Hamburg)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업무시간 외에 메일을 확인하거나 응답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의 일상화 등으로 인해 일과 여가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이런 경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것이 직장인들의 신경쇠약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서 더 나은 삶의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이 법안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산성이다. 한 마디로 온전한 휴식을 보장할 때 근무시간 내 업무 효율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이동통신회사 '오렌지 텔레콤' 인사책임자 부르노 메틀링(Bruno Mettling)의 주장에 따르면, "사생활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직업인이 일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업무성능을 보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프랑스 기업들은 밤사이에 아예 이메일 시스템을 중단시켜놓기도 한단다.

동시에 노동자들과 직장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사생활과 여가에 대한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아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중요하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건강과 웰빙, 업무 생산성, 노동자들의 사생활과 여가 보장의 차원에서 업무 관련 이메일과 스마트폰을 꺼둘 권리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한국 직장인 2/3, 근무시간 외에 이메일과 메시지 받아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장시간 노동국가로 세계적 이미지를 굳힌 우리나라에서 근무시간 이외 모바일 기기를 통한 '노동의 연장'이 예외일 리 없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3년 "정보통신 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직장인들이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광범한 조사를 실시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거의 2/3에 해당하는 67%가 퇴근 이후 또는 휴일에 스마트폰이나 이메일을 통해 업무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에게도 근무시간 외에 '연결'되어 초과근무를 하는 관행이 매우 일반적인 현상임을 말해준다.

또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자신의 업무가 줄기보다는 오히려 늘었다고 대답한 비율이 36.6%(증가한 편이다 29.7%, 매우 증가했다 6.9%)로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연결되지 않을 권리', '근무 시간외 업무 메일이나 메시지를 무시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근무시간 외 이메일 등의 업무지시를 받은 경험을 물은 설문에 대한 답변
 근무시간 외 이메일 등의 업무지시를 받은 경험을 물은 설문에 대한 답변
ⓒ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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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기기 발달로 인한 업무량 증감에 대한 설문 결과
 스마트기기 발달로 인한 업무량 증감에 대한 설문 결과
ⓒ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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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사회혁신 함께 가야 삶 풍요로워져

인터넷을 통한 메일과 메시지 통신의 발달, 그리고 모바일 기기의 보급에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연결'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엄청난 기술혁신이다. 그러나 기술혁신 그 자체는 저절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지 않는다. 급변하는 기술 혁신의 추세에 맞게 우리의 삶, 우리의 일을 바꾸려는 또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 바로 사회혁신의 존재 이유가 있다.

전 세계적인 정보 네트워크와 SNS의 연결로 인해 우버 택시나 에어비엔비 같은 공유기업들이 부상하고 있지만 이것이 적절한 노동권 보호와 함께 가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첨단 모바일 기기가 우리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주지만, 사생활과 직장 업무의 경계선을 구분하고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없다면, 역으로 편리한 기기가 초과노동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 생활의 보호와 노동시간의 단축은 개인화 시대의 추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엄청나게 과장하여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지금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Liberty, equality, fraternity and now, 'the right to disconnect')" 라고 표현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금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삶의 규범이 아닐까?

어쨌든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규범적으로 보장하고 인정하는 것은 틀림없이 중요한 사회혁신의 한 사례로 꼽힐 것이다. 주무 국가 조직인 국가인권위원회나, 서울시와 같은 선도적인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권리보장 방안을 설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선언적 차원에서부터라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제도적 틀이 만들어지기 이전이라도 모범적인 사회적 기업들이 이를 도입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각 개인들 역시 이제부터라도 잠들기 직전까지 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은 적어도 버리는 것이 좋겠다. 각자의 건강과 직장의 생산성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서울혁신센터 산하 '사회혁신리서치 랩'의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리서치랩의 <사회혁신 포커스>로 작성한 것을 재수정 한것이다. 또한 이 기사는 사회혁신리서치랩 블로그에도 동시게제되었다.



태그:#사회혁신, #여가,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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