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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성직자의 임무는 '십자가'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시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 그리고 초대 교회 주교들은 십자가를 피해가지 않았다.

지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에서 이뤄진 경찰의 물대포 진압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물대포를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전남 보성군 농민회 백남기 선생(69)이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전문시위꾼', '도시폭동' 운운하며 경찰을 감싸고, 다른 한쪽은 '폭력경찰', '살수테러'로 맞서며 성토한다.

2008년 장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노선을 따라 서로를 비방하는 광경은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됐다. 차라리 정치적인 대립이라면 좋겠다.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세월호 참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등 이념노선을 초월해 정부와 사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문제가 진보-보수의 대립 구도로 바꿔치기 됐다. 그리고 이런 대립을 부추기는 장본인은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여당이었다.

지금도 한 명의 생명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불법' 공방으로 날을 지새운다. 이 대목에서 어설픈 양비론은 무의미하다. 그보다 사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집단의 음모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자, 백보양보해서 백 선생이 불법시위에 가담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물대포 사용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법이 허용하는 수준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또 시위대의 불법이 문제가 된다면, 정부 정책 추진과정의 적법성 역시 문제가 돼야 한다.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자 비밀 태스크 포스를 꾸려 운영해왔고, 이는 여론의 공분을 샀다. 11.14. 총궐기에 주최 측 추산 1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건,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추진과 이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에 시민들이 분노한 결과였다.

강경진압 공방... 침묵하는 그리스도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비상시국기도회'에 입장하고 있다.
▲ 십자가 앞세우고 시국기도회 입장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비상시국기도회'에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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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념공방의 와중에 민중총궐기의 본질, 즉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재계에 일방적인 노동법 개정'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이 같은 사태 전개는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여당이 바라는 방향일 것이다.

이 와중에 그리스도교는 별 말 없다. 가톨릭 쪽에선 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이 홀로 목소리를 냈다. 사제단은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비상시국기도회'를 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정책, 경찰의 강경진압을 규탄했다.

반면 개신교계는 잠잠하다. 개신교계는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를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16일 나란히 성명을 내 "인류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과 테러, 납치와 살해는 그 어떤 목적 하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기장),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해 총기를 난사한 행위는 전 인류를 향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한교연)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나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17일 성명을 통해 경찰의 강경진압을 규탄했을 뿐이다.

정권이 힘으로 국민을 찍어 누르는 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설파했던 당시 상황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태오복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 누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입니다."

- 마태오복음 20:25~28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 누른다"는 말씀에 주목하자. 예수와 동시대인들이 말하는 '세상'의 지리적 영역이 현대인과 같지 않다. 예수가 말하는 세상은 그가 나고 자랐던 이스라엘 정도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종교권력자들은 로마 제국과 유착해 기득권을 누렸다. 가난하고 힘없는 평범한 백성들은 이중고, 즉 로마 제국의 압제와 종교권력자들의 홀대에 시달려야 했다. 예수는 이들을 섬겼고, 제자들에게도 섬기는 삶을 살아줄 것을 당부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성직자, 특히 목사와 사제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사명자들이다. 오는 12월5일 다시 한 번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만에 하나 경찰이 이번에도 강경진압을 예고한다면 목사, 사제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가장 먼저 물대포를 맞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른 예수 그리스도처럼, 엘살바도르의 군사 정권에 맞서 "교회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며 빈곤층을 지원하고 인권운동을 벌이다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주교처럼 순교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성직자들의 순교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즈음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한 칼럼입니다. 일부 내용은 수정 보강됐습니다.



태그:#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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