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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바위와 악어바위가  보이는 바이칼 언덕.
▲ 사자바위 사자바위와 악어바위가 보이는 바이칼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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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로가 없는 알혼섬은 인구가 1500명에 불과하지만 빼어난 자연경관이 바이칼에 둘러싸여 있어 여러 코스의 투어가 있다. 우리 일행은 북부투어를 하기로 했다.

24살 젊은 여성 가이드 로사는 알혼섬 출신 브리야트족이며 초·중·고를 알혼섬에서 나왔고, 수도 이르크추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로사는 알혼섬 젊은이들의 패션트렌드 군복 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젊은 여성가이드 로사는 알혼섬에서 대대로 살아왔다고 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 가이드 로사 젊은 여성가이드 로사는 알혼섬에서 대대로 살아왔다고 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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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에는 주로 미니승합차나 지프차 비슷한 낡은 차들이 투어를 하고 있다. 이르크추크나 브리야트에서 우리나라 이스타나도 여러 번 보았다. 심지어 검정색 한글 굴림체로 이마에 커다랗게 '이스타나'라고 써 붙인 하얀 차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다. 우리 미니버스를 후지르 마을에 두고 투어차량을 이용하는 이유는 이곳 가이드에게만 투어를 허용하기 때문이란다.

알혼섬에 도착한 다음날, 일행 10명과 라자 교수, 타티아나 원장, 원장 친구 가이드 로사까지 14명은 두 대의 작은 승합차에 나눠 타고 북부투어를 시작했다.

투어에 타고 다닌 차량. 저 두대에 14명이 우겨 타고 다녔다.
▲ 미니승합차 투어에 타고 다닌 차량. 저 두대에 14명이 우겨 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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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한 곳은 악어바위와 사자바위가 있는 언덕이었다. 로사는 1500명 인구 중 1200명이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살고 있고 9개의 마을 중 1인 마을이 3개라고 했다.

흙이 패이고 황량한 벌판과 구릉을 지나는 도중 자전거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숲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보았다.

황량한 구릉과 거친 길을 덜컹거리며 달렸다.
▲ 알혼섬 황량한 구릉과 거친 길을 덜컹거리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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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며 뛰어오르는 승차감은 지난 밤 2시간을 달린 덕에 익숙해졌지만 이 낡은 차가 산산조각 분해되지 않을까 걱정은 됐다.

"여기 특산물이 뭐예요? 버섯 같은 거 나지 않아요?"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철인데 비가 오지 않아 없어요."

우기인데도 비가 오지 않는 알혼섬에는 산불이 나기도 한단다. 세계 담수가 20%나 되는 바이칼이 코앞인데 가뭄이라니. 하필 가뭄에 방문해 송이버섯을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양수장 만들고 수로 확보해서 물을 퍼올릴 텐데."

내 말에 라자 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인구가 적은 곳에 효과도 미미할 터인데 돈을 투자하겠는가. 간혹 숲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알혼섬의 풍경은 누렇고 황량한 느낌이었다.

"'폭풍의 언덕' 같은 느낌이네요. 황량한 벌판과 구릉이요."
"맞아, 맞아. 딱 그 느낌이네."

홍성하(한림대) 교수가 공감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시베리아 수용소, 빼시얀카 부두에서

비닐 천막 카페와 게르. 뒷편으로 하얀 모래언덕이 보이고 수용소 자리라고 한다.
▲ 카페 비닐 천막 카페와 게르. 뒷편으로 하얀 모래언덕이 보이고 수용소 자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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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을 달려 하얀 모래 언덕을 지나고 바이칼 모래사장에 차가 정차하자 천막 카페가 보였다. 작은 게르가 옆에 있는 걸로 보아 젊은 브리야트족 부부가 숙식하며 장사를 하고 있는 듯했다.

말이 카페지 작은 냉장고에 각종 맥주, 음료수가 들어있고 과자 몇 봉지가 전부인 초라한 곳이다. 남편이 갓 튀겨낸 커다란 고기만두를 들고 와 쟁반에 옮겼다. 엄지를 치켜들고 맛있다며 사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모범생들과는 달리 땡땡이 치고 카페에 온 우리 셋은 곧 먹을 점심 때문에 만두 두 개와 맥주를 사서 카페 앞 탁자에 앉았다.

"이거 참 맛있네요."
"그러게. 정말 맛있다! 근데 맥주는 차지 않네."

젊은 여주인이 커다란 튀김만두를 집어들어 올렸다.
▲ 카페 여주인 젊은 여주인이 커다란 튀김만두를 집어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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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혜경씨와 남편 황종철 박사가 뜨거운 튀긴 고기만두를 칭찬했다. 이 작은 냉장고에 들어있는 맥주만도 수십 가지에 이를 만큼 러시아는 맥주가 다양하다. 특히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생맥주와 흑맥주는 길가의 작은 휴게소든 도시 레스토랑이든 맛이 기가 막혔다.

이곳은 스탈린 시절 시베리아 수용소가 있던 빼시얀카 부두이다. 수용소의 흔적은 콘크리트 기둥이 있던 흔적밖에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영하 30~40도로 내려가는 겨울을 보내야만 했다. 스탈린에 대한 농담 한 마디 했다고 수용소로 끌려온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금 이곳 주민은 당시 요리사로 있던 사람 1명뿐이래요."

이곳으로 바이칼 물고기 오물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 시배리아 수용소 부두 이곳으로 바이칼 물고기 오물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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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섬은 육지와 멀지 않지만 오지였고 시베리아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바이칼 특산품 오물(연어과의 생선)을 부두로 배가 실어 나르고 통조림 공장에서 죄수들이 일했다 한다.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암병동>을 읽은 기억만으로는 바이칼에도 수용소가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솔제니친이 묘사한 수용소는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곳이다. 시베리아 곳곳에 강제노동수용소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보존했다면 살아있는 역사적 유적으로 남지 않을까. 남아있다면 관광지로 개발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점심을 먹으러 알혼섬 최북단 하보이곶으로 떠나면서도 비어있는 목조가옥들과 바이칼 저 너머에 있을 자유를 찾아 이곳에서 바이칼을 바라봤을 죄수들의 모습이 떠올라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다.


태그:#알혼섬, #시베리아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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