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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집에 제비집이 세개나 된다는건 희귀한 일이다.
 한집에 제비집이 세개나 된다는건 희귀한 일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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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만해도 보기 드물었는데, 요즘 부쩍 많아졌어."

느티나무 아래 정자엔 할머니들이 앉아있다. 뭐가 많아졌단 말인가. 발걸음 속도를 늦췄다.

"박씨도 안 물어다 주면서 숫자만 많아지면 뭐해"

제비 이야기였구나. 그러고 보니 읍내에 제비들이 무척 많아졌다. 제비가 집을 짓지 않은 민가가 없을 정도다. 온통 제비들 세상이다. 어느 집엔 제비 세 가구가 한꺼번에 둥지를 틀었다. 영역다툼 때문에 한집에 한 개의 제비집이 일반적이라던데, 참 특이한 풍경이다.

3월 이른 봄, 제비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찾는다. 독특한 회귀성 때문이다. 전년도에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제비는 헌집을 보수하거나 (집이 없어졌을 경우) 그 자리에 새 집을 짓는 습성을 지녔다.

새들이 보통 마른 풀잎이나 깃털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제비는 진흙으로 집을 짓는다. 초가집이 없어진 지금, 용케도 깎아지른 듯한 시멘트 벽면에 아슬아슬하게 진흙을 붙인다.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건 사람들의 쓸데없는 기우다. 단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본 적 없다.

암수가 번갈아가며 진흙을 물어 나른다. 집짓기 공사를 급하게 진행하는 법이 없다. 자세히 관찰하면 진흙만 붙이는 게 아니다. 갈라짐 방지를 위해 마른 풀을 섞기도 한다. 하루 종일 집짓기를 하면 금방 끝낼 만도 한데, 오전 10시쯤이면 더 이상 집짓기를 하지 않는다.

게으르기 때문인 줄 알았다. 아니다. 진흙이 젖어있는 상태에서 덧붙이기를 계속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사기간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시공하는 인간들보다 낫다.

제비들은 주로 민가에 집을 짓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둥지를 트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 출입이 적은 뒷벽에 집을 짓는 것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출입구 쪽에 집을 짓는다. 왜일까.

제비는 고양이나 뱀, 쥐들이 침범할 수 없는 수직의 벽면을 선호한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새와 다른 점이다. 예부터 습성화된 사람들에 대한 무한신뢰로밖에 볼 수 없다.

농부들은 제비를 다시 불러들였다   

제비. 자연건강의 상징이다.
 제비. 자연건강의 상징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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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좋아졌기 때문일걸."

제비가 많아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내는 빤한 대답을 했다. '화천엔 군부대가 많으니까, 총소리에 놀라서 안 오다가 그래도 도시보단 덜 시끄러우니 다시 온 게 아닐까'하는 상상력 풍부한 만화 같은 말을 기대했던 게 잘못이다.

'공기가 맑아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과거 농부들은 농약을 많이 사용했다. 논두렁을 걷다보면 농약냄새가 진동한곤 했다. 풀이 날 틈이 없을 정도로 논과 밭두렁에 제초제를 뿌렸다.

풀들이 자라지 않으니 곤충도 사라졌다. 논엔 진한 녹색을 띤 벼만 무성했다. 벌레를 먹이로 삼는 개구리나 새들도 더 이상 논밭을 찾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곤충을 먹는 제비도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제비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혹자는 '사람이 뿌린 농약 성분이 제비의 몸에 쌓여 알 껍질이 얇아져 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환경문제라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농민들은 더 이상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산이 유독 많은 산골마을 화천. 농지는 전체면적의 8%도 미치지 못한다. 적은 농지. 농민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소출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무 농약, 친환경 농법만이 살 길이란 걸 깨달았다.

한두 마리를 시작으로 제비들이 날아들었다.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참새들이 부쩍 많아진 것도 이 시기다. 짹짹, 지지배배... 참새와 제비는 부산스레 아침을 깨웠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싱그러운 풍경이다.   

귀제비에 얽힌 슬픈 이야기

귀제비 모습.
 귀제비 모습.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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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밑을 지날 때 한 무리의 제비가 탁한 경계 음을 냈다. 부근에 둥지가 있다는 신호다. 자세히 보니 몸집이 좀 큰 편이다. 일반제비와 달리 꼬리 부분에 붉은 색이 보인다. 귀제비다. 지역마다 이 새를 일컫는 이름이 다르다. 굴 모양의 집을 짓는다고 굴제비라 부르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명매기, 액맥이라고도 한다. 왜 이 제비는 인가에서 떨어진 다리 아래에 집을 지었을까.

옛날 중국 명나라에 떼를 지어 귀제비들이 날아들었다. 이후 오래지 않아 명나라는 망했다. 이후 이 새는 길조가 아닌 흉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다리 아래에서 발견한 귀제비 집.
 다리 아래에서 발견한 귀제비 집.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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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이 제비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집 모양 때문이다. 일반제비는 바가지 형태의 집을 짓는데 귀제비 집은 병을 세로로 잘라 붙인 모양이다. 입구 쪽은 가늘고 알을 낳는 안쪽은 둥그렇다. 옛날 사람들은 귀제비 집이 흡사 묘지 같다고 여겼다.

이 새에 대해 사람들은 멋대로 귀제비라 말하곤 그 이름을 싫어했다. 귀자를 트집 잡아 귀신이 붙은 제비라 불렀다. 흔하진 않으나 간혹 인간들 간섭이 덜한 높은 건물 꼭대기에 집을 짓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헐어내곤 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귀제비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뱀, 고양이 등의 천적을 싫어하는 건 일반제비와 다르지 않다. 별수 없이 다리아래 또는 어둑한 터널 안에 둥지를 틀었다.

이 또한 안전한 곳이 아니다. 전설을 기억하는 동네 아이들은 귀제비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댔다. 귀제비는 운이 좋아야 겨우 번식을 하는 운명에 처했다.

귀제비에 대한 전설. 미신이란 걸 알면서 아직도 농촌에선 귀제비에 대해 그다지 관대하지 못하다.

서울 도심에서 제비를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어느 가게 입구에 둥지를 튼 제비. 알품기에 한창이다.
 어느 가게 입구에 둥지를 튼 제비. 알품기에 한창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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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산골마을을 중심으로 제비들이 늘어나고 있다. 환경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서울에 제비가 살지 않았던 건 아니다. 70년대 초반까지 흔했다는 기록도 있다. 산업화, 자동차 매연이 제비가 사라진 원인이란 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서울 나들이 때 가장먼저 와 닿는 건 매캐함이다. 도시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테지만, 눈이 뻑뻑할 정도의 매캐함. 무심코 후빈 코에선 검은 매연이 묻어났다.

최근 도시에선 경쟁적으로 환경을 정비한다. 가로수를 심고 공터엔 숲도 만들었다. 도시 사람들이 녹색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적 견해지만, 제비들이 상공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는 날, 도시는 본래의 건강을 다시 회복할 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제비, #귀제비, #굴제비,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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