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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팔경의 하나인 평해 월송정에서.
 관동팔경의 하나인 평해 월송정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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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이다. 그저 일상에 눌러앉아 있기에는 억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싱숭생숭 마음을 들뜨게 하는 화사한 봄이다. 우리 일행은 연세가 여든일곱 되시는 어르신을 포함하여 세 명. 오랜만에 동해로 떠나기로 했다.

지난 9일 오전 8시에 마산합포구 월영동서 출발하여 월송정(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10분께.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일상의 눅눅함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솔향기를 갯비린내에 버무린 바다 내음에 살맛 나다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월송정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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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망양정과 더불어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있는 평해 월송정은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삼척 죽서루, 고성 삼일포, 통천 총석정, 간성 청간정, 울진 망양정과 함께 예로부터 강원도 동해안의 여덟 명승지를 일컫는 관동팔경으로 칭송받으며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가슴 떨리는 설렘을 안고 월송정에 올라서자 솔숲과 어우러진 동해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남해는 섬이 많아서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인 데 반해 동해는 막힌 데가 없이 탁 트여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십 리 넘게 이어져 있다는 흰 모래와 만 그루 소나무, 그리고 푸른 바다가 빚어내는 그윽한 풍경에 삶의 휴식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삶의 휴식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던 월송정
 삶의 휴식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던 월송정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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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에서 일상의 눅눅함이 빠져나가는 상쾌함을 느꼈다.
 솔숲에서 일상의 눅눅함이 빠져나가는 상쾌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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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솔향기를 갯비린내에 적당히 버무린 바다 내음이 바다를 낀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나를 살맛 나게 했다.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소금기 품은 거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어서 바람막이숲을 조성한 옛사람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었던 월송정. 멀리 보이는 수평선 위에 하얀 그리움 하나 걸어 두고 망양정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렸을까, 우리는 망양정해맞이공원(경북 울진군 근남면) 주차장에 도착해 울진대종을 거쳐서 망양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피천을 끼고 넓디넓은 동해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망양정에 오르니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댔다.

 관동팔경의 하나, 망양정.
 관동팔경의 하나, 망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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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양정에 오르면 왕피천이 동해와 만나는 멋진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망양정에 오르면 왕피천이 동해와 만나는 멋진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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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이 관동팔경 가운데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하고 친히 어제시(御製詩)를 짓기도 했던 망양정은 원래 기성면 현종산 기슭에 있었는데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 위치로 옮겼다 한다. 겸재 정선의 < 망양정도 >에 그려진 당시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쉬움도 있지만 왕피천이 동해와 만나는 멋진 경치를 바라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난생 처음 물곰국 먹고서 울진 봉평리 신라비를 만나다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 부근 바닷가에서.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 부근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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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오죽이 눈길을 끌었다. 까마귀처럼 줄기의 색이 검은 대나무인 오죽은 왠지 기풍이 깊어 보인다. 오후 2시가 되어 가고 있어 우리는 허기를 채우러 죽변항으로 갔다. 일행 중 한 분이 예전에 삼척서 먹은 물곰국 맛이 기막혔다 해서 물곰국으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처음 맛보는 동해의 별미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는데 가격을 알고서는 놀라 버렸다. 곰치라 불리는 물곰의 몸값이 그만큼 비싸다는 식당 주인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흐물흐물 살이 연한 물곰을 숭숭 썰어 넣은 묵은 김치로 끓여 내는 독특한 맛이다.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로 먹어도 참 좋을 것 같았다.

 곰치라 불리는 물곰.
 곰치라 불리는 물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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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변항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에 이르렀다. 이곳에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실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지난 1988년 1월 논 주인이 객토 작업에 동원된 포클레인으로 논에 거꾸로 박혀 있던 이 돌을 들어내 길옆 개울에 버렸는데, 2개월이 지나서 돌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발견한 마을 이장이 신고를 하면서 알려졌다.

긴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으로 높이가 약 204cm이고 너비는 위쪽이 32cm, 중간 쪽은 36cm, 아래쪽의 가장 넓은 부분은 55cm로 일정하지 않다. 글자는 한쪽 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전체 10행으로 모두 398자이다. 울진 지방이 신라 영토로 편입된 후 주민들의 항쟁이 일어나자 육부 회의를 열어 중앙정부에 저항한 사람들에게 장 60대와 장 100대를 치는 등 처벌 명령을 내리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이를 비에 새겼다는 내용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모형.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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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신라 육부(六部)의 존재, 지방민에 대한 통치형태와 의사결정 과정 등 당시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노인법(奴人法)과 죄인을 처벌하는 장형(杖刑) 등 520년 법흥왕의 율령 반포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전시관 체험실에 들러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모형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석비는 역사를 말한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후세 사람들에게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역사적 사실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현대인에게 띄운 편지와 같은 귀중한 석비를 뒤로하고 우리는 부근 바닷가로 갔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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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대는 동해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바닷가를 걸으니 머리카락이 바람결 따라 신나게 춤을 췄다. 바다 위를 나지막이 선회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치 모래밭에서 쉬고 있는 듯한 갈매기 떼의 광경이 참 정겨웠다. 갈매기, 사람, 바람, 바다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태그:#월송정,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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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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