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하철 3개의 노선을 1시간 동안 타는 20대 후반의 직장녀입니다. 지하철 출퇴근 시 특별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마주하니 지하철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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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78 서울도시철도 BI ⓒ “5678 서울도시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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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지하철 7호선으로 갈아타면 어김없이 승강장에서 나오는 멘트.
"5678 서울도시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바쁜 출퇴근길 이 멘트에 집중하는 사람은 몇 이나 될까? 혹여 집중하더라도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광고 문구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나는 지하철 3개 노선을 갈아 타서 그런지 출퇴근 시, 이전보다 지하철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있다.
얼마 전 가장 큰 지하철 사고로는 2호선이 앞선 열차와 간격 조정을 못해서 사고가 났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뉴스를 검색해 보니 1호선 오류동역에서 투신 사고로 열차가 지연 되고, 2호선 고장으로 방배역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나 또한 올해에만 지하철 연착으로 3번이나 회사에 정시 출근을 하지 못했다. 천재지변이라고 하지만 그때마다 회사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우리집에서 걸어 다닐 정도로 가깝다면 아니면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 수 있었다면 지하철 사고는 나와는 별 상관 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지하철 사고가 나면 우린 지하철에 대한 고마움을 한 순간에 잊어 버린다. 매일 우리를 회사까지 데려다 주는 고마운 지하철을.
"5678 서울도시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지하철이 고마워 해야 하는 건가?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지하철이 있기에 내가 지금 다니고 싶은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하철이 없다면 난 어디서 일하고 있었을까?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하철이 없던 우리 어머니 세대 때는 어떠했을까? 내가 사는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직장을 다녔기에 내 삶터가 곧 일터로서 이웃 간의 정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우리 지역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였다. 윗 동네 박씨네 문고리가 고장 났는데 아래 동네 이씨가 고쳐주었고 마을에 이장을 중심으로 닭 한 마리 푹 고와 마을 축제도 하고... 지금은 삶터와 일터가 분리 되다 보니 옆 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찜통 더위인 여름에도 현관문을 꼭꼭 닫고 산다.
옛날 지하철이 없던 우리 어머니 세대는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일하다 결혼 하였을 텐데, 요즘은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이 집과의 거리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연봉 등 다양한 조건에 부합하였을 경우 거리가 좀 멀더라도 선택한다.
이에 발 맞춰 지하철도 변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만 다니는 급행열차가 생겨 사람들이 드문 지하철역은 지나친다. 그러기에 급행열차는 다른 열차보다 빠르다는 장점과 함께 사람들이 더 많이 타서 두 배로 힘들다.
비단 직장인들에게만 지하철이 고마운 존재는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 대학을 다닐 때도 지하철이 없으면 못 다녔을 것이다. 그럼 기숙사, 자취 등 거주지를 옮겼을 것이다. 나 또한 집과 거리가 꽤 먼 곳으로 대학을 다녔는데 4년 내내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지하철에서 그 날 배운 전공 과목을 바로 바로 복습하니 시험 기간이라고 해서 밤을 새지 않았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는 거 같은데 항상 과 TOP3에 드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신기해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겐 지하철은 좀 특별하게 다가온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1칸 짜리 안락한 나만의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뒤로 맨 가방을 앞으로 매서, 책을 읽기도 하고 거울을 보기도 하고 오늘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정리하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지하철로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내일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