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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내용은 영화의 주요 줄거리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주류 매체다. 흥행에 대한 부담도 커 흥행이 보장되지 않으면 영화 제작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일본 대중문화의 주류는 단연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영화는 일본 대중문화 중에서도 비주류다. 소수의 영화 마니아만 보는 매체다. 현대 일본 영화의 거장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일본에서 영화는 비주류"라며 일본 내 일본 영화의 위상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영화적 실험이 가능하고, 하부 구조가 탄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영화 마니아들의 심장을 울리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영화는 세계 영화계 저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 <어둠에서 손을 뻗쳐>라는 영화가 있다. 일본 아이돌 출신 배우인 코이즈미 마야가 주연을 맡았고, 실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코미디언도 출연했다. 토다 유키히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13년 유바리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 작품이며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돼 국내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 웰메이드 일본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최근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치고 다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받을 수 있는 영화다.

선정적이지 않은 성도우미 여성 이야기

영화 포스터만 보면 영락없는 삼류에로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적인 선정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화다.
▲ 영화 홍보 포스터 영화 포스터만 보면 영락없는 삼류에로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적인 선정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화다.
ⓒ kurayamik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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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객쩍은 소리 한마디 하자.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가진 유일한 불만 하나는 '도대체 이 영화의 홍보 포스터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이다. 무슨 삼류 에로 영화같은 포스터를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이 포스터만을 봤다면 이 영화를 '절대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성에 대한 지인의 추천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내게 있어 영원히 삼류 에로 영화로 각인되었을 터. 하지만 이 영화는 성과 관련된 선정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화다. 보고 나면 문자 그대로 마음이 훈훈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영화다.

주인공 사오리는 장애인 고객을 대상으로 애무 서비스를 해주는 출장 전문 성도우미이다. 영화는 그가 첫 출근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고객을 상대하고 돌아오자, 점장이 묻는다. 왜 이 가게를 선택했냐고.

"무섭지 않아서요. 적어도 걸을 순 없잖아요."

그녀가 과거 비장애인 대상으로 성도우미 일을 할 때 손님으로부터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첫 손님은 온 몸이 문신으로 덮힌 34살 청년이다. 전직이 야쿠자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현재 근육이 마비되는 근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며 죽어가고 있다. 그는 사오리에게 "이 병을 앓으면 30살을 넘기기 어렵다는데 난 아직도 살고 있다"고 말하며 헛헛한 웃음을 짓는다. 자신도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표정에는 한창 나이에 죽음 기다려야 하고 그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안고 가야하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초탈함이 묻어있다.

사오리는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지만, 몇 번 자신을 지명(대기하고 있는 도우미 중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해주는 그와 만나면서 친구처럼 친해진다. 어느 날 손님과 성도우미가 아닌 평범한 친구로 만나기 위해서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여동생으로부터 듣는다.

사오리의 직업이 무엇인지 확인하자 그의 여동생은 "더러워, 가"라며 차갑게 대한다. 사오리는 그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진심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다. 

"희귀병 장애인과 친구라고?"

"나를 위해 살아주면 안 돼?"

장애인 손님 역을 맡은 아오야마는 실제로 희귀병을 지닌 장애인이다. 현재 일본의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영화의 한 장면 장애인 손님 역을 맡은 아오야마는 실제로 희귀병을 지닌 장애인이다. 현재 일본의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kurayamik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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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리의 두 번째 손님은 근육의 발달장애로 인해 하반신이 거의 없는 상태로 태어난 장애인이다. '선천성다발성관절구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지닌 아오야마는 실제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코미디언이다. 그는 사오리를 향해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며 시종일관 유쾌하다.

그의 유쾌함 덕분에 그녀도 긴장이 많이 풀어지고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의사가 말했단다. "그냥 사산으로 처리할까요?" 그러자 부모님은 "내 자식이 어떤 모습이든, 내 자식일 뿐"이라고 하며 그를 낳았고, 잘 길러주었다고 한다.

세 번째 손님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불구가 된 청년이다. 척추를 다쳐 발기가 되지 않고 물론 사정도 안 된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성의 손길이 닿으면 치료가 될 수도 있다는 근거없는 종교적 믿음으로 아들을 위해 성도우미를 불렀다.

정작 그는 그런 어머니가 부담스럽고, 세상 모든 것이 싫다. 사오리를 대면하자 원치 않는데 엄마가 불렀다며 '돈을 줄 테니 어서 가라'고 뾰로퉁하게 대한다. 그녀는 몇 번 애무 행위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 그냥 돌아간다.

다음에 방문했을 때 하반신 불구 청년은 자신을 찾아온 한 쌍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친구들은 자기들이 이제 사귀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사오리는 뜬금없이 나서며 자기가 "장애 청년의 여자친구"라고 말한다. 곧 그들을 조롱하는 말을 던진다.

"우리 불구가 된 그 친구나 보러 갈까, 하고 온 거야? 그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느껴 보려고?"

타인의 고통을 배려하지 않는 친구들의 이기주의에 화가 났던 것. 이 사건 때문에 사오리는 가게 점장한테 "나서지 말라"며 꾸지람을 듣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매우 사려 깊은 인정을 지닌 사람임을 주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주인공의 외모는 조금 차가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 마음은 따뜻하다. 자신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직업을 지녔기에 사회와 격리된 그들의 처절한 심정과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관객은 곧 사오리가 지니고 있던 상흔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어느 날 손님과 예약된 모텔로 도착한 주인공. 하지만 얼굴을 드러낸 손님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예전에 그녀를 폭행하던 중년 남성 스토커였다. 스토커는 그녀를 욕실에 가두며 물고문을 한다. 그대로 있었으면 영락없이 죽을 상황이었다. 늦게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출장업소 점장(사장)이 모텔로 쳐들어가 그녀를 구출한다.

충격에서 회복된 후 그녀는 교도소에 갇힌 스토커를 면회한다. 하지만 사오리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그동안 자신을 지명해 줘서 감사하다"고. 자신을 증오하는 욕설이라도 예상했던 스토커는 뜻하지 않은 따뜻한 말에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사오리는 스토커의 범죄를 용서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하반신 불구 청년이 나 홀로 바다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자, 히치하이킹을 이용해 함께 떠나준다. 하지만 청년은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이고, 깜빡 잠이 들었던 사오리는 바다에 빠진 그를 온 힘을 다해 구해준다. 청년은 비명을 지른다.

"왜, 왜 내가 살아야 하는데?"

사오리는 말한다.

"나를 위해서 살아주면 안 돼?"

청년은 자살을 포기한다. 이 청년이 고용센터에 들러 구직 등록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주인공은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도시인은 항상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는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신만의 담을 쌓아놓고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을 허락하지 않기에 타인 또한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은 아닌지. 주인공은 소외된 생활 속에서도 외로워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장애인 손님들이라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괜한 오해와 편견으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생을 영위할 수 있고, 동시에 타인의 인생에 빛이 되고 생명까지 구원하며 생을 충만케 할 수도 있는 존재다. 이 영화는 세상의 희망이 되는 인간미를 의도적 선정성이나 뻔한 지루함 하나 없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이 흐르게 그려냈다.

<어둠에서 손을 뻗쳐>는 일본에서는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한국에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태그:#일본영화, #영화추천, #어둠에뻗쳐,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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