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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일본이 유엔(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된 집단적 자위권을 향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 헌장 제51조에 규정되어 있다.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할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 회원국이)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는다."

이 규정은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의 평화유지 업무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은 원칙상 안보리의 결정에 따라 유엔이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안보리가 사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사태가 수습 불가의 국면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에 대비해서 만든 것이 바로 집단적 자위권이다. 안보리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라도 관련 당사국들이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 나라나 주변 지역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의 취지다.   

문제는 자국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경우에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웃나라가 공격을 받거나 이웃나라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도 지역의 평화나 자국의 안보를 명분으로 이 권리를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웃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을 목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향해 다가가는 일본 정부

일본이 이 같은 권한을 행사할 경우, 일본 자위대는 남북한·중국·대만·필리핀·러시아에서 발생한 분쟁을 명분으로 해당 국가의 영역이나 그 주변 지역에 침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1945년 이후 억제됐던 일본의 군사적 욕구가 마음껏 분출될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까지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헌법 제9조에 위반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일본 헌법 제9조 1항 후반부에서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했고, 2항 후반부에서는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헌법에서 대외적 군사행동을 금지했기 때문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일본 정부는 헌법 제9조를 개정함으로써 집단적 자위권의 길을 열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개헌이 용이하지 않다는 판단에 도달하자,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 해석이라는 방법을 통해 문제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헌법 제9조가 일본의 안보를 위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려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할 목적으로 아베 총리는 "한국 등 당사국의 요청이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웃나라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자위대가 주변 지역에 대한 군사행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은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일본의 자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이 결정할 문제다"(지난 2월, 김관진 국방장관) 혹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보유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작년 11월,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로 정리된다.

한편 지난 15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한반도 안보와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요청이 없는 한 용인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 정부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제동을 걸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 한국의 동의 없이는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렇듯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한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과거 19세기 발생한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면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유독 일본의 이런 태도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100여년 전에도 일본은 조선의 허락 없이 조선 영토에 군대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전쟁으로 망하지 않았다

청일전쟁 당시 인천에 상륙하는 일본군. 서울시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청일전쟁 당시 인천에 상륙하는 일본군. 서울시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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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상황을 지금 상황에 빗댈 수 있느냐? 지금의 한국이 100년 전보다 훨씬 더 강한데, 설마 그때처럼 또 당하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100년 전의 조선을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청나라와 일본은 서양의 침공을 받고 시장을 개방했다. 하지만 병인양요·신미양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조선은 서양과의 전쟁에서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았다. 조선은 청나라의 중재 하에 평화적인 방식으로 미국·영국·독일 등과 국교를 체결하고 시장을 개방했다.

또 조선은 패전이란 형식을 통해 멸망하지 않았다. 조선은 우리 측의 표현을 빌리면 '강점'을 통해, 일본 측의 표현을 빌리면 '합병'을 통해 멸망했다. 만약 조선의 국력이 훨씬 더 약했다면, 일본은 점령이란 형식을 통해 조선을 멸망시켰을 것이다.

또 일본은 1910년에 조선을 강점하면서 고종·순종 황제의 기존 지위를 상당 부분 승인했다. 고종과 순종을 각각 이태왕(李太王) 및 이왕(李王)에 책봉한 것이다. 황제의 지위는 박탈했지만 군주의 지위만큼은 인정해준 것이다. 일본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전쟁을 통해 조선을 굴복시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 년 전의 조선은 비록 망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무기력한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이 망한 것은 고종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시장과 문호를 활짝 개방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들이 "우리 허락 없이 일본군이 들어올 수 있겠느냐?"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듯이, 고종도 그런 식으로 외세를 끌어들이다가 나라를 잃은 것이다.

100년 전의 조선이 그렇게 약한 나라가 아니었는데도 멸망했다는 것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역시 그런 위험성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상황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임오군란 틈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일본

오늘날의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한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를 침략할 수 있다는 점은,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청일전쟁에 대한 일본의 개입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임오군란 6년 전인 1876년에 일본은 조선과 함께 강화도조약(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을 체결했다. 이 조약 제1조에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제1조는 "동등한 예의로 서로 대하며 침략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제1조는 일본 측의 요청을 반영한 조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규정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불침략 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공언은 공염불이었다. 6년 뒤 조선에서는 구식 군인들이 시장개방정책(이른바 개화정책)을 반대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임오군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수도 한성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졌고, 이 와중에 일본 군사교관인 호리모토 레이조 소위가 피살당했다. 또 일본 상인들의 상권 장악에 불만을 품은 조선 군중이 한성 서대문 밖의 일본공사관을 포위하고 항의시위를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하나부사 요시타다 일본공사는 시위대의 포위망을 뚫을 목적으로 스스로 공사관에 불을 질렀다. 불이 나서 시위대가 우왕좌왕하자, 하나부사는 그 틈을 타서 인천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인천부사 정지용은 하나부사 일행을 보호하고 인천부 청사에 이들을 수용했다. 인천부사의 태도는 일본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조선 정부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하나부사는 이것을 국제 쟁점으로 비화시킬 목적으로 서둘러 출국을 강행했다. 자기 스스로 조선에서 쫓겨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일본공사관과 일본인의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했다. 일본 군대가 자국 공사관과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벌일 수 있다는 내용은 강화도조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은 군대를 파견했다. 또 전면전에 대비해서, 대마도와 가까운 후쿠오카에 별도의 군대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이 같은 행동은 오늘날로 치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유사하다. 조선에 변란이 발생한 것을 빌미로 조선군과 함께 사태를 진압하겠다면서 일본군을 파견했으므로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일본의 개입을 명확히 거부했다. 일본 군대가 들어오자 철군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군은 개의치 않고 조선에 들어왔다.

참고로, 일본군은 그 뒤 조선 정부를 장악할 목적으로 한양까지 침투했다. 하지만 고종의 요청을 받고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조선 정부를 먼저 장악하는 바람에 뜻을 성취하지 못했다.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의 파병 거부했지만...

청일전쟁 당시 평양에 주둔한 일본군.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청일전쟁 당시 평양에 주둔한 일본군.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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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뒤인 1894년에도 일본은 똑같이 행동했다.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은 차제에 조선을 장악할 목적으로 12년 전과 똑같은 행동에 돌입했다. 임오군란 이후에 조선과 체결한 제물포조약을 근거로 군대를 파견한 것이다. 일본인과 일본공사관을 보호하려면 일본군이 조선에 가서 농민전쟁을 진압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이 역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조선 정부는 일본 정부의 파병을 거부했다. 고종의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도 일본군이 덩달아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래서 청나라 군대는 "우리도 돌아갈 테니, 일본군도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조선과 청나라가 일본군의 철군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은 여세를 몰아 조선 정부를 장악하고 청나라 군대를 격파(청일전쟁)한 뒤 동학농민군을 진압했다. 동학농민군으로부터 일본인과 일본공사관을 보호하겠다며 출병한다고 해놓고, 조선 정부와 청나라 군대부터 제압해놓고 맨 뒤에 농민군을 진압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이제까지 일본은 조선의 내부문제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할 때에 조선 정부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일본인과 일본공사관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 군대를 들이댄 것이다.

향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에는, 19세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 문제를 빌미로 자위대를 동원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임오군란·동학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일본은 일본인과 일본대사관의 안전을 빌미로 남의 나라 영역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어디에도 일본인이 없는 곳은 없으므로, 일본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을 빌미로 동아시아 어디든지 출동할 것이다.

만약 일본이 국제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60년 전까지 전 세계를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넣은 나라다. 또 최근에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극우파의 기세가 일본 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동기도 기본적으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데 있다.

또 파트너인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됨에 따라, 일본은 미국 없이도 동아시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웃나라들인 한국·북한·중국·대만·러시아 등이 일본에 원한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떠나버리면 일본이 홀로 살 길은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 없는 동아시아에서 대외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니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우려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5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로 일본이 군사·안보 측면에서 취한 조치와 행보는 중국과 국제사회가 일본의 진정한 의도와 동향에 경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이처럼 일본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이 우리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태그:#집단적 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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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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