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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청계마을 주민들이 어둠에 잠긴 동네를 촛불행진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마을 주민들이 어둠에 잠긴 동네를 촛불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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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학부모인 동네 엄마도 갓난아기를 안고 촛불행진에 참여했다.
 미래의 학부모인 동네 엄마도 갓난아기를 안고 촛불행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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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광장에 수만의 촛불이 켜졌던 그 시각에 경기도 의왕시의 작은 청계마을에선 반딧불 같은 촛불이 켜졌다. 바로 옆 동네인 안산 엄마아빠들의 참혹한 고통이 남일 같지 않은 동네 엄마아빠들이 부패 무능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아들딸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켠 주축은 대안학교 학부모들이다. 내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청계마을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이 가족과 오붓하게 보낼 토요일을 반납하고 촛불 아래 모여든 것은 위기감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확인한 것은 내 자식도 부패 무능한 정부 시스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학부모인 엄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촛불을 들었고, 대안학교 초등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촛불 행진에 앞장섰고, 중고등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로 스러진 누나와 형, 또래의 아픔을 새기며 촛불을 밝혔다. 동네 어른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 하며, 내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선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저항의 의지를 조용히 밝혔다.

촛불로 포옹하며 권력에 맞서자

청계자유발로르프학교 학부모인 고경이(46)씨가 시와 노래를 낭송하고 있다.
 청계자유발로르프학교 학부모인 고경이(46)씨가 시와 노래를 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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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애 참석한 초등학생
 촛불문화제애 참석한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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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7시30분 경기도 의왕시 청계마을 주민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계근린공원에 동네 촛불이 켜졌다. 청계마을 촛불의 중심은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청계자유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인데 배후도, 조직도 없이 스스로 촛불을 켜서인지 청계광장 촛불에 비해 소박하고 엉성했다.

동네 사람 몇몇과 함께 촛불추모제를 준비한 청계자유학교 학부모 정영철(47)씨는 세월호 실종자 수 백명 중에 한 명도 살리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과 부패한 정부 시스템 그리고,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생명과 맞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모두에게 진정 묻고 싶어서 촛불로 모이자고 했다"고 동네 촛불을 켠 이유를 설명했다.

청계자유학교 학부모 고경이(여·46)씨는 가족치료 분야의 선구자인 버지니아 사티어(1916~1988)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매일 네 번,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매일 여덟 번,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일 열두 번 껴안아 주어야 한다"는 '포옹'이란 제목의 글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로 숨졌는데,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다"며 "소중한 생명끼리 서로 포옹하며 촛불을 들자"고 제안했다. 죽음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서로를 안아야 한다고 은은하게 선동하면서 '우리 오늘 눈물로'(고형원 작사,곡)라는 노래 가사를 낭송했다.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이슬 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정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매주 토요일, 동네 촛불 켜련다

청계마을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여중생들이 세월호 참사로 스러진 오빠, 언니들을 추모하고 있다.
 청계마을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여중생들이 세월호 참사로 스러진 오빠, 언니들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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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슬퍼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

촛불추모제를 짤막하게 마친 청계마을 주민과 학생들은 이와 같은 피켓을 안고서 청계마을과 학의천 주변 2km가량을 촛불 들고 행진했다. 어둠에 잠긴 고요한 동네를 침묵으로 행진하는 반딧불 같은 촛불들…. 부패 무능한 정부당국을 묵묵히 규탄한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아기를 안고, 부부 자녀가 함께 손을 잡고, 아이들은 뛰놀며 촛불행진을 했다.

청계마을의 작은 촛불은 미미했다. 세월호의 분노를 해일처럼 일으키거나 부패 무능한 권력의 책임을 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촛불이었다. 그래서 정보요원들도 동태를 파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주목하는 청계광장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외진 동네에서도 촛불이 켜진 것이다.

청계자유학교 학부모 정영철(47)씨는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도 서울 청계광장으로 달려가거나 안산으로 찾아가 촛불을 든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청계마을에서 촛불을 들었다"면서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언제까지 기약할 순 없지만 매주 토요일 밤마다 동네 촛불을 켜려고 한다"고 말했다.


태그:#동네촛불, #청계마을, #촛불문화제, #촛불행진,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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