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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필요한 때

곽지균, 김수진, 정아율, 김지훈, 최고은 그리고 지난 9일 배우 우봉식까지.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이름이다. 예술가들의 죽음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타살이 아닌 자살이란 이름은 지속적인 이슈의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죽음의 원인으로는 생활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우울증과 심한 비관에 의한 자살이라 단정 짓는다.

하지만 정말 자살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느 고매한 철학자가 말했다. 인간을 정의한 말로서 썩 괜찮은 표현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책임을 질 줄 아는 동물이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들의 죽음을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무거운 사회적인 이슈가 너무 많이 나와서일까. 일부 직접적인 관계자들(복지관련 종사자) 이외의 사회 전반적인 관심은 오히려 이러한 이슈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한물간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이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반짝 기삿거리만을 찾는 언론의 잘못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속적이고 건강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이런 사회적인 풍토 속에서 이번 취재는 반가웠다. 작가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자, 그(양경수·31)가 살아온 굴곡진 검은 실타래 속에서 오색찬란한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 배달

봉은사 절에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찍었다. 포장된 작품을 끌어안고 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의 물결이 출렁인다.
▲ 그림배달 봉은사 절에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찍었다. 포장된 작품을 끌어안고 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의 물결이 출렁인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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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1일, 봉은사(봉은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해 있다)로 직접 자신의 작품을 배달하는 작가 양씨를 만났다.

양 작가는 2002년 처음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2012년 늦깎이로 졸업을 마쳤다. 졸업 후 2년이 넘은 그의 작가 생활에서 올해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혼자 힘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인테리어 일과 벽화 일, 온갖 종류의 일을 해왔던 그다. 그렇게 일한 돈으로 모든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돈이었지만 '내 돈 같지가 않았다'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오늘의 수입 20만 원이라는 작은 돈이지만 정말 뜻깊은 돈이라고 말한다. 예술작품 하나를 20만 원에 파는 작가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그렇게 긴 시간을 몰두하여 나온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생활비 일부를 때어 제작의뢰(프린트와 액자)를 맡긴다. 이런저런 경비까지 모두 빼면 남는 돈은 10만 원 정도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간직하고 싶은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구매해주었다는 것은 작가에게 고된 작업 속에서 느꼈던 고통을 모두 탈피하는 행복인 것이다. 그에게 오늘이 뜻깊은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양작가가 이번에 전시한 작품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그린 불화 팔상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일러스트로 그린 그림이다. 크기는 42cm x 59.4cm에 화인아트잉크젯프린트 형식으로 프린트 되었다. 작가가 판매한 작품 ‘수하항마상’은 팔상도에서 6번째 그림으로 석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자신과의 싸움인 수행을 하다가 9가지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6년의 고행 끝에 참 진리를 깨닫는 부분이다.
▲ 수하항마상 양작가가 이번에 전시한 작품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그린 불화 팔상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일러스트로 그린 그림이다. 크기는 42cm x 59.4cm에 화인아트잉크젯프린트 형식으로 프린트 되었다. 작가가 판매한 작품 ‘수하항마상’은 팔상도에서 6번째 그림으로 석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자신과의 싸움인 수행을 하다가 9가지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6년의 고행 끝에 참 진리를 깨닫는 부분이다.
ⓒ 작가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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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경, 봉은사의 교육관에서 항승스님(현 봉은사 교무국장)을 만나 뵈었다. 항승스님은 올해 3월 6일부터 9일까지 있었던 불교박람회에서 양 작가의 작품 '수하항마상'을 구입 했다. 직접 배달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작가와 스님은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서 1시간 가량의 담소를 나누었다. 스님은 "물건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된 것들, 시간이 지나도 가치 있는 것들, 이 작품은 정말 좋다. 진심으로 좋아서 샀다"고 말했다.

이에 작가는 "처음으로 이런 공식적인 전시회를 가져보았고 이 행사에서 스님이 처음으로 작품을 사주셨다. 스님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잃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불교문화가 이렇게 재해석되어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며 양 작가를 응원했다.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것

교육관 회의실에 걸린 작품 앞에서 항승스님과 양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수하항마! 교육관 회의실에 걸린 작품 앞에서 항승스님과 양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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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소가 끝나갈 무렵 스님은 회의실 벽면에 그림을 걸어야겠다고 했다. 직원들과 작가까지 함께 총 동원되어 가장 적합한 자리에 작품을 걸었다. 일을 하던 교육관 보살님(직원)들도 모두 작품이 좋다며 활기를 띤다. 작품이 걸린 자리에서 작가와 스님은 함께 힘껏 포즈를 취한다. 찰칵! 그렇게 작가는 스님과 교육관 직원들에게 신선함을, 스님은 작가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인생은 신명나게 놀다가는 것. 논다는 것은 어떤 일에 몰입하는 즐거움이며 관계를 쌓는 즐거움이다."

항승스님의 말이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로 번져 오른다. 오늘 작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돈이 아니다. 작가 생활 속에서 만난 인연이며 이러한 관계가 쌓여 만들어내는 문화이다. 인연을 만들어가며 사회에서 문화인이 되어가는 이 순간이 그에게 선물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다'라는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작가는 스님에게, 스님은 작가에게 배경이 되어 존재한다는 의미를 밝혀주고 있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은가? 전시장에 홀로 서 있는 작가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와 어떤 뜻깊은 인연이 맺어질지 모를 일이다. 인연뿐이겠는가. 이 시대의 죽어가는 영혼 하나를 살리는 일일지도, 또 그로 인해 수많은 관객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며 문화가 될 것이다.

봉은사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선 작가가 말한다. "오늘, 정말 뜻 깊은 날이야"라고.


태그:#봉은사, #양경수, #봉은사, #불교박람회, #작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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