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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굼 마을 곰파에서 만난 동승들. 빡빡 민 어린 승려들의 시퍼런 뒤통수가 유난히 귀엽다.
▲ 굼 마을 학교 굼 마을 곰파에서 만난 동승들. 빡빡 민 어린 승려들의 시퍼런 뒤통수가 유난히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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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아직 어둡다. 해로 데워지지 않은 숙소 안 공기는 차다. 새벽 3시 45분. 괜한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현관문 쪽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 히말라야 칸첸중가 사이로 떠오르는 해의 얼굴을 보기 위해 타이거 힐에 오른다.

"문이 잠겼어."

현관문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이어지는 인기척. 관리인이 아닌 다른 여행객이다. 10분, 20분. 시간은 흐르지만 관리인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차를 놓쳐 버리진 않을까, 마음만 초조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거라면 질색인 내가, 일출 하나 보겠다고 무려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는데. 이대로 갇혀 있을 순 없다. 억울함에 타들어 가는 속을 잠재우며 복도를 맴맴 돌다,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식당 옆에 있는 관리자 숙소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 하나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다.

"문 좀 열어주세요…."

화라도 벌컥 내주려고 했는데. 자는 사람을 깨우는 건 역시나 죄스럽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하니 아이가 아빠를 부른다. 주인 아저씨가 미안하다며 헐레벌떡 열쇠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탈출 성공!

다르질링의 풍경. 언덕 너머로 초록 차밭이 펼쳐져 있다.
▲ 다르질링 풍경 다르질링의 풍경. 언덕 너머로 초록 차밭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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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에 있는 모모(티베트식 만두) 노점상. 15루피(한화 약 300원)면 맛있는 모모를 10개나 먹을 수 있다. 사진에 나온 음식은 여러가지 야채를 넣어 만든 베지롤(Veggie Roll).
▲ 초우라스타 광장의 모모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에 있는 모모(티베트식 만두) 노점상. 15루피(한화 약 300원)면 맛있는 모모를 10개나 먹을 수 있다. 사진에 나온 음식은 여러가지 야채를 넣어 만든 베지롤(Veggie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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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지각자는 있는 법. 다행히 아직 몇 대의 지프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뒤를 따라온 여행자 두 명을 더 태운 후, 지프가 출발했다.

오랜만에 다른 여행자들과 좁은 공간에 함께 모였다. 언제나 나눌 수 있는 여행자들의 공통 화제는 지나왔던 여행지와 앞으로의 계획이다. 지프에 모인 여행자들은 모두 우리처럼 네팔로 넘어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빨리 네팔로 가고 싶어요. 이미 네팔로 간 친구랑 어제 통화했는데, 요새 날이 좋아서 트레킹 하기에 천국 같은 날씨래요."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여자가 말했다. 네팔은 어떤 곳일까. 멀리서 보이는 설산에도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데. 어제 아침 커튼을 열고 마주한 설산과의 첫 만남에도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었는데. 설산 위를 밟고 올라가는 기분은 어떨까.

함께 모인 여행자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머지않아 각자가 경험하게 될 히말라야 트레킹을 상상했으리라.

"저는 다르질링에 며칠 더 있다가, 바로 네팔로 넘어가요. 여행에서 만난 네팔 사람이 아는 셰르파(산 가이드)를 소개해 준다고 했어요. 일 주일 정도 있다가 네팔로 가서 랑탕 코스를 걸을 거예요."

지난 몇 년간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식당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는 체코 여자다. 일 주일 후 바로 네팔이라니! 랑탕 코스를 걸을 거라는 여자의 말에, 하얀색과 녹색 바탕 위를 사뿐히 걷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 설렌다. 

"저는 학교 방학을 틈타서 온 여행이라, 다르질링에 며칠 있다 독일로 돌아가야 해요. 아, 네팔! 정말 가고 싶은데. 다음 방학에는 반드시…."

자유분방해 보이는 독일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주먹을 꼭 쥐었다. 더스틴과 난 다르질링에서 시킴을 거쳐 네팔로 들어갈 계획이다. 히말라야 등 자락을 트레킹 하기까지는 아직 스무날 정도가 남았다.

홍차나 홀짝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을 것이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걸으며 트레킹 연습을 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무엇을 해도 좋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히말라야 언저리에서의 스무날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다르질링의 토이 트레인. 뉴잘패구리역에서 다르질링까지 이 기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 다르질링 토이 트레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다르질링의 토이 트레인. 뉴잘패구리역에서 다르질링까지 이 기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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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떡거리며 언덕길을 오르던 지프가 타이거 힐에 도착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올라가던 수많은 지프의 행진이 예고했듯, 타이거 힐은 구경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타이거 힐에 모인 엄청난 인파가 기다리는 것은 하나였다. 칸첸중가 위로 솟는 해의 붉은 얼굴이다.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을 바람막이 삼아, 하얀 입김을 호호 불어 뜨거운 짜이를 마시며 해가 뜨기를 침착히 기다렸다. 수십 분이 지나고,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푸른색으로 옅어졌다. 검은 어둠에 감춰져 있던 칸첸중가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러다 문득, 맑은 해가 불쑥 튀어나왔다.

"와!"

군중의 환호소리에 힘을 얻은 해가 칸첸중가에 붉은 빛을 더 힘차게 뿌렸다. 이윽고 산 머리 위로 해가 올랐다. 수억 년 전부터 반복된, 새로울 것도 없는 자연의 일이건만. 그 앞을 마주한 작은 인간에겐 위대하고 장엄한 풍경이다.

타이거 힐에서 본 칸첸중가의 모습. 수억 년 전부터 반복된, 새로울 것도 없는 자연의 일이건만. 그 앞을 마주한 작은 인간에겐 위대하고 장엄한 풍경이다
▲ 타이거 힐의 일출 타이거 힐에서 본 칸첸중가의 모습. 수억 년 전부터 반복된, 새로울 것도 없는 자연의 일이건만. 그 앞을 마주한 작은 인간에겐 위대하고 장엄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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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는 주위를 모두 하얗게 물들였다. 사람들의 들뜬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운 지방에서 온 인도 사람들의 얼굴이 그 누구보다 더 들떠 있었다. 사람들은 꺄르르 웃으며 여기저기 모여 눈을 만져도 보고 서로에게 뿌려도 봤다.

신이 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채는 부모처럼, 지프들이 성가신 경적을 울려댔다. 어서 빨리 다르질링으로 돌아가자는 재촉이다. 우리는 인파가 빠질 때까지 조금 기다리다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나를 기다리는 회의도, 숙제도, 의무도 없는 하루 아닌가.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걸어서 내려가고 싶다면, 그러면 그만이다.

곰파의 승려들
▲ 곰파의 승려들 곰파의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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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 위쪽으로 난 사원. 알록달록한 티베트 기도깃발이 걸려있다.
▲ 티베트 기도깃발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 위쪽으로 난 사원. 알록달록한 티베트 기도깃발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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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일출보다 멋진 게으른 산책

"여이! 일출 잘 봤어요?"

지프를 같이 타고 온 독일인 마이크와 체코에서 온 루시가 우리를 발견하고 아는 척을 했다. 역시나 아무 의무사항 없는, 당분간의 자유인인 그들도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지프가 뿜어대는 시커먼 매연을 맡으며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느새 지프도 다 떠나고, 산속에 나와 더스틴, 마이크와 루시만 남았다. 이렇게 호젓이 산책을 즐기기도 오랜만이다.

방향도 없이 몰려드는 차와 릭샤와 소와 인파 속을 뚫고 다니느라, 초록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걷는 산책 같은 건 잊고 산 지 오래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야 했던 새벽의 나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든 인파 사이를 뚫고 칸첸중가를 만났던 것보다, 지금 이 산책이 더 좋다. 유쾌한 동행 두 명과 함께라서 더 좋다.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접시를 닦았어. 그전에는 크루즈 배에서 일하기도 했고. 4년 동안 그렇게 일하다 여행하기를 반복했어. 지금은 다시 여행을 하는 중이고, 여행이 끝나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보려고. 상황이 허락되는 한 당분간은 이렇게 살 생각이야."

9년이 지난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루시. 고향인 체코를 떠나와서 수년간 허드렛일을 하다가 여행하기를 반복하며 살았단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이렇게 사는 방식도 있구나. 모두가 따라 달려가는 궤도에서 탈선해,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에 있는 모모(티베트식 만두) 노점상. 15루피(한화 약 300원)면 맛있는 모모를 10개나 먹을 수 있다. 노점 주인이 찜기 앞에서 직접 모모를 만들고 있다.
 다르질링 초우라스타 광장(다르질링 몰)에 있는 모모(티베트식 만두) 노점상. 15루피(한화 약 300원)면 맛있는 모모를 10개나 먹을 수 있다. 노점 주인이 찜기 앞에서 직접 모모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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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피는 천국이야. 자유분방한 여행자들의 천국.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유적 주위를, 아무래도 상관없는 여행자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지. 일 주일 정도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갔는데, 안 되겠더라고. 다시 돌아가서 한 달을 더 지냈어."

대학생인 마이크는 제멋대로의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개강'이라는 족쇄만 없다면 어디로 튀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무서운 잠재력의 여행자. 알고 보니 인도 신문에도 소개된 적 있는 유명인이다.

"케랄라에 가면 하우스 보트를 탈 수 있잖아. 근데 돈 좀 내면 남이 해 주는 밥 먹고 배 몰아주는 대로 가고…. 그런 건 별로 안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어떻게 했는데?"
"내가 직접 나룻배를 만들었지."

마이크는 자랑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나룻배를 직접 만들었다고?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숙소에서 만난 여자애랑 같이 착수했어. 근데 막상 하려니까 나무도 못 구하겠고 필요한 도구도 없고 그렇더라고. 그래도 다 방법이 있더군. 근처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관심 있게 물어보더니 이것저것 가져다줬어."

마이크는 작은 카메라에 담아 놓은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제법 그럴듯하게 지어놓은 나무 보트 위로, 마이크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잉여다. 빛나는 잉여다. 한 번 타고 안 쓸 배를 짓기 위해 이런 짓을 하다니. 단 하룻밤의 사용을 위해 그렇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부어 버리다니. 실용성 같은 건 염두에 없는, 순간에 몰두하는 마이크의 젊음이, 그의 얼굴 위에서 반짝였다.

다르질링 지프 정류소 근처의 뚝바(티베트식 국수) 식당. 관광객이 모여 있는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관광객을 자주 접하지 않아 영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들이 대신 받아준 주문을 듣고 뚝바를 만들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
▲ 뚝바 식당 다르질링 지프 정류소 근처의 뚝바(티베트식 국수) 식당. 관광객이 모여 있는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관광객을 자주 접하지 않아 영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들이 대신 받아준 주문을 듣고 뚝바를 만들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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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 지프 정류소 근처 식당에서 먹은 뚝바(티베트식 국수). 단돈 20루피(한화 약 400원). 감칠맛 나는 국물과 든든한 면발, 야채가 한가득이다. 더스틴과 내가 사랑하는 고수를 듬뿍 넣어 더 맛있다.
▲ 뚝바 식당 다르질링 지프 정류소 근처 식당에서 먹은 뚝바(티베트식 국수). 단돈 20루피(한화 약 400원). 감칠맛 나는 국물과 든든한 면발, 야채가 한가득이다. 더스틴과 내가 사랑하는 고수를 듬뿍 넣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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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 마을 곰파에서 만난 까까머리 어린 승려들

산자락에 자리한 곰파가 우리를 맞았다. 곰파가 있는 걸 보니, 굼 마을에 도착했나 보다. 루시는 9년 된 낡은 가이드북을 펼치더니 곰파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낡은 책 속의 정보가 신통치 않은지, 루시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꼼 거리자, 마당을 쓸던 어린 승려가 우리를 발견했다. 승려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곰파 중앙 사원 안에는 자줏빛 승복을 입은 어린 승려 50명 정도가 가득 들어앉아 경을 외고 있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승려들 뒤를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헛수고다.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 어린 승려들의 시선도 조금씩 왼쪽으로 따라 들어왔다. 우리는 구석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 외는 어린 목소리에, 마음이 나긋나긋해지는 느낌이다.

굼 마을에서 만난 곰파 안 학교. 일렬로 길게 뻗은 건물 칸칸이, 작은 칠판과 꼬맹이 의자들이 들어서 있다.
▲ 곰파 안 학교 굼 마을에서 만난 곰파 안 학교. 일렬로 길게 뻗은 건물 칸칸이, 작은 칠판과 꼬맹이 의자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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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 마을에 들어선 ‘굼’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토이 트레인이 지나가는 굼역은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2,258m) 철도역이다.
▲ 인도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 '굼'역 굼 마을에 들어선 ‘굼’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토이 트레인이 지나가는 굼역은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2,258m) 철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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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청소를 하던 승려가 사원 오른쪽을 가리켰다. 학교? 건물을 돌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길게 뻗은 건물 칸칸이, 작은 칠판과 꼬맹이 의자들이 들어서 있다. 중앙에 선 선생님을 동그랗게 둘러싼 학생들이 무언갈 열심히 웅얼거린다.

꼬마 승려 세 명이 앉아 있는 교실 앞 칠판에는, 꼬마 승려들이 그렸을 게 분명한 장난스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를 돌아본 동승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키득키득 웃음을 그칠 줄 모른다. 사진 한 장 찍겠다고 부탁했더니 어느새 공부하는 척, 진지한 얼굴의 설정 포즈를 선보인다. 빡빡 민 어린 승려들의 시퍼런 뒤통수가 유난히 귀엽다.

오늘은 3월 8일. 올해 힌두교 달력에 따른 홀리 축제일이다. 다르질링에 가까워질수록,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가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더스틴이 겁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잘 걸렸다는 듯 쳐다보는 색의 무리. 마치 얼마 남지 않은 희생자를 바라보는 좀비들의 눈빛과 흡사하다. 도망가자!

인도의 최대 축제인 홀리 축제. 다르질링에 가까워질수록,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가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더스틴이 겁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잘 걸렸다는 듯 쳐다보는 색의 무리. 마치 얼마 남지 않은 희생자를 바라보는 좀비들의 눈빛이다.
▲ 홀리 축제 인도의 최대 축제인 홀리 축제. 다르질링에 가까워질수록,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가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더스틴이 겁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잘 걸렸다는 듯 쳐다보는 색의 무리. 마치 얼마 남지 않은 희생자를 바라보는 좀비들의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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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의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북인도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초조함이 조금 씻겨 나간 것 같다. 언제나처럼 일이 안 풀려도 상관없고,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것 같다.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홍차나 홀짝거릴 수 있는 산 위의 도시. 깔끔하고 맛있는 티베트 음식. 어느 방향으로든 게으르게 어슬렁거릴 수 있는 예쁜 산책길. 산속 동물원. 히말라야 등산학교. 산자락을 타고 도는 토이트레인. 이런 풍경 속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이 누그러드는 법이겠지.

선홍색 가루를 뒤집어쓴 더스틴. 인도의 최대 축제인 홀리 축제일로,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가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 홀리 축제 선홍색 가루를 뒤집어쓴 더스틴. 인도의 최대 축제인 홀리 축제일로,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가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무리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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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축제로 색가루를 뒤집어 쓰고 철도위를 걷는 아이들.
▲ 홀리 축제 홀리 축제로 색가루를 뒤집어 쓰고 철도위를 걷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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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색의 무리에 붙잡힌 더스틴이 온몸에 선홍색 가루를 뒤집어썼다. 당해 놓고 뭐가 좋다는 건지 영광스럽게 웃는다. 더스틴은 선홍색 가루를 단 한 톨도 털지 않고, 자랑스러운 듯 마을을 싸돌아다녔다.

색 가루를 뒤집어써도, 온종일 걷기만 해도 좋은, 그런 날들이다.

다르질링 토이 트레인
▲ 토이 트레인 다르질링 토이 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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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르질링, #타이거 힐, #칸첸중가, #토이트레인,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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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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