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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원을 걷다 보면 나무줄기에 물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텃밭에는 키재기 하는 파란 마늘과 양파의 모습이 보인다. 노란 복수초는 고개를 내밀었다. 홍매는 시간을 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선화와 튤립의 싹은 어찌 그리 귀여운지…! 자연의 질서는 그렇게 움츠렸던 감성을 깨운다.

요즘 숙지원은 농사 준비 중이다. 보름을 쇠고 먼저 했던 일이 비닐하우스안에 씨고구마 넣을 밭을 만들기였다. 퇴비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흙을 뒤집은 뒤 가래로 흙덩이를 깨서 퇴비와 섞어 고르고 다시 밭이랑을 성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야콘 모종을 직파할 밭도 만들고 그 곁에 봄에 먹을 채소 모종 키울 자리도 사방 몇 뼘쯤 비웠다. 하우스밖에도 두둑을 치고 이랑을 내야 한다. 텃밭 농사라고 해도 연장은 빠짐없이 갖추어야 하듯 하는 일도 양이 적을 뿐 과정은 똑같다. 먼저 무엇을 어디에 심을 것인지 설계한다.

모든 작물들에게 같은 자리에서 연작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작년에 고추 심었던 자리에 감자를 심고 고구마 심었던 자리에 야콘 두둑을 쳐야 한다. 4월에 모종을 심는 고추는 지난해 야콘이 무성했던 자리를, 6월에 심는 고구마는 양파 캐낸 뒷자리를 이을 것이다. 참깨는 마늘과 완두콩 수확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생강은 자투리 공간에 없는 듯 심고 토란은 한 여름 시원한 조경을 연출하니 잘 보이는 곳 그러면서 조금 습한 곳을 골라야 한다. 메주콩은 지난해 오이 가지 토마토 심었던 자리에 듬성듬성 뿌릴 작정이고, 팥은 대중없이 빈 땅을 찾아 군데군데 두어 개씩 심을 것이다.

참, 날이 풀리면 곧 심을 오이 가지 토마토 등은 직접 만든 퇴비를 가장 많이 뿌린 자리를 선점해 두었다. 여름 밥상에 가장 많이 오를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이는 모종을 직접 기를 작정이지만 가지와 토마토는 대여섯 주씩만 사서 심을 것이다. 참외와 수박은 포기할 작정이다. 순치기를 하는 일도 어렵지만 노지에서 기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호박은 열매도 먹지만 잎도 한 여름 반찬이 된다. 지난해처럼 옆 산자락에 미리 구덩이를 파서 퇴비를 많이 부어둘 작정이다.

이제 당산제는 시골에서 거의 보기 어려운 행사가 되었다. 지켜야할 우리 문화가 아닌가 한다. 노인들이 가시는 날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안타깝다.
▲ 정월대보름 당산제 이제 당산제는 시골에서 거의 보기 어려운 행사가 되었다. 지켜야할 우리 문화가 아닌가 한다. 노인들이 가시는 날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안타깝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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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를 살피는데 금년에도 꽃이 시원치 않다. 지난해 가을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한 탓이 크겠지만 아무래도 2년 전 태풍 볼라벤에 당한 후유증이 큰 것 같다. 몇 나무는 뭉텅이 바람을 맞아 기울었기에 바로잡아 주었건만 금년에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렴 가용 정도는 수확할 수 없을까 싶어 수확량은 걱정하지 않지만 나무들이 빨리 늙어 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그제(20일) 오후에는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를 대문 쪽으로 옮겼다. 장흥을 지나는 길에 모종을 몇 개 얻어 키웠던 사연이 있는 나무다. 화분에 심어 키우다가 몇 번 자리를 옮긴 탓인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제대로 크지 못하더니 최근 숙지원에 울타리에 옮겨 심은 후에 빨간 열매를 맺기 시작한 나무다.

다시 옮기는 것이 미안하지만 호랑가시나무를 집 앞에 심으면 잡귀를 막아준다는 민간 속설이 있어 몇 번 생각하다가 대문 오른쪽에 자리를 잡아준 것이다. 잡귀가 있는지 또 정말 잡귀를 물리쳐 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집 일들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가시에 찔려 가면서 혼자 느릿느릿 옮긴 것이다. 잘 자랄 것으로 기대한다.
 
어제(21일)는 아내의 주문을 받아 매화나무 주변을 정리하고 밭에 거름을 냈다. 매화나무 주변은 전정한 나뭇가지와 깎은 잔디를 버려둔 곳이라 어수선했던 곳이다. 아내는 매화나무 주변에는 박하와 돼지감자 그리고 숙근초 중에서 개화기간이 긴 꽃을 선택하여 심겠다고 한다.

감자는 3월이 오면 제일 먼저 심는 작물이다. 한 이랑만 심으면 충분하기에 스스로 재촉하여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그런 텃밭 일들은 주로 오후에 집중한다. 꽉 짜인 일과는 아니지만 오전에는 주로 신문 읽거나 숙지원 부근을 산책하며 보낸다. 비가 오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녀오는 편이다. 지금은 햇볕이 따갑지 않기에 한 낮에도 텃밭 일이 가능하지만 아마 여름이 오면 산책과 텃밭 일의 시간 안배가 달라질 것이다.

금년 농사도 쉽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이미 일부 지역의 폭설이라는 기상 이변이 보였다. 언제 어느 지역이 어떤 형태로든 자연 재해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그밖에도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기상 이변은 인류에 보내는 심각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부 지방은 강한 태풍에 대한 대비를 수도권과 한반도 허리부분은 폭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밖에도 우리나라 또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기상 이변과 자연 재앙은 현대의 과학으로도 예고가 어렵다고 한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다가오는 자연의 재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의 힘으로 한계가 있겠지만 방풍림 조성, 비닐하우스와 지하수 모터 점검은 물론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여 그런 환경에 견딜 작물을 선정하고 심을 위치를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대비책이 될 것이다. 다행히 숙지원은 물 빠짐이 괜찮은 땅이고 지하수도 넉넉한 편이라 일단은 안심하지만 여름이 오기 전 배수로 등은 손 볼 작정이다. 사람이 상하고 재산 피해를 입은 뒤에 책임 소재를 묻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미리 대비하는 노력은 더 필요할 것이다. 정부도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농산물 가격은 똥값이다. 시금치는 1관에 1천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많이 심은 탓이라며 책임을 농부에게 돌리는 현실이 야속하다.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조차 예측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 입에서 과연 농민을 위한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가격 오르면 즉각 수입하여 농민을 죽이고 가격이 떨어지면 느긋하게 농민들이 죽어가는 꼴을 감상하는 정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금년에도 일단 농산물 수급이라도 원활하여 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었으면 좋겠고 나아가 농민들도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남천은 겨울 꽃처럼 붉다. 열매를 꺾꽂이하면 1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으며 떨어지지도 않는다.
▲ 장독대와 남천 남천은 겨울 꽃처럼 붉다. 열매를 꺾꽂이하면 1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으며 떨어지지도 않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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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푸른 기운이 오르는 봄. 나라 꼴은 망망대해에서 기울어가는 배의 모습이다. 선거 공약은 되는 대로 뒤엎고도 불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 그런 청와대를 죽자 살자 옹호하는 쓸개 빠진 새누리당 이야기는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30여년 만에 보는 내란죄를 보면 실소(失笑)밖에 나오지 않고, 진보당 못 죽여 안달하는 모습을 보면 70년대에 인혁당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던 박정희의 모습이 겹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국가 망신시킨 증거조작, 그런 증거로 간첩을 만들고자했던 검찰, 형사사건의 유추해석 금지를 어기고 추정되는 증거만으로 판결을 한 법원을 보면 쥐약 먹은 개가 죽기 직전 눈에 파란불을 켜고 제 자리를 뱅뱅 돌던 모습이 떠오른다. 야당이라도 온전했으면 좋으련만…! 새누리당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 살 깎기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선거철이다. 시골 마을에도 모르는 얼굴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파헤치겠다던 야당의 특검 주장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근혜 퇴진!" 외침도 시들하다. 그러나 안타깝긴 하지만 시골에 박힌 촌노인의 처지에서 마땅히 할 일도 없다. 겨우 되지 못한 인간들을 향해 경멸과 분노와 비웃음을 담아 글을 쓰지만 촛불 든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것 같지 않아 미안하다. 

메주 세덩이는 우리 콩으로 집에서 만들었으나 1년 먹으려면 부족하여 다섯덩이를 더 구입하여 장을 담갔다. 아내는 소금을 저울에 달아 물에 녹이는 중이다. 작은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숯과 고추를 띄우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날이었다.
▲ 장담그는 날 메주 세덩이는 우리 콩으로 집에서 만들었으나 1년 먹으려면 부족하여 다섯덩이를 더 구입하여 장을 담갔다. 아내는 소금을 저울에 달아 물에 녹이는 중이다. 작은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숯과 고추를 띄우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날이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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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원과 정성을 담아 농사를 준비한다. 기계를 빌면 하루 일이요 힘 센 머슴이라면 사흘도 걸리지 않을 텃밭일이다. 그렇지만 손으로 하는 일은 더디기만 하다. 더구나 비가 오면 창밖의 풍경을 보며 놀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쉬어가며 하늘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일한 흔적은 쉬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황금 연휴겠지만 농부들에게 보이는 일을 접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후에 나무 두 그루 옮겼더니 석양이 되고 만다. 내일은 거름을 뿌리고 다음 날에는 씨고구마 넣기 또 다음 날에는 감자 심을 밭 만들기….

참, 야콘 모종 만들기 할 때가 가까워온다. 지난해 메주콩 5되를 수확했는데 그 콩 중 일부로 세 덩이의 메주를 띄워 장을 담갔다. 아내는 금년 농사에서 우리 콩 한 말 수확을 목표로 한다. 내년에는 열 개의 메주를 띄울 계획이란다. 텃밭농사,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메주, #텃밭농사,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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