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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몇 개 주가 있을까?"

답은 50개다. 미국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손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좀 더 까다로운 물음을 던져보자.

"제퍼슨(Jefferson) 주의 위치는?"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사람은 아마도 극히 드물 것 같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동맥이나 다름 없는 5번 주간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할 때였다.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제퍼슨 주'(State of Jefferson)라는 커다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던 내가 처음 들어보는 주 이름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최북단을 지나고 있는데, 왠 제퍼슨 주? 설상가상으로 조금 더 가니, '제퍼슨 주 상공회의소' 명의로 세워진 길가 표지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표지판을 지나치자 얼마 안돼 고속도로 출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곧바로 운전대를 꺾어 고속도로를 빠져나갔다. '와이리카'(Yreka)라는 출처를 짐작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소도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내 중심부로 차를 몰고 들어가니, 한층 더 '가관'이었다. '제퍼슨 주 주민'이라고 쓰여있는 자동차 번호판 프레임을 달고 돌아 다니는  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민들 가운데는 '제퍼슨 주'라는 글귀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제퍼슨 주의 '전모'가 윤곽을 드러낸 건, 한 상점에 들렀을 때였다. 가게 주인은 "여기 사람들은 독립을 원해요. 우린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캘리포니아 남쪽 사람들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만의 주를 세우고 싶은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야 좀 더 상세히 알게 됐지만, 제퍼슨 주 독립, 보다 정확하게는 남쪽 캘리포니아로부터 북쪽 캘리포니아의 분리 움직임은 반세기도 훨씬 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다. 분리 독립 운동의 목표는 북부 캘리포니아를 이웃인 남부 오리건 주와 합쳐, 제퍼슨 주로 만드는 것이다.

주민투표 등을 통한 분리 움직임은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극히 최근에도 이 문제가 제기돼 논란이 되는 중이니까. 캘리포니아 북부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와이리카를 제퍼슨의 수도로 지지하고 있다고 그 상점 주인은 덧붙였다.

북부 캘리포니아와 남부 오리건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걸린 문제였지만, 내게는 독립을 꿈꾸는 그들의 의식 자체에 더 관심이 갔다. 남북으로 갈린 우리 상황에서 '분리독립'은 입밖에 내기조차 어려운 단어이다. 예를 들어, 국내의 특정 지역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추진했다가는 아마 '내란 음모'로 지탄받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주들은 우리 관점에서는 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위를 갖고 있다. 미합중국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독립된 나라와 버금갈 정도로 각자의 강력한 사법체계와 문화, 정서 등을 갖고 있는 탓이다. 우리의 광역시나 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주에 주어진 권한은 막강하다.

이러다 보니, 주들이 맞닿아 있는 지역에서는 터무니 없다 싶은 일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가 맞붙어 있는 이른바 '쓰리 코너스'(three coners)라는 지역을 지나칠 때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조그만 개울 하나를 넘어 애리조나로 진입했는데 갤런 당 기름값이 1달러 이상이나 뚝 떨어졌다. 자동차로 10여 분도 안 될 거리에 위치한 두 주의 주유소 휘발유 가격차이가 무려 20~30% 안팎이나 되는 것이었다. 주유소 주인들 얘기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석유 정제 기준과 세금 부과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반대로 주유소에 딸린 상점에서 파는 담배는 애리조나가 캘리포니아보다 1달러 이상 비쌌다. 

내 생각엔 미국의 주들이 자신들만의 독립체계를 고집하는 건, 유럽계 백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 낸 주역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수천 년 유럽의 역사는 분리독립의 기운이 보다 지배적이었다. 중국보다 훨씬 작은 땅덩어리에 수십 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반면 중국은 인구가 많은 것은 물론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도 유럽보다 더 다양하지만, 하나로 통합하려는 힘이 통사적으로 볼 때, 더 크게 작용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쪽일까?

제퍼슨 주?
 제퍼슨 주?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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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5번 주간고속도로 옆에 세워진 건조물에 '제퍼슨 주'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독립 상징
 독립 상징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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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리카라는 도시의 한 가게 주인이 제퍼슨 주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오른쪽 사진은 그의 가게에 있는 상품의 일부로, 제퍼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모자(위)와 제퍼슨 주 도로 개선공사용이라는 설명이 쓰여진 다이나마이트 상자이다.

제퍼스 번호판
 제퍼스 번호판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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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주 주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차량번호판 프레임(위)과 이 프레임을 단 차량(아래 왼쪽).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주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5번 주간고속도로 옆에 버젓이 붙어있는 '제퍼슨 주 상공회의소' 명의의 알림판.

기름 값
 기름 값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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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위 왼쪽부터) 인접지역의 같은 날 기름 값. 자동차로 서로 십 수 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주유소들이지만, 휘발유 가격이 천양지차이다. 주법 때문에 석유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캘리포니아 주유소는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아래 사진) 이 주유소는 이런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대형 트럭 등을 주 고객으로 삼는 영업전략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장실
 화장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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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주의 한 체육공원 화장실. (왼쪽) 밖에서 다른 사람이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다른 주에는 드문 이런 구조의 공중화장실을 도입한 것 또한 나름의 법적 근거와 논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특이한 공중화장실이 들어선 건물과 체육공원. (오른쪽)

경계 지역
 경계 지역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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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모니터에 나타난 시간은 태평양 시각(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후 2시 42분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와 접경에 있는 애리조나의 한 가게 벽시계는 3시42분을 가리키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쓰는 주 경계 지역 등에서는 GPS(지구위치 측정시스템)의 오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왼쪽) 주마다 경제 시스템이 다른 점에 착안해, 애리조나에서 주유소 영업을 하는 캘리포니아 출신 남성이 "돈벌이가 좋다"며 싱글벙글하고 있다. (오른쪽 위) 하지만 이 남성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딸린 상점에서 파는 담배는 캘리포니아에서 보다 1달러 안팎 비쌌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시에 관한 뉴스, 정보를 모은 비영리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제퍼슨, #분리독립, #미국,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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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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