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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이상하리만큼 한국을 찾아오는 새로운 종의 새들이 늘고 있다. 원래는 한국에 살지 않던 새지만,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한국에 온 미기록 희귀조류들 얘기다. 이렇게 미기록 희귀조류들이 느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만 해도 69종이 새로 발견되었고 관찰 빈도수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작년만 해도 서울의 한 도심 공원에서 미기록종(black-winged kite) 새가 발견되어서 보러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새로운 손님들이 방문해주었다.

설날 전날 밤, 페이스북 친구가 AI 관련해서 기자회견을 하러 서울에 왔다가 한 도심 공원에서 꼬까울새를 관찰했다는 글을 실었다. 짤막한 동영상도 함께 올라왔는데 크기는 참새나 딱새처럼 작은 산새 크기로 가슴부터 얼굴이 귤색이고 가슴에는 뒤집힌 하트 모양의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새 등장... 가슴이 뛴다

이 작고 앙증맞은 새가 어떤 새인고 하니, 주로 유럽권과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시베리아 쪽에서 흔히 보이는 외국 새인데 국내에는 2006년 3월 전남 홍도 철새연구센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기록으로 보면 이번이 국내에서 세 번째 발견됐다고 하는데 뭍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녀석의 출몰 소식이 어찌나 빨리 퍼져나가던지 발견되자마자 많은 사진사가 다녀갔다. 기자회견을 연 주인공보다 더 많은 셔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한데 나를 진짜 설레게 하는 소식은 이번에 서울에서 발견된 새가 꼴랑 이 녀석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꼬까울새 급으로 귀하다는 부채꼬리바위딱새도 서울 도심 공원에서 발견되었다. 부채꼬리바위딱새 역시 2006년에 금강휴게소에서 발견된 것이 첫 기록으로서 관찰기록이 많지 않은 귀한 새다. 그 외에도 올겨울부터 서울 중랑천에서 발견된 적갈색흰죽지와 붉은가슴흰죽지라는 이례적인 손님들까지, 지금 서울은 희귀종 조류 천국이다.

가슴에 오렌지색 뒤집혀진 하트 모양 무늬가 선명하다.
 가슴에 오렌지색 뒤집혀진 하트 모양 무늬가 선명하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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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렇게 귀한 이국 새들이 하필이면 우리나라 최대 도시인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서울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새들이 서울을 찾아왔다기보다는 서울에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런 귀한 새들도 흔히 발견되는 게 아닐까 싶다.

설날, 할머니보다 귀한 녀석 만나러 간다

이 녀석들이 찾아와준 곳이 서울이라 참 다행이다. 서울이라면 자가용이 없는 나도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날씨가 설 당일을 제외하고 모두 비가 온다고 해 녀석들을 볼 기회는 오로지 설날 당일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절이지만, 이 귀한 녀석들을 만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시간과 경로를 잘 짜보니 아침 일찍부터 나가면 오후 늦게라도 혼자서도 할머니 댁으로 충분히 갈 수 있을 듯했다. 이제 출발만 하면 된다. 새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발견 장소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길 바라는 수밖에.

가능하다면 중랑천에 나타났다는 적갈색흰죽지와 붉은가슴흰죽지도 보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우선 꼬까울새와 부채꼬리바위딱새를 우선순위로 세웠다. 시간이 나면 나머지 녀석들도 보기로 하고 우선 한 지인이 안내한 곳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이렇게까지 심장이 뛰는 건 오랜만이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면서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빨리 가서 보고 싶다. 마치 택배를 시켰는데 집 초인종이 울렸을 때의 기분이랄까.

꼬까울새가 발견되었다는 장소 근처에 도착하자, 설날 아침인데도 사진사 두 분이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기인가 보네'

평소 같았으면 열댓 명의 사진사들이 학익진을 펼치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설날이라 그런지 몇 명 없었다. 사람이 적을수록 새 보기는 수월해진다. 놀랍게도 내가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사진사들의 카메라가 향한 풀숲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선명한 귤 빛색 가슴, 꼬까울새다.

꼬까울새.
 꼬까울새.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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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사람들의 산책로 바로 옆에 있는 풀숲을 근거지로 삼았다. 풀숲을 절대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위험한 것이 있다 싶으면 바로 풀숲으로 들어가고, 괜찮다 싶으면 풀숲 바로 앞에 있는 노박덩굴 열매를 먹으러 나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꼬까울새 사진을 봤을 때 이상하게도 사진들이 전부 한 장소에서 찍힌 사진들이라는 걸 알았다. 보통 이런 작은 산새들은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왜 이 녀석은 여기 한 곳에만 고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멋들어지게(?) 죽은 나뭇가지를 풀숲 앞에 놓아놓고 그 위에 꼬까울새가 찾아오도록 노박덩굴 열매를 올려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즉 연출, 새를 보기 위해서 유인해 놓은 것이다.

고목 나뭇가지 위에 앉아 사람들이 놓은 노박덩굴 열매를 물어가는 꼬까울새.
 고목 나뭇가지 위에 앉아 사람들이 놓은 노박덩굴 열매를 물어가는 꼬까울새.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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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이러한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푸르름과 생명력이 있는 나뭇가지 위가 아닌 죽은 고목 나뭇가지, 졸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아닌 사람들이 부어준 생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꾸민 장소에 딱 맞게 서준 새의 모습이 멋있지 않고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나무를 놓아 촬영하고 있던 아저씨가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치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열매를 놓음으로써 새를 더 쉽게 찾고 찍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습성을 관찰할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취미로 생태사진이나 조류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고가의 장비로 셔터 누르는 재미로 찍을 게 아니라, 좀 힘들더라도 새를 찾아다니고 기다리는 재미도 느끼면 좋을 텐데... 요즘은 결과물만을 추구하는 듯해 안타깝다.

횃대를 손보고 있는 사진사.
 횃대를 손보고 있는 사진사.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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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을 접하기 전, 쌍안경으로만 탐조하던 시절에는 산을 오르고 계곡을 돌아다니면서 도감에 나오는 이 새 저 새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힘들게 돌아다니다 새를 찾으면 쭈그리고 앉아 쌍안경으로 새의 조그만 움직임 하나하나를 집중하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새를 만나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새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점점 더 멋진 사진, 좋은 사진에만 만족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사진만을 추구하니 정작 새에 대한 애정이 식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사진보다는 생명인 새를 더 사랑하고 아끼려 노력하지만, 그때만큼이나 새를 향한 애정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현재 필드에 나가서 보면 내가 그러하듯이 대부분 사진가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 더 열심인 모습이다. 점점 새보다는 새 사진에 집착하게 되면서 새들의 사생활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새들을 날리거나, 둥지 사진이 잘 안 나온다고 주변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예술(?) 사진을 찍기 위해 둥지 안에 있던 새끼 새를 꺼내놓고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장면을 찍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꼬까울새가 사람들이 놓은 노박덩굴열매를 물어가고 있다.
 꼬까울새가 사람들이 놓은 노박덩굴열매를 물어가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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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구도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꼬까울새가 자주 앉아서 먹이를 먹는 말뚝을 뽑고, 말뚝과 말뚝끼리 묶은 공원 줄이 거슬린다며 풀어놓았다. 돌아가기 전에 다시 원상복구를 하면 공공시설물 훼손으로 벌금 물을 일은 없어도 꼬까울새는 자신이 자주 앉던 말뚝과 줄이 사라지자 선뜻 풀숲 밖으로 잘 나오지 못했다. 

설날이지만 열 명 넘는 사진사들... 목 빠지게 기다려 

탐조문화가 잘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선 이러한 연출촬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할 지 궁금하다. 부채꼬리바위딱새가 있는 곳은 상황이 어떨까? 꼬까울새와는 작별을 하고 서둘러 부채꼬리바위딱새가 있다는 다른 공원을 향해 움직였다.

부채꼬리바위딱새가 나타난다는 장소는 방화동 시민공원의 한 커다란 하수구였다. 정체 모를 거품과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그런 지저분한 곳에 살고 있다니, 먼 길을 날아와 왜 그런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취향 한번 참 특이한 놈이다. 하수구 안이 따뜻해서인가?

이곳 역시 설날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 예상과는 달리 꼬까울새보다는 부채꼬리바위딱새가 더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오히려 이곳에서 열 명이 넘는 사진사들이 녀석의 출몰장소 앞에서 학익진을 펼치고 녀석이 나타나 주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진사들이 몰린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채꼬리바위딱새가 나타나주길 기다리고 있는 사진사들.
 부채꼬리바위딱새가 나타나주길 기다리고 있는 사진사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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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새가 나타날 수가 있나?'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진을 치고 앉아있는 걸 보니 새가 와주기는 하나보다. 이곳도 꼬까울새가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부채꼬리바위딱새가 가까이 와서 앉을 수 있도록 돌들을 땅에 인위적으로 꽂아놓고 주변엔 먹이를 뿌려놓았다. 사람들이 뿌려놓은 먹이가 없었다면 이런 지저분한 하수구에서 어떻게 밥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먹이를 한가득 부어놓았으니 알 길이 없다.

까치도 이 먹이에 관심을 보이고 접근을 했으나 사진사 한 분이 돌멩이를 던져서 까치를 내쫓았다. 말려봤으나 기어코 던졌다. 까치가 부채꼬리바위딱새를 유인하려고 놓은 미끼 먹이를 다 먹으면 곤란하니까 한 일이다. 설날과 연관이 깊은 우리 새 까치가 먼 땅에서 날아온 이국 새를 촬영하는 데 방해된다고 설날에 이런 푸대접을 받다니... 참 야박하다.

부채꼬리바위딱새 수컷 통통한 푸른 몸과 주황색 꼬리깃.
 부채꼬리바위딱새 수컷 통통한 푸른 몸과 주황색 꼬리깃.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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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기다리다 심심해진 사진사들이 카메라에서 손을 놓고 있을 때 어두컴컴한 하수구에서 조그만 검은색 그림자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조그만 공 모양의 검은색 실루엣, 녀석이 틀림없다. 바깥 정황을 살피면서 조심성 있게 움직이던 검은색 실루엣은 점점 밝은 곳으로 나와 줬다. 몸은 한라봉 마냥 통통하고 주황색 꼬리 깃을 제외하곤 모든 몸이 푸른 신비한 색. 드디어 부채꼬리바위딱새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수의 사람이 있는 것을 의식한 녀석은 나갈까 말까 간을 보고, 하수구 앞을 들어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좀처럼 하수구 밖으로 나오질 못 했다. 가끔 밖으로 나온다고는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쪽은 가지 못하고 하수구 입구에 근접한 돌까지만 나와서 먹이를 쏙 물고 다시 하수구로 들어갔다.

녀석을 보고 있자니 누군지는 몰라도 이름 한번 정말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름 그대로 꼬리를 부채처럼 펼치면서 돌만 골라 밟는다. 생긴 대로 노는 녀석이 아니라, 이 녀석은 이름대로 노는 녀석이다. 녀석이 하수구 밖으로 나온 시간을 짧았지만, 한 번 본 걸로 만족한다. 나라도 어서 이 자리를 떠서 녀석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지.

부채꼬리바위딱새가 하수구에서 조심히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부채꼬리바위딱새가 하수구에서 조심히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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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기를 듣는데 정초부터 이렇게 귀한 새들을 만나다니 올해는 정말 시작부터 복이 터진 듯하다. 녀석들이 한국을 찾아와줘서 고맙고 만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편히 지내다 못 가게 해줘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언제 또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올 때는 한국에서도 편안한 시간 보내다 갈 수 있도록 한국에도 올바른 탐조문화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먼 길 날아온 손님인데 다 같이 머리 맞대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새, #자연, #탐조, #수칙,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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