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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박만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2014년 제2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가 열리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박만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2014년 제2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기회의'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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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의 첨병', '공안검열위원회', '박통옹위위원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을 이렇게 규정했다. 이날 방심위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원로 신부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 처분을 내렸다. 관례대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주의 처분을 확정하면, CBS는 재허가 심사 때 벌점 등 불이익을 받는다.

앞서 방심위가 지난해 12월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전한 JTBC <뉴스 9>를 두고 '관련자 징계·경고'라는 처분을 내린 것과 맞물려, 정부 비판 언론을 옥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인 방송에는 솜방망이 제재를 가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심위 내부에서도 이중 잣대 비판이 터져 나왔다. 방심위 야당 추천 위원인 박경신 위원은 23일 회의에서 "TV 조선 등 종편은 크게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서, 왜 <김현정의 뉴스쇼>는 법정 제재를 하느냐"고 지적했다. 27일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여권 추천 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정치권력에 알아서 충성한다"고 비판했다.

방심위는 지난 2011년 5월 2기 집행부가 꾸려진 뒤, '정치 심의', '편파 심의' 논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 같은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을 통해 방송장악을 시도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방심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론노조 등은 '방심위 해체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어떤 곳인가?] 친박, 정권친화적인 인사 일색

방심위는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5월 출범했다. '방송통신융합'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꾸리면서, 방송·통신을 심의하기 위해 방심위를 마련했다. 방심위는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합의제 민간 독립기구로 설립됐다.

하지만 방심위는 사실상의 행정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3명의 위원을 뽑는다. 모두 9명의 위원 중 여권은 6명을 추천하고 야당은 3명을 추천한다. 6:3의 비율이다.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은 합의가 아닌 여권 추천 위원들의 밀어붙이기로 의결된다. 

21일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방심위가 의결한 1083건 중 44.2%인 479건이 다수결로 의결됐다. 여권 추천 위원들의 뜻에 따라 처리됐다는 뜻이다. 방심위의 전신인 방송위는 2007년 458건의 의결 안건 중 단 3건(0.7%)만 다수결로 의결했다. 방송위 부위원장을 지낸 최민희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서 출범한 방심위가 정치심의기구로 전락했고, 다수결이 이런 심의에 악용됐다"고 지적했다.

다수결의 횡포가 이뤄지는 배경에는 보수 편향적이거나 '친박 인사'로 불리는 여권 추천 위원들이 있다. 박만 위원장은 지난 2003년 송두율 교수의 구속을 직접 지휘했던 공안 검사 출신이다. 권혁부 부위원장은 박정희 정권의 한 축이었던 공화당 출신이다. 두 사람은 KBS 이사였던 2008년 8월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을 주도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당시 언론노조로부터 '공영방송을 파괴한 6적'으로 꼽혔다.

엄광석 위원은 2011년 8월 인천 옹진군의 한 식당에서 지역주민 19명에게 박근혜 대통령 지지모임인 '인천희망포럼' 가입을 권유하면서 70만 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했다. 그는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80만 원의 유죄를 받았다. 엄 위원은 2007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당시 박 대통령의 인천경선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친박 인사'다. 구종상 위원은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 지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노골적인 색깔론을 펴기도 한다. 23일 방심위 회의에서 김택곤 위원(야당 추천)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권혁부 부위원장은 "NLL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택곤 위원은 "부정하면 종북이냐"고 되물었다. 또한 엄광석 위원(여권 추천)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등 박창신 원로 신부의 발언을 두고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해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법원, 방심위에 철퇴 가하다] '부당한 심의' 판결 잇따라

23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언론연대, 민언련 회원들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 중징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언론연대, 민언련 회원들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 중징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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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바라기' 위원들이 주도하는 방심위의 심의가 '사망선고'를 받은 지 오래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은 잇따라 방심위의 심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택곤 위원은 "심의의 결정과 판결이 다르다면 누가 접어야 하느냐"면서 "이렇게 하니까 방심위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서울고등법원은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이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받은 주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2012년 1월 <김미화의 여러분>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을 출연시켰고, 방심위는 공정성·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CBS는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강조하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 모두 CBS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24일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인공기를 나란히 배치한 뉴스 화면을 내보냈다는 이유로 <MBC 뉴스데스크>가 받은 '관계자 징계·경고'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인공기를 배치한 것은 뉴스 구성상 필요했다고 판단되고 뉴스를 본 일반인들이 북한을 찬양하거나 대통령을 모욕할 의도로 인공기를 사용한 것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뉴스 배경화면의 배치와 정렬은 방송 편성의 자유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보도를 심의한 지난해 6월 회의에서 권혁부 부위원장은 "숨은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든다"면서 최고 수위 제재인 과징금 부과 의견을 냈다. 엄광석·박성희 위원은 해당 내용이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와 동일한 수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TV조선 <뉴스쇼 판>은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으로 규정하는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의 주장을 내보냈다. 방심위는 지난해 12월 이 방송이 공정성·객관성 조항을 위배했다면서도 가장 낮은 행정제재인 '의견 제시' 처분을 내렸다. 특히,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문제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정 전 아나운서가 이재명 시장과 김성환 구청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배상 판결을 내렸다.

[더욱 거세지는 논란] "추상적인 방송심의규정... 위헌성 제기될 것"

문제는 방심위의 편파 심의 논란이 앞으로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방심위는 최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방송심의의 새로운 기준으로 추가됐다. 이 조항은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의 이유로 들었던 것으로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민언련 등은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의 방송심의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과 같이 방심위 위원들이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이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 정치적 비판방송에 대한 징계를 남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면서 "여야 추천 6:3이라는 위원 구성 하에서 이중 잣대에 의한 정치심의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독소조항은 유지됐다. '재판 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둘러싼 국가정보원의 무리한 수사를 다룬 KBS <추적60분>은 관련 조항을 위반했다며 '경고'를 받았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27일 오후 국회에서 연 '대한민국 방송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주최 민주당 공정언론대책특별위원회)에서 "과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권력은 방송사·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전달하고 이를 무시한 보도를 징벌하며 언론을 통제했다, 방송통신 심의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석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방송 심의 규정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 명확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 위헌성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방송 제재를 명령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방송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강조했다.


태그:#방송통신심의위원회, 편파 심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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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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