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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살길이다
▲ 평화만이 살길이다
ⓒ 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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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시신 도둑을 바라보는 숲경찰

남쪽에 비해 피스 북쪽은 골이 깊으며 산세가 장엄했다. 골이 깊으니 자연 농토가 없고 산은 척박하여 먹을 것이 귀했다. 원숭이가 숲을 강점했던 시절 원숭이들은 이곳에다 숲감옥을 만들었다. 삼년 동안에 걸친 대공사였다. 원숭이들은 숲감옥에다 피스 독립을 외치던 독립운동가와 불령숲민들을 수감했다.

숲감옥은 악산 협곡에 위치하고 있어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고개마다 지키는 병사가 있어 어쩌다 도망을 친다 해도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목숨이 끊어진 시신은 강으로 던져졌다.

시신을 먹고 자란 물속 생명들은 육질이 쫄깃했으며 깊은 맛이 배어나왔다. 원숭이들은 잘 자란 생선을 잡아 올려 원숭이궁에서 밤새 파티를 열었다. 원숭이들이 떠난 후 숲감옥은 먹바위 차지가 되었다.

숲감옥에 수감된 이들은 먹바위가 숲통령이 되자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먹바위는 그들을 풀어주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숲감옥을 더 크게 짓고 자신의 과거를 입에 올리거나 자신과 맞서는 자들을 잡아넣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원숭이 보다 더한 놈을 만났다며 치를 떨었다.
 
숲감옥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큰 고개를 하나 넘고 계곡을 건너도 숲감옥은 보이지 않았다. 낮부터는 안개마저 몰려와 바쁜 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늙은 고라니가 안개를 만난 건 죽음의 강을 떠날 무렵이었다.

늙은 고라니가 본 죽음의 강은 생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강변 모래톱에는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노루와 고라니 다람쥐 청설모 토끼 사슴 양 등의 숲민인데, 그들은 깨지고 터진 채 죽어있었다.

날씨 탓에 시신은 빨리 부패했으며 파리 떼가 강고기보다 먼저 뜯어 먹고 있었다. 배가 불룩한 숲경찰은 쇠갈고리를 양손에 들고 시신들을 처리했다. 애통함이나 비장감을 느낄 수 없는 무심한 표정들이었다.

죽음의 강 주변엔 시신을 노리는 자들이 꽤 많았다. 숲에 먹이가 떨어진데다 힘들이지 않고도 먹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그들을 죽음의 강으로 모이게 했다.그들은 숲을 쏘다니다 배가 고프면 죽음의 강으로 모여 들었다.

강변엔 언제나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시신더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잽싸게 시신을 훔쳐 달아나면 되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도 숲경찰은 으레 있는 일이거니 하며 그들을 소리쳐 쫓지 않았다. 숲경찰로서는 누가 먹던 어차피 처리해야할 시신이니 굳이 막을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시신들은 숲경찰의 기분에 따라 던져졌다. 어떨 때는 한 번에 서넛을 강에 던져 넣었고, 어떨 땐 시신을 잘게 뜯어 낚시 밥처럼 흔들며 강고기들을 수면 높이 뛰어 오르게도 했다. 숲경찰은 지느러미를 퍼득이며 수면을 박차는 강고기를 보며 낄낄거렸다.

"어따, 저 놈이 간밤에 먼일이 있었나 오늘은 왜 저렇게 비실비실해."

낚시 밥 놀이도 재미없다 싶으면 숲경찰은 먹이를 뿌리듯 시신을 강으로 던졌다.

"옛다, 많이들 먹어라."

시신이 눈송이처럼 후두둑 떨어지면 덩치 큰 강고기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은 포악했으며 사나워서 저희들끼리도 먹이를 두고 물어뜯으며 싸웠다.

늙은 고라니와 눈이 큰 고라니는 시신이 쌓인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시신 근처에 이르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눈이 큰 고라니가 악취를 참지 못하며 구역질을 했다. 그 소리는 숲경찰에게까지 날아갔다. 하지만 시신 도둑쯤이라고 생각했던지 숲경찰의 시선은 금방 돌려졌다.

늙은 고라니는 힘들어하는 눈이 큰 고라니를 쉬게 하고 시신더미를 헤쳤다. 청설모를 들어내고 노루를 들어내고 아기 토끼를 들어냈다. 광장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던 이들이었다. 늙은 고라니가 시신을 하나씩 들어낼 때마다 파리 떼가 윙윙 시신을 따라 날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눈이 큰 고라니의 몸이 들썩이더니 구역질을 또 했다.

"어머니, 구역질이… 왜 이렇게… 나는지 모르겠어요……."

눈이 큰 고라니가 괴로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구역질은 말하는 순간에도 욱욱 치밀어 오르는지 눈이 큰 고라니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거 암만 해도 입덧인가보다."

늙은 고라니는 숲으로 뛰어가 물이 싱싱하게 오른 갈나무뿌리 하나를 가져왔다.

"이걸 질겅질겅 씹으면 속이 가라앉을 게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도 함께 찾아야 하는데……."

눈이 큰 고라니가 나무뿌리를 받아 들며 말했다.

"아이를 찾겠다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곳에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하는 일이니 마음 쓰지 말거라."

늙은 고라니는 다시 시신더미로 올랐다. 시신들을 들어내고 또 들어내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조금씩 보이면서는 늙은 고라니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침내 시신더미의 바닥을 확인한 늙은 고라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얘야, 아이가 없구나."

"어머니, 다행이에요!"

눈이 큰 고라니가 울먹이며 늙은 고라니의 품에 안겼다.  

원숭이 왕에게 충성맹세 혈서 쓴 먹바위

죽음의 강을 떠나 안개를 헤쳐 나가던 늙은 고라니는 아무래도 길을 잃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감촉이 한결 같을 수는 없었다. 자작나무 숲이 아무리 크다 한들 이토록 끝도 없이 펼쳐져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머니, 여긴 아까 지나간 길 같아요."

눈이 큰 고라니가 코를 흠흠 거리며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런 거 같구나."

늙은 고라니가 안개로 자욱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머니, 숲감옥은 아직 멀었겠지요?"

"큰 산을 세 개는 넘어야 한다는데 우린 겨우 하나 밖에 넘지 않았잖니. 안개 때문에 걸음이 늦어지니 큰일이구나." 

그때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앞에서 들려오는 건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린지 분간을 할 순 없었다. 늙은 고라니와 눈이 큰 고라니가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이봐, 딱따구리. 뭘 그리 숨죽이고 있나?"
"벌레 잡다가 걸리면 물고기 밥이 될 텐데 어찌 나무를 쪼나?"
"허, 이런. 아무리 촌구석이지만 소식이 깜깜일세."
"그게 뭔 소리여?"
"지금 온 숲민이 다 울고불고 야단도 아니야."
"울어?"
"그려, 지금 숲민들이 꽃바람 1혼지 뭔질 하는 거 반대한다며 먹바위 궁으로 몰려가고 있다는구먼."
"뭔 얘긴지 자세히 말해봐."
"나도 저쪽 마을에 먹이 구하러 갔다가 들은 얘긴데, 숲민들이 우는 자유를 달라며 먹바위 궁으로 쳐들어가고 있다는 거야. 숲경찰과 숲얼단도 다 도망갔대. 어쩌면 먹바위 딸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래? 그럼 지금 나무를 쪼아도 되는 거네?"
"그럼, 곧 세상이 바뀔 것인데 뭐가 두려워. 마음껏 쪼아봐."
"고마워. 숲새!"

딱따구리가 나무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잠시 후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숲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너도나도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숲에서 시작된 울음은 곧 북쪽 숲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머니, 숲에 뭔 일이 생겼나 봐요."

"그러게 말이다. 근데 저들이 말하는 세상이 바뀐다는 건 대체 뭔 소리냐?"

늙은 고라니가 물었다.

"먹바위 딸이 나쁜 짓을 자꾸만 하니 숲민들이 들고 일어난 모양이에요."
"먹바위도 그러더니 그 딸까지 왜 그런다니. 내가 찍어주긴 했어도 너무하는구나."
"저 욕하는 소리는 듣기 싫은데다 욕심이 많아서 그럴 거예요."
"그건 먹바위를 꼭 빼닮았구나. 봐라, 먹바위 딸이 지금처럼 숲통령이 된 게 누구 때문이었더냐. 다 애비가 챙겨놓은 게 많으니 그렇게 된 게 아니더냐. 하여튼 가진 것들이 더 하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여."
"예, 맞아요. 먹바위 가문이 원숭이들이 피스에 오기 전까지는 이름도 없던 집안이라고 해요. 먹바위가 원숭이 군대에 들어가면서 숲민들의 땅을 빼앗아 지금의 먹바위 가문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근데, 먹바위가 원숭이들 한테 충성맹서를 했다는 건 사실이냐?"

늙은 고라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박정희, #친일파, #박근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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