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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곳곳에 붙어있는 굴. 신안군 압해면 복룡마을 앞 갯벌 풍경이다.
 갯벌 곳곳에 붙어있는 굴. 신안군 압해면 복룡마을 앞 갯벌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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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압해면에 있는 모새나루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매섭다. 두꺼운 겉옷도 무용지물이다. 모새나루를 끼고 있는 복룡3구 마을은 80여 가구 170여 명이 살고 있다. 갯벌낙지와 압해배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최근 무안 운남과 연륙교가 놓여 개통된 마을이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넓은 갯벌이 거무스름한 속살을 드러낸다. 넓이가 25㏊에 달한다. 이 갯벌에 굴이 지천이다. 굴 양식장이라지만 특별히 관리하지 않는다. 바다가 키우고 썰물 때에 비치는 햇볕이 몸집을 부풀린다. 굴과 함께 감태, 낙지, 짱뚱어, 다슬기도 함께 살고 있다.

"남해 쪽 굴은 바닷물에 줄을 매달아 키우지라. 우덜 것은 뻘에서 지 맘대로 자라요. 여그는 그 흔한 김 양식장 하나 없는 깨끗한 곳이여. 다른 굴하고 비교하면 섭하제."

굴을 채취하고 있던 최송자(58) 마을 부녀회장의 말이다. 지난 3일이다.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다. 신안군 압해면 복룡마을 앞 갯벌이다.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다. 신안군 압해면 복룡마을 앞 갯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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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굴을 담은 망태가 군데군데 늘어서 있다.
 갯벌에 굴을 담은 망태가 군데군데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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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다라에 싣고 왔는디, 이젠 힘이 부쳐서 못해"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마을 아낙네 네댓 명도 갯벌로 향한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긴 장화를 신고 있다. 손에는 망태를 들고 있다. 아낙네들은 푹푹 빠지는 갯벌을 헤집고 다니며 굴을 주워 담는다. 얼굴엔 금세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고된 작업이다. 망태에 가득 굴이 담긴다. 그 망태엔 주먹만 한 부표가 하나씩 매달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갯벌 위에 망태가 줄지어 선다.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자 아낙네들이 맨몸으로 갯벌을 빠져나온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갯벌을 감춰 버린다. 이번에는 기다리고 있던 남정네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부표를 달아놓은 굴 망태를 하나씩 싣고 모새나루로 되돌아온다.

"옛날에는 다라(함지박)에 싣고 끌고 왔는디, 이젠 힘이 부쳐서 그렇게 못해. 굴은 주워 담은 망태에 부표를 달아놨다가 이렇게 바닷물이 들면 끌려 올려 배에다 싣고 와. 힘도 덜 들고 수월해."

방금 전까지 갯벌에 나가 굴을 채취했던 한 아낙네의 말이다.

갯벌에 널브러진 굴 망태들. 이 갯벌에서 채취한 굴이 가득 들어있다.
 갯벌에 널브러진 굴 망태들. 이 갯벌에서 채취한 굴이 가득 들어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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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마을 할머니들이 작업장에 모여 조새로 굴을 까고 있다.
 복룡마을 할머니들이 작업장에 모여 조새로 굴을 까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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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하루 4-5만원씩 번디... 그게 어디여"

나루로 옮겨진 굴은 세척을 거쳐 마을에 있는 작업장으로 옮겨진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나선다.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들이 조새로 굴을 쪼아댄다. 굴의 속살을 발라내는 작업이다. 숙련된 손놀림 그 자체다.

하나씩 껍데기를 벗은 굴은 뽀얀 우윳빛 속살을 드러낸다. 손톱만한 탱탱한 굴 몇 개를 입안에 넣었더니 부드러운 육즙이 묻어난다. 싱싱하면서 쫄깃쫄깃한 맛이 그만이다. 입안이 상큼한 바다 향으로 가득 찬다.

이 굴은 전량 자연산으로 통한다. 양식 굴보다 씨알은 작지만 갯벌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향이 뛰어나다. 육질도 단단하다. 맛도 빼어나 '석화(石花)'란 별칭을 얻고 있다. '갯벌굴'로도 불린다.

"몸놀림도 쉽지 않은 노인들이 하루 4~5만 원씩 번디, 그것이 어디여. 여그 오면 친구도 많아 심심하지도 않고. 하루 해가 금방 가분당께."

조새로 굴을 까던 한 할머니의 얘기다. 이렇게 굴을 까는 날이면 할머니들은 경로당이 아닌 이곳 작업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돈도 벌 수 있어서다.

복룡마을 앞 갯벌에서 채취한 굴. 양식 굴보다 속살이 작지만 맛이 별나다. '갯벌굴' 또는 '석화'로 불린다.
 복룡마을 앞 갯벌에서 채취한 굴. 양식 굴보다 속살이 작지만 맛이 별나다. '갯벌굴' 또는 '석화'로 불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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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실 마을기업 대표가 마을 앞 바다를 배경으로 굴 하나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성실 마을기업 대표가 마을 앞 바다를 배경으로 굴 하나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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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은 4㎏에 4만5000원씩 팔린다. 입소문을 듣고 밀려오는 주문량을 맞추기가 버거울 정도다.

"지금까지는 굴이 없어서 못 팔아요. 벌써 주문이 일주일 치가 밀려 있어라. 팔고 난 돈이 대부분 어르신들의 인건비로 지출된디, 이만하면 성공한 것 아니것소?"

마을기업(1004신안굴양식영어조합) 정성실 대표의 말이다. 농업을 주업으로 삼던 마을주민들이 본격적으로 굴 채취에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서다. 마을기업이 설립되면서 돈벌이가 된 덕분이다.

"널려 있는 마을의 자원을 내버려둔다는 게 안타까웠지라. 젊은 사람덜이 모여 머리를 맞댔고. 그때 생각해낸 게 마을기업이죠."

정 대표의 말이다. 마을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지원금으로 작업장을 만들었다. 고된 작업을 대신해 줄 굴 운반선과 세척기도 구입했다. 마을에 활기도 살아났다. 주민들이 한데 모여 일하면서 화합도 됐다. 주민 소득도 높아졌다. 희미해져만 가던 마을공동체도 되살아났다.

오는 18~19일 '제1회 신안 굴축제'를 여는 것도 그 덕택이다. 굴축제는 신안군이 지역과 시기에 맞춰 매달 여는 별미축제의 시작이다. '천사섬 신안 굴, 천사의 입맛을 사로잡다'를 주제로 굴요리 경연대회, 굴요리 시식회, 굴 까기 체험, 수산물 깜짝경매 등이 준비되고 있다.

복룡마을 앞 갯벌. 이른바 '석화'로 불리는 신안굴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복룡마을 앞 갯벌. 이른바 '석화'로 불리는 신안굴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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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안굴, #신안굴축제, #1004신안굴양식영어조합, #복룡마을, #마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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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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