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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드림팀의 ‘베르테르’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의 가슴을 향해 정직한 돌직구로 정면승부에 나섰다.
 2013년 드림팀의 ‘베르테르’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의 가슴을 향해 정직한 돌직구로 정면승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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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젖은 표정으로 해바라기 사이를 걷는 롯데와 쓰러진 해바라기들을 뒤로 한 채 노오란 리본으로 손목과 총을 조용히 감아올리는 베르테르, 그 장면을 바라보며 누구도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지 못한 채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것 말곤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조광화 연출을 중심으로 구소영 음악감독이 이끄는 11인조 오케스트라,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 그리고 레전드 엄베르(베르테르 역으로 분한 배우 엄기준을 일러 부르는 애칭) 등으로 꾸려진 드림팀의 활약은 '혹시'를 '역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작년 가을에 이어 올해 겨울 재회한 '베르테르'였지만, 한층 강화된 드라마와 캐릭터들의 보다 뚜렷해진 감정선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요동치게 했다.

막이 오르자 아름다운 발하임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이트를 베이스로 한 클래식한 느낌의 무대와 한편에 위치한 해바라기는 베르테르의 변함없이 순수한 사랑을 연상케 했다. 은유적이면서도 세련미를 더한 무대와 어우러진 한정임 디자이너의 의상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해바라기가 수놓인 베르테르의 노란 조끼와 라임 색상이 은은하게 비치는 롯데의 레이스 원피스 등의 의상은 전체적인 무대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심리변화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2006년 이후 오랜만에 무대에 선 엄기준은 베르테르에 오롯이 자신을 맡긴 듯 보였다.
 2006년 이후 오랜만에 무대에 선 엄기준은 베르테르에 오롯이 자신을 맡긴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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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를 향한 애절한 사랑으로 베르테르가 겪는 일련의 감정변화를 극대화시킨 건 음악의 공이 컸다. 지난해 14인조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비교하면, 피아노와 현악기만으로 구성된 11인조 오케스트라의 깊고 섬세한 선율은 베르테르의 설렘과 기쁨, 고통과 아픔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데 힘을 보탰다.

한편 2002년을 시작으로, 2003년과 2006년 이후 오랜만에 '베르테르'로 무대에 선 엄기준은 롯데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후 사랑의 불길에 휩싸여 통제력을 잃어버린 채 마음이 질주하는 대로 몸을 맡기는 베르테르에 오롯이 자신을 맡긴 듯 보였다.

전미도의 연기를 통해 롯데 캐릭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전미도의 연기를 통해 롯데 캐릭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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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역의 전미도 역시 그 이상의 롯데를 보여줬다. 알베르트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결핍과 베르테르를 향한 묘한 끌림 사이에서 어쩌지 못한 채 여지없이 흔들리는 롯데를 연기하는 그녀를 보며 오랜만에 롯데 캐릭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 드림팀의 <베르테르>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의 가슴을 향해 정직한 돌직구로 정면승부에 나섰다. 물론 관객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세상에 정직한 거만큼 힘이 센 건 없으니까. 사랑 앞에서 주판알을 튕겨보지 않는 게 오히려 바보로 취급당하기 쉬운 세상이다. 그러나 덜 아프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비겁해지기보다는 멍들고 깨져 사라진대도 마음을 온전히 불태우는 베르테르의 사랑 또한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베르테르>를 보며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삼켜냈던 진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뮤지컬 베르테르, #엄기준, #전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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