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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정권이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즉시 집행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후견인이자 북한 정권의 '넘버 2'였던 장성택이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 종파행위자'로 낙인찍혀 수백 명의 당-정-군 책임일꾼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나간 지 나흘만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이란 제목의 보도문에서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확증해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면서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었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13일자 2면 전면에 2장의 사진과 함께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소식을 전했다.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소식을 보도한 노동신문 2013년 12월 13일자 2면.
▲ '만고역적 장성택'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 소식을 보도한 노동신문 2013년 12월 13일자 2면.
ⓒ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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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정치적 숙청이 확인되었을 때만 해도, 이미 공개적으로 숙청이 되었고 김일성 가계를 지칭하는 '백두혈통'의 인척이자 북한 최고지도자의 고모부라는 점에서 장성택이 사형은 면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치적으로 숙청된 지 나흘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그 나흘 사이에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장성택의 죄행은 3천자(정치국 확대회의 결정문)에서 6500자(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판결문)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죄행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3천자(결정문)에서 6500자(판결문)로 늘어난 장성택의 죄행

조선중앙통신이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었다"고 확증한 죄목은 '국가전복음모행위'이다. 한 마디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역적 음모를 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전복음모'를 입증할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유일한 증거는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라는 장성택의 자백뿐이었다.

자백의 내용도 두리뭉실했다. 자금 및 무력 동원이나 쿠데타의 시기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는 장성택의 막연한 진술뿐이다.

총대에서 권력이 나오는 대표적 병영국가인 북한에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나 '원수'도 아니고 '총리'가 되려고 했다는 자백을 국가전복음모로 규정한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장성택 국가전복음모 사건은 '북한판 이석기 사건'이나 '북한판 조봉암 사건'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오히려 김정은 정권이 장성택에게 사형을 집행한 '본심'은 판결문에서 '국가전복음모'라는 죄목보다는 '국가전복음모'에 이르기까지 장성택의 행태에 대해 더 상세히 기술한 대목에서 드러난다. 즉, 북한의 '1호 사진' 이미지로 김정은식 통치를 분석한 '국방부가 흘린 사진 2장, 장성택 숙청 불렀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장성택의 '불경죄'와 '괘씸죄'가 숙청을 초래했다는 추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 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장성택 '1번 동지' 호칭이 '백두 혈통'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

국방부 정보본부가 지난 1월 31일 국방부 기자실에 배포한 제4차 당세포 비서대회에 김정은과 함께 조선중앙TV에 나온 장성택 행정부장의 삐딱한 모습을 담은 사진 2장. 남한 언론의 관련 보도는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권력의 특성상 ‘백두혈통의 유일영도체제’를 옹위하려는 세력에 ‘불경스런 2인자’를 제거할 명문과 빌미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방부 정보본부가 지난 1월 31일 국방부 기자실에 배포한 제4차 당세포 비서대회에 김정은과 함께 조선중앙TV에 나온 장성택 행정부장의 삐딱한 모습을 담은 사진 2장. 남한 언론의 관련 보도는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권력의 특성상 ‘백두혈통의 유일영도체제’를 옹위하려는 세력에 ‘불경스런 2인자’를 제거할 명문과 빌미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연합뉴스-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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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판결문이 "놈(장성택)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 장성택은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한 배경에 대해 나흘 동안 집중적으로 추궁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올해 1월 말에 열린 제4차 당세포 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할 때 삐딱하게 앉아있거나 딴 곳을 보는 모습이 국방부 정보본부에 의해 포착되어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또 지난 4월 25일 인민군 창군 열병식에서 모두 거수경례를 하는데 장성택은 다른 곳을 보다가 뒤늦게 경례를 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방송된 바 있다.

특히 판결문이 장성택에 앞서 처형된 장성택의 '심복'인 노동당 행정부의 리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거론하며 "제놈이 있던 부서(행정부)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 놓았다"면서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 동지'라고 춰주며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장성택의 측근들이 장성택을 '1번 동지'라고 부르며 '소왕국'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백두의 혈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 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이처럼 판결문의 대부분이 장성택과 그 측근들에 대한 행태를 비판한 데서 알 수 있듯, 장성택에 대한 판결을 공개하고 사형을 즉시 집행한 것은 스탈린식 공포 정치를 재현한 '99% 대내용'으로 보인다. 실제로 6500자의 판결문에서 '대외용' 메시지로 읽을 수 있는 나머지 1%는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이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고 한 대목뿐이다.

여기서 말한 '외국'은 중국을 지칭한다. 장성택이 국가전복에 성공해 집권했을 경우 중국의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망상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표적 친중파로 분류된 장성택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큰 환대를 받았는데, 당시 홍콩 언론이 "북한의 섭정왕 장성택이 방중했다"고 표현한 것도 김정은의 심기를 크게 거슬리게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극단적 공포정치 할 만큼 불안하거나 취약하다는 반증

판결문에서 장성택의 죄행을 지적하며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공화국에) 많은 빚을 지게 하고,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적시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친중파로 분류된 장성택에 대한 잔인한 처형은 서방세계는 물론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에게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반대파나 경쟁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은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와 갑산파 숙청 등 50~60년대부터 3대를 이어져온 것이다. 김정일 시절에도 주체농업 실패와 2010년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서관히와 박남기를 공개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친중 세력인 연안파나 갑산파 숙청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관히나 박남기의 경우도 처형 장면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전세계가 연결된 지금, 장성택 공개 처형은 '전파력이 큰 실제 상황'이다. 20세기 냉전시대에서 통용된 스탈린식 공포 정치는 21세기 뉴미디어 시대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는 피를 나눈 형제국인 중국의 누리꾼조차도 이미 김정은을 '포악한 돼지'로 조롱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남한 젊은 세대의 대북 혐오감을 조성하고, 대외적으로 김정은 정권을 더 고립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공개 처형은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훼손하는 어떤 도전도 용납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지만, 이를 뒤집으면 극단적 공포정치를 해야 할 만큼 김정은 정권이 불안하거나 취약하다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태그:#김정은, #장성택, #김정일, #스탈린, #공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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