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일(토)~6일(일)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http://nt-heritage.org)의 회원들과 함께 전북 군산과 충남 논산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군산, 논산, 익산, 완주의 역사와 문화, 근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간략한 강의와 답사를 통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매년 7~8회 정도 연례적으로 거행되는 회원 및 일반 시민들을 위한 행사다.

한국에서는 아직 내셔널트러스트라고 하면 생소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 1895년 영국에서 자연보호와 근대문화유산보존을 위해 설립된 전통 있는 시민단체다. 이 단체는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역사 건축물과 환경을 기부금, 기증, 유언 등으로 취득하여 이것을 보전, 유지, 관리, 공개함으로써 차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군산시
▲ 김수종 군산가다 군산시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에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http://www.nationaltrust.or.kr)가 발족했다.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설립(주무관청 환경부) 직후 멸종위기 식물인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의 농지 912평을 매입했으며, 이후 서울 성북동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옛집을 매입했다.

또한 2004년 남한강 상류의 동강 보전을 위해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제장마을의 땅 5200평을 매입했다. 이후에도 '나주 도래마을 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연천 DMZ 일원 임야',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 '내성천 범람원'을 확보하여 시민유산으로 보전관리하고 있다.

2004년 최순우 옛집을 시민들에 개방하면서 문화유산의 전문적인 관리 운영 및 모금을 위한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주무관청 문화재청)되었다. 지금 재단법인은 '최순우 옛집', '나주 도래마을 옛집', '권진규 아틀리에', '원서동 고희동 가옥' 등을 소유 혹은 운영, 관리하고 있다.

이번의 군산, 논산 지역 답사는 주로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군산지역의 건축물과, 조선의 3대 시장 중에 하나였으나 식량수탈을 위한 방편으로 익산 및 군산을 철도와 항만 거점으로 개발하여 일제 강점기 후반부터는 쇄락을 길을 걸어온 논산의 강경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주요한 일정이었다.

서울의 양재동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한 우리 일행은 11시에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은 1899년 개항하면서 거류지가 설정되고, 격자형 도시공간이 계획되었다. 이후 전북의 일본인 거점도시가 된 군산은 항구와 철도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동국사 군산
▲ 일본절 동국사 동국사 군산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전북 최초로 1903년 제일은행 군산지점, 1907년 18은행 군산지점, 1923년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각각 개설되었다. 한편 종교를 통한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1면에 1신사가 세워졌고, 광복 이후 신사는 불타거나 철거되었다. 일본식 불교를 포교하던 '동국사(東國寺)'가 금광동에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국사는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8·15광복 뒤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1934년에 지어진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다.

범종루
▲ 동국사 범종루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정면 5칸 측면 5칸의 목조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 홑처마 형태로 높이 솟아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건물 외벽에는 창문이 많고, 처마는 일반적인 한국의 사찰 처마에서 볼 수 있는 단청도 풍경도 없이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른 사찰로 법당의 내부 공간이 바뀌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붕과 처마가 높고 길어서 여름에는 무척 시원할 것 같은데, 역시 일본건물은 겨울에는 매우 추울 것 같아 보였다. 일본유학을 하여 일본 절에는 너무 자주 방문한 경험이 있는 나는 대웅전에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지만, 아직도 한국에 일본 절이 남아 있다는 것과 특히 절 뒤편에 대나무 숲이 있는 것이 보기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소소하고 작은 종각과 범종을 보고도 놀랐다. 일본의 종은 작았구나!.  

동국사를 둘러 본 우리들은 다시 길을 돌아 인근 월명동의 '옛 군산부윤 관사'를 잠시 둘러보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요즘으로 보자면 시장관사였던 이곳은 1990년대까지 관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식당으로 쓰인다
▲ 군산부윤관사 식당으로 쓰인다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이후 1996년 일반에 불하되어 현재는 식당으로 쓰이고 있는데, 내외부가 많이 개조되어 현재는 원형이 많이 변형되어 있었고, 건물 뒤편에 석등, 석탑, 연못 등이 있는 정원이 있어 예전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했다. 나름 보기 좋게 수리를 하면 역사관이나 문화공간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약간은 아쉬웠다.

이어 '신흥동 일본식가옥'이라고도 하고 '히로쓰 가옥'이라고도 불리는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가옥을 찾았다.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1925년 건축한 근세 일본 무사 가옥이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2채가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진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놓여 있다.

군산
▲ 히로쓰가옥 군산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히로쓰는 지주가 많았던 군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다.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 2칸이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2009년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히로쓰가옥, 무사의 집이다
▲ 군산 히로쓰가옥, 무사의 집이다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나는 무사들이 사용하던 주택을 그대로 옮겨온 히로쓰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특히 유난히 삐걱삐걱 소리가 많이 나는 마루를 걸어가면서 여전 사무라이들이 왜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마루에서 소리가 나도록 집을 지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적의 침입을 사전에 알고 싶어 했던 사무라이와 히로쓰의 얼굴이 내 눈 앞에 이중으로 어른거렸다. 사무라이를 닮았을 것 같은 장사꾼 히로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고우당
▲ 일본식 게스트하우스 고우당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이어 인근 월명동의 '고우당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도심 한가운데 일본식 가옥이 10채 정도 남아 있는 것 같아 놀라서 둘러보았지만, 최근에 지은 일본식 집으로 숙박과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파는 게스트하우스로 너무 운치도 없고 시끄러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도저히 숙박에 대한 끌림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잠시 쉬어가면서 차를 한잔하거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용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시설은 그만 만들었으면 한다. 외양은 닮을 수 있어도 오랜 시간의 흔적까지 담을 수 없는 없는 현실을 공무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차라리 방금 전에 살펴본 부윤 관사나 히로쓰 가옥을 말끔하게 수리하여 숙박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 같은데, 안타깝다.

벌써 정오를 한참 넘기니 배가 고프다. 아침으로 선식 한잔을 하고는 군산까지 왔으니, 피곤하기도 하지만 배도 고프다. 인근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쇠고기무국으로 식사를 했다. 20년 전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할 때 겨울이면 매일 먹던 무국을 이번에 다시 맛본 기분이다.

간혹 제사를 지내는 밤에나 먹게 되는 무국을 먹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이런 평범한 음식을 파는 기사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좀처럼 이해는 가지 않았다. 암튼 나는 맛있게 먹었다. 무와 쇠고기, 생선 조림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을 한다.

한일옥
▲ 쇠고기무국 한일옥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하고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는 항구와 은행, 세관 등이 있던 장미동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15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길로, 중간에 유명한 이성당 빵집도 보이고, 멀리서 밀려오는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곳이다.

군산
▲ 이성당 빵집 군산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가장 먼저 간곳은 동경대학 출신의 건축가로 서울의 천도교 중앙대교당, 덕수궁 미술관, 중앙고등학교 서관 및 동관 등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 與資平)'가 설계한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은행 뒷편에서
▲ 조선은행 군산지점 은행 뒷편에서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진짜 예쁘고 튼튼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다. 2층의 벽돌 건물로 층고가 높아 실제로는 4층 높이와 비슷하며, 함석판을 이는 모임지붕이 특징이다. 장방형의 평면으로 정면 중앙에 출입구가 있고, 측면에 부출입구가 있다. 서양 고전주의 건축의 디자인 원리인 대칭과 수직을 강조했다.

정면 중앙에는 5개의 평 아치창이 있고, 경사가 급한 지붕 경사면에 길고 높은 창을 두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서울에 있는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느낌이 비슷하다. 나는 사실 소설가 채만식 선생의 <탁류>에 나오는 호색가 고태수가 다니던 이 은행이 떠올랐다.

창이 무척 크다
▲ 조선은행 지점장실 창이 무척 크다
ⓒ 김수종

관련사진보기


당시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본 상인들이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 데 기여한 침탈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쓰이다가 유흥시설로도 잠시 사용되기도 했다.

화재로 한참 동안 비어 있다가 지난 2008년 복원작업을 거쳐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개관되어 일반인들에게 군산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태그:#군산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