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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예리항 전경. 칠락산 반달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흑산도 예리항 전경. 칠락산 반달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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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흑산도로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흑산도 아가씨'를 흥얼거렸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쾌속선이 닿는 흑산도 예리항에서는 가수 이미자의 애절한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부두도 흥에 겨웠다. 뱃멀미로 힘겨웠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노랫가락이 풀어준다. 지난 3일이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 이 노래로 유명세를 더했다. 흑산도는 목포항에서 90여㎞ 떨어져 있다. 뭍의 시선으로 보면 그리 멀지 않지만, 바닷길을 생각하면 먼 섬이다.

1960∼1970년대엔 어업 전진기지였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에 수백 척의 어선이 들어오면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파시(고기가 한창 잡힐 때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가 열리고 포구는 불야성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때 어부들의 목소리도, 흥청거림도, 부둣가 뒷골목의 술집도 찾을 수가 없다.

자산문화관, 손암 정약전의 삶과 <자산어보> 속살을 보다

목포-흑산도를 오가는 쾌속선. 예리항에 승객을 내려주고 항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목포-흑산도를 오가는 쾌속선. 예리항에 승객을 내려주고 항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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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표지석. 흑산도 예리항에 서 있다.
 흑산도 표지석. 흑산도 예리항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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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항에 들어선 홍어 모양의 흑산도 표지석을 보며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자산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손암 정약전의 삶과 <자산어보>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자산어보는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으로 1801년 흑산도로 유배당한 손암의 저서다. 우리나라의 첫 어류학술지로 평가받고 있다.

자산문화관에서 나와 흑산중학교를 지나니 진말(현 진리마을)이다. 오래 전 흑산진이 있었던 곳으로 흑산도의 중심지다. 도로 오른편으로 천주교 흑산성당이 보인다. 섬의 민속자료와 함께 천주교의 전파과정을 가늠할 수 있는 성당박물관이 있다. 그만큼 천주교의 역사가 깊고 가톨릭 신자도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성당 입구에 줄지어 선 조각상도 성모상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성모상과 조각상. 흑산성당 입구의 모습이다.
 성모상과 조각상. 흑산성당 입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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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락산 반달봉으로 가는 길. 진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칠락산 반달봉으로 가는 길. 진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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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면사무소 앞에 흑산도 탐방로 안내판이 서 있다. 칠락산(272m) 반달봉(220m)을 거쳐 돌마당과 전듸미(비리의 옛 이름)재, 모듸미재를 지나 상라산 동백나무군락지로 연결되는 탐방로 1구간에 시선이 꽂힌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탐방로를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이 오롯하다. 소사나무, 황칠나무, 돈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뭍에서 흔한 소나무는 듬성듬성 보인다. 길섶에 들꽃도 심심찮게 피었다. 해국과 며느리밥풀, 수원잔대가 예쁘다. 약초로 쓰이는 하얀 천궁과 갯기름나물도 아름답다. 초목이 뭍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반달봉이 가까워지면서 숲길이 가파르다.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힌다. 바쁠 것 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더뎌진다. 싸목싸목 걸어 반달봉에 오르니 제법 넓은 쉼터가 나타난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돌리니 예리항 풍경에 탄성을 지른다. 누구라도 반할만한 풍광이다. 움푹 들어앉은 게 흡사 어머니의 품 같다. 푸근하다. 나폴리가 따로 없다.

반달봉으로 가는 길. 숲길이 잘 단장돼 있어 걷기 좋다.
 반달봉으로 가는 길. 숲길이 잘 단장돼 있어 걷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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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예리항. 반달봉으로 올라가다 뒤돌아서 본 모습이다.
 흑산도 예리항. 반달봉으로 올라가다 뒤돌아서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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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큰재삼거리를 거쳐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니 돌마당이다. 바위가 평평하게 깔렸다.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에 장도가 떠 있다. 섬이 길다. 보기 드물게 산중턱에 습지가 있는 섬이다. 2005년 국제람사습지로 등록됐다. 진귀한 새와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다.

돌마당에서 길은 전듸미재와 모듸미재로 이어진다. 옛 이름 그대로의 지명이 더 정겹다. 끝없이 펼쳐지는 파아란 바다도 넉넉하다.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도 땀방울을 식혀준다.

산등성이를 따라 계속 걸으니 흑산도일주도로와 만난다. 왼편으로 가면 모듸미와 전듸미다. 바위 속 구멍이 한반도의 지형을 닮은 한반도지도바위가 있는 곳이다. 오른편은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상라산(230m) 방면이다. 발걸음이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인지상정이다.

상라전망대, 예리항 풍경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반달봉에서 본 칠락산 줄기.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일주도로로 연결된다.
 반달봉에서 본 칠락산 줄기.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일주도로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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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도를 닮은 바위. 흑산도일주도로에서 만날 수 있다.
 한반도 지도를 닮은 바위. 흑산도일주도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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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미자가 불러 국민 애창곡이 된 '흑산도 아가씨'의 노래비다. 노래비 뒤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철 노래를 듣고 자란 덕분일까. 동백나무 이파리의 때깔이 유난히 좋다.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예리항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상라전망대도 있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예리항이 황홀경이다. 햇살을 등지고 있는 장도 풍광도 장관이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군데서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간다. 흑산도의 대표적인 경물 가운데 하나인 상라리 고갯길이다. 사진 촬영 명소로 소문난 일주도로의 열두 구비 고개다. 발걸음에서도 탄성이 묻어난다.

옛 관아 터가 자리한 고을기미(현 읍동리 마을)를 지나는데 영산도가 바로 앞에 떠 있다. 풍광 빼어난 다물도와 대둔도도 저만치 보인다. 도로에서 가까운 옥섬도 이채롭다. 조선시대 감옥으로 쓰였던 섬이다. 몸체에서 주황색을 띠는 적송이 무리지어 있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상라리 고갯길에 서 있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상라리 고갯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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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라리 고갯길. 도로가 구불구불 열두 구비를 이루고 있다.
 상라리 고갯길. 도로가 구불구불 열두 구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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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닿는 곳이란 뜻의 배낭기미해변엔 돌미역과 다시마가 군데군데 널려 있다. 흑산도산으로 품격이 다른 것들이다. 바다도 평온하다. 간간이 잔물결이 밀려와 몽돌밭을 어루만진다.

진리해변에선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진리당을 만난다. 뱃길의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던 흑산도 민간신앙의 중심이다. 오래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을 통해 소개됐던 곳이다.

진리당을 보고 뉘엿뉘엿 해변을 따라가니 다시 흑산면사무소 앞이다. 숲길과 산등성이, 해변과 마을길을 걸으며 흑산도의 매력을 하나씩 가슴에 담고 호흡하는 알토란같은 탐방로다. 눈길 가는 곳마다 풍광 빼어난 흑산도다.

흑산도 진리 앞바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푸르다.
 흑산도 진리 앞바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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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목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이 오전 7시50분과 8시, 오후 1시와 4시 네 차례 뜬다. 흑산도에서는 오전 9시와 11시10분, 오후 3시30분과 4시20분 목포로 가는 쾌속선이 운항한다.



태그:#흑산도, #흑산도아가씨, #예리항, #상라리고갯길, #흑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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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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