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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입장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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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한민국을 19년 동안 철권 통치했던 그는 이 시대 극우보수의 아이콘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바꾸는 굴종도, 동료에 대한 배신도, 유혈 쿠데타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를 왜 사람들은 아직까지 추앙하는 것일까.

그의 사후 34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제 그에 대한 평가는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2013년 6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는 딸의 선언을 시작으로 역사 전면에 복귀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 작업은 '박정희-박근혜' 대를 잇는 '가신'들에 의해 이미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진행돼 왔다.

정수장학회. 얼마 전 세상을 등진 고(故) 최필립 전 이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관이자 박근혜 대통령을 영애로 보필했던 가신 출신이다.

영남대학교. 경주최씨 일가가 세운 대구대와 지역사학 설립의 모범으로 꼽혔던 청구대를 박정희 정권이 1967년 강제로 통합해 지금의 영남대를 만들었다. 2011년 영남학원 정관이 변경되기 전까지 박정희는 '교주(校主)'로 불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수장학회와 영남학원의 이사장을 모두 역임했다.

정수장학회는 지난 2007년 하노이대학을 시작으로 베트남 장학 사업을 넓혀왔다. 정수장학회는 이와는 별도로 2008년부터 자신들이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는 MBC로부터 해마다 미화 2만 달러를 받아 베트남 국민원조대외조정위원회(PACCOM)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2011년부터는 MBC로부터 미화 2만 달러를 더 받아내 베트남교육진흥기금(VFPE)에 2만 달러를 전달하고 있다. 돈은 MBC가, 생색은 정수장학회가 내고 있는 셈이다.

자료출처: 정수장학회, 배재정 의원실
▲ 정수장학회 연도별 베트남 장학금 지원 내역 자료출처: 정수장학회, 배재정 의원실
ⓒ 배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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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 개발도상국가들을 대상으로 박정희 리더십과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남대는 지난 2009년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을 설립한 뒤 2011년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으로 발전시켰다. 영남대는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을 기반으로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들과 속속 업무협약(MOU)을 맺고 새마을운동 국제화를 위한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는 국제협력선도대학으로 선정돼 4년 동안 24억 원의 국고지원을 받게 됐다.

정수장학회, 왜 베트남 장학사업 시작했나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는, 박근혜 대통령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정수장학회와 영남대가 동남아 개발도상국가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수장학회 최 전 이사장은 2008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던 PACCOM 장학금 전달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베트남에서도 정수장학회 설립자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과거 한국이 베트남전쟁 참가국이었다는 인연, 또는 개발도상국을 돕는 순수한 차원을 넘어 박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의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장학사업의 이면에는 다른 목적도 있어 보인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이다.

정수장학회는 베트남 장학사업의 초점을 베트남전쟁 당시 고엽제 피해자 2세들에게 맞추고 있다. 그 뒤에는 최 전 이사장과 서철재 대한민국 고엽제 피해자 전우회(아래 고엽제 전우회) 베트남 지부장이 있다. 실제로 최 전 이사장은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07년 2월 2일, 당시 박근혜 의원과 고엽제 전우회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했다.

그날은 마침 박 의원의 55세 생일이었다. 당시 고엽제 전우회 홍보국은 누리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나라당 전 대표이신 박근혜 의원께서 55회 생일을 맞이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일구신 가장 큰일인 베트남전 참전 전우들의 고통 및 요구사항 등을 청취하기 위하여 불시에 본회를 방문하여 (줄임)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인 월남참전 및 고엽제환자 전우 분들의 힘든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여 송구스럽다면서 힘 닿는 데까지 우리들의 명예회복 및 복지증진을 위해 헌실할 것과 꼭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줄임) 앞으로도 회원 여러분들의 극진한 관심을 부탁합니다.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의원의 고엽제 전우회 방문 이후인 그해 9월부터 베트남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철재 부회장은 정수장학회의 장학금 수여식 때마다 최 전 이사장과 늘 함께 했다. 결론적으로 최 전 이사장은 고엽제 전우회를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외곽조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베트남 장학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그 뒤에도 매년 고엽제 전우회 총회나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고엽제 전우회 역시 이에 화답하듯이 17대, 18대 대통령선거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새마을운동 2.0'은 '박통 만들기' 프로젝트

지난해 2월 21일 오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딸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아들 박지만씨 등 가족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고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새마을 운동' 관련 전시장.
 지난해 2월 21일 오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딸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아들 박지만씨 등 가족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고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의 '새마을 운동' 관련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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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정관 1조는 이렇게 돼 있다.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영남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출연하지 않고 교주(校主)가 된 대학이다. 영남대는 지난 1988년부터 2009년까지 관선이사 체제였다가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다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7명의 이사진 가운데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영남대는 그 뒤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던 키워드 '새마을운동'을 다시 부활시켰다. 근면, 자조, 협동이 '새마을정신 1.0버전'이라면 나눔, 봉사, 창조로 재무장한 영남대의 새마을운동 국제화는 '새마을정신 2.0버전'에 해당한다. 표면적으로 새마을운동 국제화는 순수 학문 정립과 개발도상국 지원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그 중심에 박근혜 대선캠프 기획조정특보를 맡았던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이 있다. 최 부총장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설립을 주도하면서 '새마을운동=박정희=박근혜'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영남대가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나서자 정부 지원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원이 확연하게 늘어났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들의 각종 새마을운동 조직 지원액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연간 150억 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배재정 의원실
▲ 지자체 새마을운동 조직 지원 현황 배재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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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새마을운동 국비 지원도 늘어났다. 2009년을 기점으로 구미시, 포항시, 청도군이 새마을운동 확산에 적극 나서면서 2009년 10억 원에 불과했던 국비 교부액이 2012년에는 67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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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 관련 지자체 국비 교부 현황 배재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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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도 새마을운동 국제화를 앞세워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알짜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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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 새마을운동 관련 지원·협약 현황 배재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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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남대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설립 한 달 만인 2011년 12월 27일 경상북도와 맺은 업무협약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두 기관은 협약 전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 종주도 경상북도와 세계적인 국가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영남대학교는 새마을운동의 학문적 발전과 새마을 세계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사업을 상호 협력하여 추진하기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협약기간도 2011년부터 2014년도까지로 하되 사업효과를 평가해 협약기간을 재연장 할 수 있다는 등 파격적이다.

정수장학회-영남대의 향후 행보는?

장학사업을 명목으로 튼튼한 외곽조직을 얻은 정수장학회, 새마을운동 국제화를 명목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에까지 '박정희=박근혜' 리더십을 전파하고 있는 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와 영남대가 동남아로 진출한 이유는 분명하다. 선양사업을 넘어 바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였다.

정수장학회와 영남대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재임 이후 정수장학회와 영남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남아 있다. 아마도 박정희,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기리는 선양사업은 계속 될 것이다. 정수장학회 베트남 장학사업은 MBC가, 영남대 새마을운동 국제화는 대한민국 정부가 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5일, 모처럼 고국을 방문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을 만나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노력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반 총장과 현 정권 '핵심 중의 핵심'인 최 부총장의 만남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정수장학회와 영남대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전직 부산일보 기자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태그:#정수장학회, #영남대, #새마을운동 국제화, #박근혜, #장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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