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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의 상징이된 철탑농성장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현대차는 발빠르게 철탑농성장을 치우고 깔끔하게 차선도 긋고 정리해 버렸습니다. 불법파견 중단하라며 시작된 철탑농성 296일만의 일입니다.
 불법파견의 상징이된 철탑농성장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현대차는 발빠르게 철탑농성장을 치우고 깔끔하게 차선도 긋고 정리해 버렸습니다. 불법파견 중단하라며 시작된 철탑농성 296일만의 일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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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목) 오후 1시경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 철탑은 시끌벅적했습니다. 철탑농성을 296일째 이어가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인 최병승, 천의봉씨가 농성을 접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수 백여 명의 희망버스 참가자와 기자들이 철탑농성자의 귀환을 지켜보기 위해서 모여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가족 생계를 위해 일용직 일자리 출근 때문에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2000년 7월부터 2010년 3월 중순까지 현대차 사내업체에 10여 년 다녔지만 억울하게도 이유도 모른 채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하지만 불법파견 판결이 나기 전인지라 희망이 없던 차에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2년이상이면 파견법 제 6조 3항에 의거 고용의제 조항의 법력에 따라 이미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명시문도 써서 불법파견일지라도 파견법 적용이 되어서 저에게도 희망 아닌 희망이 생겨난 근거가 되었습니다.

저도 2003년 5월경에 생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함께 사람답게 살자고 노력했었지만 2010년 3월 중순에 예기치 못하게 정리해고 되었고 같은 해 8월경 부당해고자 신분으로 금속노조에 가입 절차를 밟아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다시 조합원으로 복원하고 불법파견 집회에 함께하고 싶었으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간혹 시간 날 때마다 정보를 알아보는 차원에서 노조에 들르곤 했습니다.

나이들고 일하는데 능력의 한계 때문에 월급 많이 주는 곳은 찾기 힘들고 해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용직 잡부로 일하지만 화단관리하고 책걸상을 고쳐주거나 형광등을 갈거나 교직원이 손 좀 봐달라는 거 찾아가 해주면 되는 것이라 그다지 어려움은 없어 제 적성에 맞습니다. 좀 걱정되는 건 비정규직이고 일용직으로 근로계약이 체결되어 있어서 학교쪽에서 그만 두라면 그만 둬야 하는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입니다.

비정규직이다보니 하루 휴가내면 되지만 그나마 적은 임금에 다음달 생계비가 당장 줄어들 판인지라 휴가 내는 것도 쉽잖습니다. 그래서 296일 동안 비오고 눈오고 바람불고 춥고 덥고하는 날씨 속에서 고생하며 "대법판결 이행하라"고 "불법파견 인정하라"고 철탑농성을 이어온 두 조합원이 내려 온다는데도 못가보았습니다. 8일 저녁무렵 일마치고 가보니 철탑위 농성장이 모두 철거 되었고 천막도 철거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만 엄청 쌓여 있었습니다.

몇 시간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철탑 농성장

철탑농성이 사라진 자리 고시문만 덩그러니... 철탑농성을 시작하자 울산지법에선 매일 1인 30만 원의 사용료를 한전쪽에 내라고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고시문을 세워 두었습니다.
 철탑농성이 사라진 자리 고시문만 덩그러니... 철탑농성을 시작하자 울산지법에선 매일 1인 30만 원의 사용료를 한전쪽에 내라고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고시문을 세워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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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1시 철탑위에서 힘겹게 농성을 이어온 두사람을 보고 싶었는데 못보았습니다. 길다란 사다리차 타고 내려 오면서 설움에 복받혀 엉엉 울던 천의봉 사무장과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슬프다"고 심정을 고백한 최병승 조합원. 겉으론 의젓이 웃고 있지만 속으로 피눈물 삼켰을 현장을 저는 나중에 동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아쉬워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철탑 현장이 완전 정리되기까지 가보기로 했었습니다. 경찰과 협의된 날이 3일이라 했었습니다. 8일 내려 왔으니 10일까지는 있을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노조 관계자가 9일도 있을거라 했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5시 일 마치는 대로 다시 철탑을 찾아 갔던 것이었습니다.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많던 사람도 그 많던 물품도 그 많던 쓰레기 더미도 온데간데 없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황량한 벌판? 그건 아니었습니다. 현대차에서 주차장으로 쓰이던 그곳은 다시 노란 도색으로 주차장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탑농성이 시작되고 몇 개월 후 울산법원 집행관이 세워 놓은 가처분 결정문이 두개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한, 현대차 종업원들의 차량이 다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성자도 농성 물품에 쓰이던 무대 시설도 그 많던 깃발도 그 많던 현수막도 천막도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물품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 하려고 하는 자재들인지 가까이 가서 보았습니다.

수북히 쌓여 있는 은색 철조망과 철탑에 접근할 수 없게 울타리를 칠 철망과 쇠기둥을 어느새 누군가 가져다 놨습니다. 현대차에서 철탑위에 오르지 못하게 막으려고 설치하는 것인지 한전에서 작업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곳엔 다시 철조망을 치고 울타리를 설치할 물품들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앞 철탑농성장. 뭔가 휑하니 허전한 듯한 감정만 마음을 휘돌고 있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7월 20일(토) 희망버스가 온다니까 공장 담벼락을 더 높이는 작업을 했고 정문은 대형 컨테이너로 완전 봉쇄해 버렸었습니다. 8월 8일(목) 오후 1시 철탑농성자가 내려오고 난 후 곧장 철탑에 접근 못하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쳐버리려 작업합니다. 그리고 9일(금)엔 현대차 울산공장장 명의의 담화문도 발표합니다. 그 요지는 이랬습니다.

현대차가 내놓은 담화문, 참 뻔뻔합니다

작업자는 철탑에 철조망 설치를 하고 금지막을 세울 것입니다.
 작업자는 철탑에 철조망 설치를 하고 금지막을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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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금지막에 사용될 자재들
 접근금지막에 사용될 자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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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농성 해제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사태가 재연되지 않길 바라고 철탑 농성이 해제된 만큼 더 이상의 불법행위는 없어야 한다. 정규직화를 위한 특별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어 매우 유감이다. 6개월간 중단된 특별협의가 지난 6월 13일 열렸지만 하청지회는 즉각 불법파업에 돌입했고 원론적인 요구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청지회가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와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 불법파업과 폭력에 의존한 원론적인 주장만 한다면 특별협의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청지회는 철탑농성이 해제되자마자 8일 부분파업한 데 이어 14일 전면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체포영장이 발부된 하청지회 노조간부들이 사내에 잠입해 언제 생산라인을 점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별협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나. 이제는 진정성 있는 대화를 바탕으로 하루빨리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방향으로 사내하청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위 글 내용에서 불법행위나 불법파업이란 단어가 세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마치 비정규직 노조가 폭력에 의존하는 것처럼 반면 현대차는 평화를 원하는 것처럼 쓰여 있었습니다. 현대차와 인연맺고 생계를 이어온 지 십수년째. 저는 2000년 7월 3일 현대차 사내업체에 들어갔으니까 그 이후부터 현대차의 노동착취와 노동탄압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현대차 경비들에게 저도 직접 폭행을 당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폭력적인 현대차의 노무관리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저는 7월 20일 희망버스가 올 때 철탑농성장에 있었습니다. 현대차 울타리 안에 헬맷 쓰고 곤봉들고 방패 앞세워 서 있던 젊은 사람들이 마치 80년대 활약했던 국가 공권력 중 백골단이라 악명 높았던 체포조를 보는 거 같이 섬뜩 했었습니다.

저는 그날 사진 찍느라 앞에 있다가 뒤로 빠졌다가 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지고 팔목에 칼로 난도질 당한 듯한 상처를 입고 뒤에 대기중이던 의료진에 긴급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습니다. 한데도 현대차는 함께가는길이란 자체 유인물을 통해 희망버스를 폭도버스라 하고 폭력에 의존한다고 왜곡시키고 있었습니다. 십수년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저질러온 이유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이 대법판결까지 난 불법파견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불법으로 폭도로 몰아 세우고 있었습니다. 현대차는 자신들이 저지르는 불법이 얼마나 큰 불법인지 알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것인지 정말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8월 말. 희망버스가 다시 온다고 발표했습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발표문에서 현대차가 대법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불법파견을 자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더이상 침묵 할 수 없어서 라고 했습니다. 이제 철탑농성장은 없습니다. 불법파견의 상징이 된 철탑농성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철탑농성 시작된 지 296일만에 말입니다.

불법파견의 상징 철탑농성이 사라진 자리에 희망버스라는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 시행한다고 할 때까지 희망버스는 계속해서 울산 현대차 앞으로 집결할 것 같습니다. 8월 31일 2차 희망버스가 다시 울산 현대차 공장 앞으로 온다고 합니다. 현대차에서 신규채용 강행으로 고립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불법파견 투쟁. 힘든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망버스가 희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버스가 기다려 집니다. 

2차 희망버스 8월 31일 다시 울산 현대차 공장 앞으로 집결. 희망버스가 기다려집니다.
 2차 희망버스 8월 31일 다시 울산 현대차 공장 앞으로 집결. 희망버스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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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차 불법파견, #희망버스, #정규직 전환, #울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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