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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타오르는 촛불.
 빗속에서 타오르는 촛불.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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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MC가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1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NIMC가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1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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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오후 7시가 가까워오자 서울역 광장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NIMC(Not In My Country, 님크)가 주최하는 '국정원 정치 개입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1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20~30대였다. 참가자들의 손에 '20·30대여! 당신의 나라입니다', '국정원이 만든 대통령'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다. 참가자들은 동방신기의 주문, god의 촛불하나 등 7곡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자유발언 시간에는 정치 현실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밝혔다.

NIMC는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시대', '오늘의 유머' 회원들로 구성된 단체다. NIMC는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도록 촉구하고자 매주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4일 첫 집회를 연 이래로 이번이 3회째다. 이들은 18대 대선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가 끝나는 6월 19일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집회가 끝난 오후 9시경 NIMC 서울 대표인 대학생 김아무개(21)씨를 만났다.

촛불광장에 모인 20대... 그들은 왜?

NIMC의 시발점은 인터넷 카페 '여성시대'다. 한 회원이 게시판에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한 번 움직여보자'라는 글을 올렸고, 곧바로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스무 명 남짓한 20~30대 여성들이 모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분노해 모였지만, 막상 모여서 의견을 나누니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 몇 번의 집회로 사그라진다면 '이런 일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야 했다. 20~30대가 나서서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조직된 힘을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

한번 마음을 먹으니 일이 척척 진행됐다. NIMC라는 이름은 회의 중 툭 튀어나왔다. 서울과 부산, 두 지역으로 나누어 활동하게 됐다. 이들은 지난 4월 서울과 부산에서 플래시 몹을 여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좀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촛불집회를 열었다. 힘을 모으기 위해 오늘의 유머나 쭉빵 등 인터넷 카페에 '함께 하자'는 글을 올렸다. 첫 집회가 열린 지난 4일,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인터넷에서 촛불집회 공지 글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인 20~30대였다.

20~30대 여성들의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남성들도 많이 참여한다. 현재 서울 활동 회원은 15명이다. 특히 이날은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일이었다. 참여자들은 집회 중간에 5·18희생 영령에 묵념하기도 했다. 33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집회를 주최한 김씨는 오늘만큼은 집회를 여는 기분이 다른 날과 달랐다고 말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을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던 건 젊은 세대가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 흘려 힘들게 얻은 자유인지 사람들도 알고 있잖아요. 잊고 사는 것뿐이죠. NIMC는 그분들이 만들어주신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했어요. 그분들이 피 흘리면서 지켜낸 민주주의인데 우리가 가만히 있다가 빼앗기면 안 되잖아요. 기성세대는 생업 때문에 바쁜 탓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 일어서야 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는 거예요."

5·18 희생 영령에 묵념하는 집회 참가자들
 5·18 희생 영령에 묵념하는 집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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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2008년 촛불집회의 기억 덕분이었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던 당시 중2였다. 집회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의견을 올리는 것으로 마음을 더했다.

"그땐 어려서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에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걸 우리가 나서서 바로잡을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대학생이 되면 나도 꼭 집회에 참가해서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학생이 되고 촛불집회에 종종 나갔다. NIMC를 기획할 때도 그동안 집회를 다녀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 기존 집회가 무거운 분위기라면 "우리는 20대만의 방식으로 즐겁고 신나게 놀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야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2030세대가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놀면서 세상일에 관심을 두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최대한 젊은 층이 부담 갖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다들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거야' 내지는 '집회는 운동권들만 하는 거야', '집회는 재미없고 무거워' 이런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 문화를 바꿔보고 싶어요. 정치는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 거고, 우리가 참여하면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집회는 우리가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 수 있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집회 참여한다고 내 꿈에 방해될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 슬퍼"

김씨는 NIMC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주위의 시선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함께 참여하자고 친구를 설득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괜히 갔다가 얼굴 팔려서 취직 안 되면 어떡해?', '나중에 큰일 생기면 어떡해?'하는 걱정에 함께 나서지 않았다.

"나는 공부 열심히 하고, 내 할 일만 잘해서 직장에 들어가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집회를 과격한 시위로 보는 주위의 편견도 느낀다. "집회 같은 거 하지 마라"고 진지하게 충고하는 학교 선배도 있었다. 

"저희는 '이 정부가 잘못됐으니까 당장 나가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니까 이걸 확실하게 밝히고 만약에 정말 잘못이 있다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저희의 주장이에요."

김씨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친구들은 저한테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말려요. 제가 나중에 공무원이 될 거니까 더 그래요. 근데 저는 지금 정치 참여하는 거 때문에 내가 내 꿈을 못 이룰까 봐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이해가 안돼요."

악성댓글 탓에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NIMC의 기사나 홍보 동영상 아래에 심한 욕설이나 성적으로 모욕하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너무 큰 상처였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막기 위해 집회 참여자들에게 마스크를 꼭 쓰라고 권유한다.

힘든 일 잊게 하는 한마디... "장하다, 우리 딸들!"

지칠 때마다 김씨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연대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찾아와 주는 다른 시민단체 '아저씨'들이 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집회에 난입해 방해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여성시대와 오늘의 유머 카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도 보내주고 있다. 후원금은 집회에 필요한 초, 종이컵, 방석 등 준비물을 마련하는 돈으로 쓰인다.

함께 참여하지는 못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인정이 큰 힘이 됐다. 김씨의 부모님은 "험한 세상이니 조심하라"고 걱정하면서도 "우리 딸이 당당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셨다.

멀리서 지켜만 보던 시민들도 이들 곁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이게 뭐하는 건가' 관심을 보이는 데서부터, 따스한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직접 간식을 갖다 주는 시민들까지 있다.

"지나가던 한 시민분이 '장하다 우리 딸들!'이라고 외쳐주실 땐 정말 울컥했어요. 어른들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집회를 해줘야 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뜻을 모아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힘든 일들 다 잊게 하죠."

수없이 제보해도 취재하러 오지 않는 언론, 스펙 쌓기 바빠 나 몰라라 하는 이십 대, SNS에서의 분노가 집회 참여로 잘 이어지지 않아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패기와 열정, '내 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놔둘 수 없다'는 정의로운 시민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분노와 슬픔을 즐거운 연대로 승화할 줄 아는 건강한 에너지다.

"'우리가 한다고 뭐가 바뀌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근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세상이 너무 조용해서 다음번에 더 심한 일이 일어날 수 도 있고, 세상은 더 이상하게 돌아갈 거예요. 저는 믿어요. 우리 목소리가 커지면 분명히 바뀔 수 있어요. 다 같이 하면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잘못된 걸 보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해요. 좀 뜨거웠으면 좋겠어요."

NIMC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권력이 아니라 청년들의 문화에 있다고 믿는다. 국정원 정치 개입 규탄 집회는 다음 달 19일로 끝나지만, 그 이후에도 20~30대의 정치참여를 유도하는 다른 형태의 활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태그:#NI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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