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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립 5·18 묘지의 기념관 안에 들어가면, 당시 학살된 시신을 덮었던 피 묻은 태극기가 전시돼 있다. 아직도 핏빛인 선연한 그 흰 바탕 위에 낯익은 글귀가 아로새겨져 있다. 5·18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교훈이며,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지 않았길래, 5·18이라는 참혹한 일을 겪어야만 했을까. 또, 그렇게 기억에서 지워졌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학살자는 버젓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거꾸로 된 현실은, 그 잊힌 기억 때문일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5·18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5·18이 있었던 1980년이면 이미 철이 들었을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 들어봤음직도 하건만 당최 깜깜무소식이었다. 광주 사람이 아니었을지언정, 자기 나라 군인들의 총부리에 최소 수백 명의 시민이 학살된 사건을 전혀 몰랐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몰랐을까. 중학교, 고등학교를 착실하게 다녔고 공부도 곧잘 했던 모범생이었지만, 그 많던 선생님들 중 어느 누구도 5·18에 대해 설명해주는 분이 안 계셨다. 기억이 맞다면, 1988년 즈음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수업시간 '군사독재정권이 광주 학살을 자행했다'는 당시로서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종종 혼잣말하듯 되뇌었을 뿐이다. 물론, 그 분들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쫓겨났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학생들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광주 5·18...영화 두 편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영화<지슬>의 한 장면,
 영화<지슬>의 한 장면,
ⓒ 자파리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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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생각하면 당시 선생님들 모두는 5·18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리다고 생각해서였든지, 아니면 입시 준비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든지 간에, 아이들 중 누군가가 어디서 주워듣곤 5·18에 대해서 묻기라도 할라치면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대학 갈 공부나 해!"라는 지청구만 들어야 했다.

선생님들로부터 "지금은 말하지 못하지만, 너희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 알게 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조차도 듣기 어려웠던 때였다. '금기' 자체가 워낙 많던 시대였으니.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대학생이 됐고, 사회에 나왔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말하지 못하는 시대'는 분명 아니지만, 정작 애써 그것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탓이다.

아무리 참혹했던 역사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나브로 기억에서 흐려진다. 본디 세월은 망각의 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역사를 학교에서 배워야 하고, 졸업해서는 책을 통해 곱씹어가며 기억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성찰해야 할 가슴 아픈 역사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는 말은, 적어도 역사에서는 비겁한 언사다.

그렇듯 '지성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조차 형해화한 5·18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 교양'이라는 점을 전 국민들에게 부각시켜준 일이 있었다.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와 지난해 큰 화제를 뿌린 영화 <26년>의 개봉이 그것이다.

영화 두 편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이제 더 이상 5·18에 대해 모르는 국민은 없다. 나아가 당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군사독재정권과 미국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게 됐다. 학살 책임자에 대한 정치적 처분은 끝났을지언정 역사적 응징은 별개라며 분개하는 국민들도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에서조차도 5·18 즈음이면 시간을 할애해 계기교육을 실시하고, 공중파 방송사에서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는 건 어느덧 관행이 됐다. 5·18 묘역이 국립묘지로 승격한 지 이미 오래고, 과거 '예향'으로 불렸던 빛고을 광주는 5·18로 인해 민주, 인권의 성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가히 기억의 환류이며, 성찰성의 회복이다. 33년 전 겪었던 5·18은 다시 반복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

30여 년 터울로 그대로 반복된 양민학살 그림자

글머리가 길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5·18은 기억하지 않은 무엇이 반복된 사건일까. 권력에 짓밟혀 감춰진 역사가 어디 한둘일까마는, 필자는 바로 6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금기'로 남아있는 제주 4·3을 첫손에 꼽을 것이다. 민주적 정당성 없는 권력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전통'은 30여 년의 터울로 그대로 반복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제주 4·3은 5·18에 견줘 오래 지속된 데다 그 피해 규모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컸음에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은커녕 '폭동'에서 '항쟁'까지 사건을 명명하는 것부터 우리 사회 인식의 차가 여전히 크다. 분명 진상은 하나일 텐데, 여전히 일부 정부 관료들조차 '폭동'으로 규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념관을 짓고 피해자 유족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는 어정쩡한 모양새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사건인 탓일까. 아니면 연이어 터진 10·19 사건과 6·25 전쟁의 광풍 속에 묻힌 탓일까. 대규모 양민 학살이라는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당시 격렬한 좌우 대립 속에 벌어진 정당한 진압 과정으로 지금껏 규정돼 왔다. 제주는 이른바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의 땅으로 불렸고, 수십 년 간 그 억울한 죽음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무심한 세월은 흘렀고 그렇게 잊혀 갔다. 해마다 4·3은 찾아오지만, 방송 뉴스 끄트머리에 단신 처리하는 게 고작이고, 기사로서 가치가 없다고 여긴 탓인지 어느 신문도 1면에 4·3을 올리지 않는다. 지난 정부 때 부터는 과연 4·3 기념식을 계속 해오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줄 분들조차 몇 남지 않았다. 이러다간 얼마 안 가 4·3은 오롯이 역사학자들만의 '학문 영역'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요즘 30~40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들조차 4·3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배운 적도, 들어본 적도 없으니 어찌 그들만을 탓하랴.

명색이 고등학교 교과서인데도 제주 4·3에 대한 서술은 달랑 한 줄뿐이다. '제주도에서는 단독 선거를 반대하여 4·3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제주도민 열 명 중 한 명꼴인 무려 3만 명이나 죽어간 참혹했던 상황을 고작 한 줄로 '압축'해 놓은 것이다.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으며, 제주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차라리 '알려들지 마라'는 다른 표현이다.

4·3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의기투합한 교사들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영화 <지슬>의 한 장면.
ⓒ 자파리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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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3 즈음이면 나는 환절기 감기 앓듯 '병치레'를 한다. 과거 5·18에 다짜고짜 쉬쉬 했던 그런 교사는 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오는 가슴앓이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니잖은가. 여느 기성세대들처럼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교사로서, 4·3의 진실을 미래세대인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건 당연한 의무로 여기게 됐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4·3을 가르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광복 후의 현대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에 배경 지식이 전무한 상태인데다, 고등학교 교과서조차 앞선 언급한 대로 수박 겉핥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활자보다 영상 매체에 민감하고, 교실 수업보다 현장 체험을 중시하는 요즘 아이들의 특성을 감안하자면 더욱 그러하다.

고민이 깊어가던 차에 영화 <지슬>이 개봉됐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26년>이 그랬듯, '금기의 역사'였던 제주 4·3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다. 특히 영상 세대인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교육 자료가 될 것이다. 영화를 통해 당시 제주도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제주 4·3의 진실을 보여주자. 아이들에게 감춰진 역사를 알게 하자."

학년 담임교사들끼리 의기투합했다. 올 봄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기로 결정하고, 4·3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자면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4·3과 관련된 소설 몇 편을 읽게 하는 한편, 지난 4월 2일 영화 <지슬>을 단체 관람했다. 공교롭게도 4·3에 맞춰 전국적으로 동시 개봉된 터였다.

기존 여행사에 맡겼던 수학여행 세부 일정은 영화의 배경이 된 4·3 유적지를 중심으로 동선을 꾸몄고, 수시 메모가 가능하도록 자료집을 핸드북 형태로 별도 제작했다. 또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학년을 몇 학급 단위로 묶어 가급적 소규모로 이동할 수 있도록 온갖 지혜를 모았다.

수학여행과 같은 현장 체험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두려면 '동기 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주도 현지에서 영화 <지슬>의 제작진과 배우 몇 분을 모셔서 영화 얘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해보자는 '무모한' 아이디어는 그렇게 나왔다. 오로지 아이들에게 4·3의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똘똘 뭉친 교사들의 '진심'을 그들은 알아줄 것이다.

"영화 말미 지방(紙榜)이 타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뭉클하더군요. 영화가 아닌 억울한 죽음들의 원혼을 위무하는 한 판의 '해원굿'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은 함께 본 아이들 대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5·18의 상처가 여전한 광주에 사는 아이들인데도 4·3을 아직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애써 보았지만, 교과서 강의를 통해서 가르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습니다. 영화 <지슬>을 보며, 영화 <26년>을 떠올렸습니다. 놀랍게도 몇몇 아이들 역시 그랬답니다.

4·3을 자료 찾아가며 제대로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교과서로는 기대할 수 없는, 단언컨대, 영화의 힘입니다. 그렇듯 큰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비록 소수일지언정 그들이 4·3을 기억하고 알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도록 부디 오셔서 그들을 격려해주시길 간청합니다.

5·18과 4·3의 만남을 통해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진리를 아이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4·3이 제대로 진상 규명 되어 비로소 해원될 때, 5·18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덩달아 상생의 춤을 추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태그:#제주 4. 3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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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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