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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2월 16일 토요일 낮 12시 부평역사 5층에 있는 예식장, 내게는 거기가 세 번째로 서는 주례의 자리다. 태어난 바로 그 해 빼고 내년이면 세 번째 말띠 해를 맞는 내게는 많이 이른 경험이었다.

어색하기만한 그 자리, 어머니를 서울 모임에 모셔다드리고 차 막힐까 봐 집에 차를 놓고 지하철을 탔다. 오전 11시 35분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신랑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발신 버튼을 눌렀다. 긴장한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 뒤에도 예식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내가 두 번째로 주례를 맡았던 오늘 신랑의 친구로부터 두 번이나 전화가 더 왔다. 식장의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지하철 덕분에 낮 12시 예식 시작 시간 3분 전에 주례석에 앉을 수 있었다. 급하게 장갑을 끼고 예쁜 꽃을 왼쪽 가슴 주머니 속에 넣었다. 곧바로 결혼식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민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제자의 결혼식, 세 번째 주례석에 섰다
 제자의 결혼식, 세 번째 주례석에 섰다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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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나?

같은 시각 예식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축구장에는 우리 축구팀의 토요 축구 정기 모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몸은 이곳 예식장에 있었지만 마음은 축구장에 반쯤 가 있었기에 더 집중하기 힘들었다.

축구를 매개로 이 제자들과 오랫동안 가족만큼이나 가깝게 지낸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잠시 축구 생각은 놓아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가뜩이나 어수선한 예식장 분위기를 잡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주례를 맡았던 몇 해 전 가을을 떠올렸다.

2008년 10월 26일, 얼떨결에 술 자리에서 약속했던 첫 주례가 된 날이다. 당시에 무슨 얘기를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축구 클럽 리버풀 FC를 상징할만한 'You'll never walk alone'을 화두로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반려자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로부터 2년쯤 뒤에도 이들 5회 졸업생 중 한 친구이자 지금 우리 축구팀의 영원한 총무의 결혼식에 역시 주례를 맡았다. 이 두 번째 주례사는 일본어 외운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신부가 마침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오메데또 고자이마스"가 아직도 입 속에서 맴돌 정도다.

그리고 또 2년 가까이 흐른 지금, 세 번째 같은 입장에 섰다. 며칠 전부터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그래, 이 책을 선물하면서 한 마디 보태면 당장은 주례사가 기억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읽을 이 책 속의 주옥같은 문장 속으로 자신의 의식과 삶을 기댈 수 있을거야!'

신랑 신부에게 선물로 준 책 <홀가분>(정해신·이명수 글, 해냄 출판사)
 신랑 신부에게 선물로 준 책 [홀가분]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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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정혜신, 이명수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준 책 <홀가분>(해냄출판사)이 바로 그것이었다. 적어도 몇 달 간이라도 떨어져 지내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든 새내기 부부에게 썩 어울리는 내용은 아닐 수도 있지만 20년 넘게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온 내 생각에 이들의 아름다운 첫 발걸음에 큰 보탬이 되는 이야기들이라 믿었다.

마흔이 넘어서 읽은 책 중에서 이 책만큼이나 내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없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은 뒤 학교 도서관에 기증했고 주위를 돌아보며 소중한 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대전에 사는 제수씨는 내가 보낸 이 책을 읽으며 어느 때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고마워했다.

오늘 주례사 속에 이 책을 담아 이야기하며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얽매임'에 대한 사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주말 연속극 <내 딸 서영이>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신부는 오늘도 눈물을 조금 흘렸다. 아무리 주례 입장이라지만 결혼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이미 갈라섰거나 곧 갈라질 것 같은 부부 이야기가 유독 몰려 나오고 있는 주말 연속극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다.

어수선한 예식장 분위기 속에 내 생각이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모른다. 워낙 짧은 시간에 몰아서 내 생각을 전달하다 보니 그야말로 체계가 잡히지 않아 부끄러운 '주례사'였다. 하지만 이 소중한 책 한 권이 내 뜻을 어느 정도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결코 쉽지 않은 고민 끝에 나의 앞에 우뚝 선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에게 부드럽고 듣기 좋은 소리를 더 많이 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 삶을 훨씬 먼저 경험하면서 느꼈던 모자람, 부끄러움, 깨달음 등을 조금이나마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이라는 것을 솔직히 바라보면 분명히 이 책 제목 '홀가분'의 반의어라 할 수 있는 '얽매임'이 먼저 떠오른다. 그 상징적인 결혼식 자리에서 그것도 주례를 맡은 사람이 이 책을 꺼내들었다는 것이 불편한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애초부터 솔직하게 나오지 못하면 그로 인해 쌓이는 불편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나중에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 건너편 뷔페 식탁에 마주 앉은 공선이가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인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참에 여러 권을 한꺼번에 주문해야겠다.


태그:#결혼식, #주례, #책, #홀가분,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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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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