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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날, 밸런타인데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자도 그 중 하나다. 이유가 있다. 연애 3년 차지만, 그간 애인에게 변변한 초콜릿 한 번 건네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수제 초콜릿으로 점수를 좀 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고민을 이어봤다. 작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만들어 연애에 성공한 친구가 생각났다. 카카오톡에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도 초콜릿 만들 거지? 같이 하자"
"뭘 같이해? 구글에서 찾아"
"구글?!? 네이버가 아니라 구글이라고?"
"그래. 네이버 말고 구글"

네이버 말고 구글?

분명 초콜릿 만들기로 검색했는데
▲ 현란한 이미지 광고들 분명 초콜릿 만들기로 검색했는데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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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인터넷을 처음 접속한 이래 시작화면은 언제나 네이버였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치 않고 있다. 블로그, 카페, 뉴스, 웹툰, 각종 검색까지 네이버가 마치 인터넷의 전부인 양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도 당연히 네이버에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를 확인했다.

파워 링크, 비즈사이트, 현란한 초콜릿 이미지들. 평소처럼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가며 정보를 찾았다. 그런데 이날 따라 유독 광고만 눈에 보였다. 읽을수록 짜증만 났다.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구글에서 찾아'

구글 검색창을 열어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를 입력했다. 한 마디로 너무 비교됐다. 바로 전 네이버에서 광고만 읽은 탓도 있지만. 네이버의 자존심 '지식iN'조차 "귀찮게 초콜릿을 왜 만드느냐. 친절한 링크 몇 개 놓고 갈 테니 받는 사람 기분 좋게 이 사이트에서 사라"는 광고로 도배된 터라 차이가 더욱 도드라졌다.

반면 구글 검색은 블로그와 웹 문서가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고는 분리형 박스로 따로 처리돼 있었다. 하지만 구글 또한 블로그와 웹문서 내용이 네이버처럼 광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대로 확인해 봤다. 곧 친구가 왜 '네이버 말고 구글'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엔 원했던 정보들이 있었다.

네이버가 왜?

구글 검색 결과
▲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 구글 검색 결과
ⓒ 구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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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검색어 하나만 놓고 네이버와 구글을 비교할 수는 없었다. '강화도여행정보', '워킹홀리데이 비자비용', '종로영어학원' 등 다른 키워드도 함께 확인했다. 검색 결과는 '초콜릿 만들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네이버는 파워 링크와 비즈사이트 광고가 차례로 나열됐고, 페이지 하단에 가서야 원했던 정보가 있는 웹 문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네이버와 구글에서 6년째 카페와 블로그를 운영 중인 컨설턴트 루씨킴(33)씨는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와 구글의 차이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구글은 콘텐츠가 좋을수록 사람이 몰리게 하였어요. 사람들이 많이 볼수록 콘텐츠가 상위 검색을 차지하죠. 그러니 블로거들이 포스팅을 하나 하더라도 내용에 엄청나게 신경을 써서 올려요. 콘텐츠가 곧 방문자 숫자에 비례하니까요. 그에 반해 네이버는 광고가 우선해요. 콘텐츠가 좋아도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렇다면 네이버는 왜 콘텐츠가 광고에 밀린 것일까. 김씨는 말을 보탰다.

"처음 네이버가 생겼을 때 기억하세요? 혁신적이었어요. 재밌었죠. 지식인 답변 달기가 열풍처럼 불었을 정도로. 당시엔 궁금한 게 있으면 무조건 '네이버에 물어봐'라고 했으니까요. 문제는 이후에 벌어졌어요. 경쟁에서 창의적인 네이버만 살아남았죠. 프리챌, 야후, 엠파스, 라이코스 더이상 만날 수 없잖아요. 다음, 네이트는 아예 밀렸고. 성장을 위해선 언제나 경쟁이 필요한데. 이젠 네이버로 시작해 네이버로 끝나는 독점이 된 거에요. 한국에선 더이상 경쟁자가 없어진 거죠."

김씨의 지적대로 어느 순간 네이버로 사람들이 몰렸다. 영화, 음악, 책, 게임, 뉴스, 검색, 커뮤니티까지.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네이버 한 곳에서 모두 가능해 졌다.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지금의 문제가 시작됐다. 모든 경쟁자를 눌러버린 네이버는 'IT 재벌'이 됐다.

IT 재벌 네이버

한국은 어디에?
▲ IT 산업 경쟁력 보고서 한국은 어디에?
ⓒ B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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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이버가 IT계의 재벌이 됐다고 모든 잘못을 만든 건 아니다. 다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자료가 있으니 BSA(Business Software Alliance)가 EIU에 의뢰해 2년마다 조사 발표한 '전 세계 IT 산업 경쟁력 보고서(IT Industry Competitiveness Index)'다. 우리나라의 IT 경쟁력은 해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특히 2007년 조사대상 66개국 중3위였던 것을 감안하면 2009년 16위, 2011년 19위로 떨어진 것은 충격적인 결과다.

애석하게도 그 중심에 네이버가 있다. 네이버가 시장을 독점할수록 한국 IT 산업은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네이버에 만족하고 IT 강국하면 한국이 최고인 줄 믿고 있는데도 말이다. 경쟁 자체를 아예 없애버린 독과점의 폐해다. 네이버가 처음 성장했던 것처럼, 후발주자들이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

서울대에서 IT 분야를 연구하는 박성환(31)씨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 초창기, 네이버가 사람들에게 심어준 혁신과 변화, 성공의 이미지는 지금의 네이버를 만들었어요. 작은 기업에서 출발해 선발 주자들을 전부 이겼으니 놀라운 성과죠. 네이버의 노력과 인터넷의 확장이 만든 결과입니다. 그런데 지금 네이버를 보면 마치 멀티플렉스 같아요. 영하 15도의 추운 날 데이트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극장, 커피숍, 음식점, 쇼핑몰 모든 게 다 있는 코엑스 같은 곳에 가면 밖에 나오고 싶지 않잖아요. 네이버가 딱 그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포털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게 만들었죠. 네이버의 대세는 이어졌고. 하지만 IT 산업 전체로 봤을 때 이 지점이 문제입니다. 경쟁자가 생기질 못해요. 경쟁 자체를 용인하지도 않고. 네이버가 IT계의 재벌이라고 말한 이유죠."

그는 'IT 재벌'이란 키워드에 맞춰 말을 보탰다.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콘텐츠가 어떤 경로를 통해 노출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보통 티스토리나 타사 블로그를 확인하면 검색경로가 다양하죠. 네이버는 이러한 경로가 90% 이상 네이버에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마치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생산, 유통, 판매를 모두 해결하는 것과 똑같아요. 모든 콘텐츠가 자체 생산되고 그 안에서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닫힌 구조죠.

이 의미, 네이버 밖에서 아무리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놓아도 네이버에선 검색조차 안 되죠. 한국에서 네이버가 독점이라고 말씀드렸죠. 한겨레 2월 11일 보도에서 네이버 검색이 전체 점유율의 75%를 넘었더라고요. 지금의 검색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절대 다른 기업의 성장은 용인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네이버가 IT 독점 재벌로 불리는 거고요."

한국의 IT 발전을 위해

한국과 일본, 걱정된다.
▲ 한국 IT 산업의 현주소 한국과 일본, 걱정된다.
ⓒ B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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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달려왔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로 출발했는데 어느새 IT 재벌 네이버까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네이버를 얼마나 비판없이 수용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독점이 항상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독점에 따른 폐해, 혁신 기업이었던 네이버가 IT 산업의 경쟁 자체를 말살케 하는 검색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혁신과 창조로 대한민국 IT를 이끌었던 시기를 돌이켜 보자. 한국의 IT 산업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최선진국이었다. 하지만 네이버 독점 체제 이후, 사용자는 착각에 빠졌고 새로운 IT 기업의 도전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IT는 지속해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만 성장하는 산업이다. 최초 '벤처바람'과 맞물려 우리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미국의 사례지만 구글의 확장,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기업의 탄생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한국 IT 산업의 발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다. 지금이야 괜찮다고 이러한 현상에 손 놓다 보면 믿었던 네이버마저 사라진 프리챌, 라이코스, 엠파스, 야후의 길을 걷지 말란 법이 없다.

하지만 네이버가 스스로 변화를 이끌지는 미지수다. 이미 IT 재벌로 최정점에 오른 상태다. 이들에겐 당연히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네이버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틈새를 노려 새롭게 성장할 모델을 기대하는 것이 더욱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분명한 건 경쟁과 혁신이 지금의 네이버 독점보다는 한국의 IT 산업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태그:#발렌타인데이, #초콜릿만들기, #네이버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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