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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금요일

Halfway, OR - Baker city, OR

53 mile = 85 km

텐트에서 일어나 뭉기적 대고 있는 내게 빌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다.

"아침 먹을 준비 됐어?"

출발하기 전 아침을 꼭 챙겨주고 싶다던 아저씨가 기어이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레저업체 투숙객들 아침을 챙겨주러 본인은 아침도 거르고 새벽같이 나간 미셸 아주머니를 대신해 아저씨가 일일 주방장이 되었다. 토스트와 스크램블이 금세 마련되었다.

사람 좋은 빌 아저씨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부탁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그와의 인연이 단 하루로 끝나지 않음을 이 때는 알지 못 했다.
▲ 빌 아저씨의 배웅 사람 좋은 빌 아저씨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부탁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그와의 인연이 단 하루로 끝나지 않음을 이 때는 알지 못 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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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다시며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방의 캐비닛이 눈에 띄었다. 아저씨가 손수 만든 작품. 주택 설비 작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도제식 수련을 받고 이제는 본인만의 1인 기업을 차렸다.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집 옆에 위치한 제작소에서 캐비닛을 만들어 배달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일까? 그의 표정은 항시 밝다.

오늘의 목적지는 베이커 시티(Baker city). 출발 준비를 서두르는 내게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오늘 고객 미팅을 거기에서 하기로 했어. 이따 길에서 또 보자고!"

재회를 기약하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서 11마일 떨어진 리치랜드로 향한다. 첫 반절은 급격한 오르막. 나중 반절은 급격한 내리막. 오랜만에 느껴지는 근육의 뻣뻣함이 감당키 어렵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입다 페달만 밟는다. 이 정도면 다 됐겠지하고 고개를 쳐드는데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또 다른 고개.

답답할 만큼 느리지만, 바퀴는 쉼 없이 돌고 돌아 어느덧 나를 패스에 올려놓았다.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내리막. 갓길에 차를 세우고 쉬던 남녀 한 쌍이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그래 이 맛이다. 허나 잊지 말자. 시원한 질주 뒤에는 힘겨운 오르막을 밟으며 흘린 한 땀 한 땀이 있었다는 사실을.

리치랜드를 지나 자잘한 언덕들을 수 차례 넘는다. 어제 80마일 주행의 피로가 남아서인지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힘겹게 고개 하나를 넘어 다시 내리막.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86번 도로. 통행량이 적어서인지 갓길은 매우 좁고 자갈과 모래가 즐비하다.

시원한 내리막을 질주하며 리치랜드로 입성
▲ 리치랜드(Richland) 시원한 내리막을 질주하며 리치랜드로 입성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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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댄스 홀 로드(Music dance hall road)라니!"

표지판 하나에 정신이 팔려 집중력이 분산된 순간 자전거가 갓길로 붙었다. 자갈과 타이어가 맞부딪히며 껄끄러운 마찰음을 냈다. 당황해 핸들바를 돌려보았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자전거는 내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왼쪽으로 중심이 기울면서 자전거는 나를 길 위로 내동댕이쳤다.

"으, 쓰려!"

살짝 얼이 빠진 채 주변을 바라보았다. 페니어백(Pannier bag)이 자전거에서 튕겨져 길 가에 나뒹굴었다. 바나나와 음식을 싼 비닐봉지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도통 보이지도 않았다. 온 몸을 휘감는 심상치 않은 기분에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팔꿈치에 덧댄 팔토시가 찢어져 그 사이로 시뻘건 피가 비적비적 흘러나왔다. 왼쪽 무릎도 심하게 까였는지 찢어진 바지 틈새를 빨갛게 물들이며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옆구리와 허벅지에도 잔 상처가 무수히 생겼다.

뼈와 관절에는 이상이 없지만 큰 충격을 받았던 왼쪽 반신에 얼얼함이 감돈다. 비틀대는 내 옆으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차 한 대. 처량함이 밀려왔다. 도움의 손길은 오래지 않아 다가왔다. 갓길에 멈춘 승용차에서 운전자가 허겁지겁 내렸다. 뒤따라 픽업트럭 한 대도 정차했다.

두 운전자가 합심해 팔을 걷어붙였다. 마침 베이커 시티로 간다는 트럭 운전사 제프 벌딘(Jeff Burdine)이 트럭 짐칸에 내 짐과 자전거를 실어주었다. 300마일(500킬로) 떨어진 포틀랜드에서 사는 제프가 오늘 쉬는 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베이커 시티에서 약속이 없었더라면 나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듯 우연으로 점철된다.

베이커 시티에는 알폰서스(alphunsos) 병원이 있다. 응급실까지 동행한 그는 직원에게 나를 부탁하며 떠났다. 불과 몇십 분이지만 어느덧 친근해진 그가 떠나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응급실 담당 직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를 여러 번 봤던 나로서는 의료비 지출이 염려되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응급실 진료는 일반 진료에 비해 배 이상은 비싸다. 최대한 진료비를 아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관절이나 뼈에는 이상이 없어요. 그저 찰과상이니까 x-ray 찍을 필요도 없고 드레싱만 하면 돼요. 응급실 진료는 필요 없답니다."
"현재 이용 가능한 진료실이 꽉 차서 응급실 외에는 갈 데가 없어요."

직원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본인 부담이 없길 바라며 여행자 보험증서를 내밀었다. 타라락 컴퓨터 자판을 치는 소리에 온 신경이 쏠린다.

"음. 병원 측에서 보험사로 진료비를 청구할 거니까, 본인이 직접 내지 않아도 되겠네요."

휴, 가슴을 쓸어내린다. 제 몸보다 돈을 더 걱정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 동양인 라이더가 의료비를 떼먹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간호사 한 명이 나를 응급실 한 켠으로 안내했다. 당황스럽게도 간호사는 남자였다. 전체 간호사 중 25%가 남자인 미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풍경이다. 누워있는 나를 안심시키려는지 자신이 다쳤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여러 번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자, 고문 받을 준비 되셨나?"

치료도구를 갖춘 그가 짓궂은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다. 옷을 다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내 몸뚱아리를 소독 솜이 쓸고 지나간다. 극심한 쓰라림이 온 몸을 흔들었다. 고통이 심하면 웃음이 나오는 걸까? 참을 수 없는 웃음 소리가 응급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위에서 아래로 소독에 열중하던 그가 무릎 상처에 이르러 손길을 멈췄다. 다른 간호사와 쑥덕거리는 게 심상치 않다. 한 명은 내 상처를 손가락으로 오므리고 다른 한 명이 뭔가를 가져와 무릎에 갖다 댄다.

"한의사라며? 침이랑 비슷한 거야. 당황할 거 없어."

그러니까 그게 뭔데? 입술을 들썩이기도 전에 콱 하는 금속음과 함께 뭔가가 피부를 뚫고 박힌다. 급작스런 통증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상처를 봉합하는 기구인데 외양은 박음쇠(Stapler)와 흡사하다. 10일 정도 지나서 상처가 아물면 그때 다시 병원에 와서 빼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사라졌다.

병원은 언제봐도 삭막하다. 아는 이, 지켜봐주는 이 하나 없는 타국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 응급실의 라이더 병원은 언제봐도 삭막하다. 아는 이, 지켜봐주는 이 하나 없는 타국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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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치료를 마치고 난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자전거 복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짐을 다시 챙겨 터벅터벅 병원 문을 나섰다.

치료 전에 보험 소지 여부부터 물어보는 미국 병원. 현재 미국에는 비싼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민간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이 5000만 명이다. 내가 그들 중 한명이었다면 어땠을지 아찔하기만 했다. 보험 덕택에 병원비는 해결됐지만,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 마침 병원 앞에 버스 한 대가 승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베이커 시티에 단 한 대 있다는 마을버스, 트롤리(trolley)다.

베이커 시티의 주민 대다수는 차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평일에만 운행하는 버스 한 대가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이렇게 희귀한 버스가 지금 이 순간 떡하니 병원 앞에 나타나다니. 자전거의 신이 나를 보살펴주는 것일까? 가까운 모텔 근처에 나를 내려준 버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지다시피 누웠다. 이제 내 여행은 어떻게 될까? 대답해 줄 이 없는 방에 공허함만 맴돌았다.

7월 28일 토요일

Baker city, OR - Halfway, OR

창문 틈으로 밝게 비치는 광채에 위화감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천장이 바라보이고 서서히 주변 사물들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어제 당한 사고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팔꿈치와 무릎의 상처만이 당시의 기억을 현재로 끄집어 내보여줄 뿐이다.

하아. 이제 어떡하지? 목표를 잃은 자전거 라이더는 혼란스럽다. 옷자락에 스칠 때마다 쓰린 몸뚱아리를 억지로 일으켜 객실 밖으로 나왔다. 비척거리며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맥없이 다시 돌아왔다.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플로렌스(Florence)에 도착해 태평양 연안에 발을 적셔보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시애틀로 이사 간 사촌형에게도 한번 들르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여행 도중에 만났던 물리치료사 멜린다 블래어(Melinda Blair) 아주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내게 시애틀에서 보자는 약속을 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많고 갈 길은 멀다.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짜는데 갑작스레 밀려드는 공복감에 정신이 들었다.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한창 식욕을 달래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 세상에. 빌 아저씨가 어떻게 여기까지. 경악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아저씨는 씨익 웃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베이커는 작은 도시야."

어제 사고 직후 나는 여러 차례 빌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오리건 주에서 유일한 희망의 동아줄이었다. 음성사서함에 메시지까지 남겼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시 만나리란 기대를 접고 있던 내게 그의 등장은 충격 이상이었다.

알고보니 그 번호는 빌 아저씨의 작업실 연락처였고, 기술상의 문제인지 회신전화번호가 기록되지 않았다. 음성메시지를 듣고 상황을 파악했지만 연락할 수단을 찾지 못한 빌 아저씨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직접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할프웨이(Halfway)에서 베이커 시티(Baker city)까지는 차로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

촌각을 다퉈 도착한 그는 내가 갔음직한 곳을 어림잡아 보았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요람인 캠핑장을 뒤졌다. 동양인은 묵지 않았다는 답변에 모텔로 눈길을 돌렸다. 모텔 목록을 뽑아들고 가장 가까운 모텔부터 샅샅이 찾아나갔다. 4번째 모텔에 들렀을 무렵, 자전거 복장을 입은 동양인이 묵고 있다는 대답에 그는 무릎을 탁 쳤다. 방으로 찾아갔지만 굳게 잠긴 문 앞에서 다시 돌아섰다.

주변을 배회하던 빌 아저씨 눈에 레스토랑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마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던 내 모습이었을 게다. 이렇게 간신히 나를 찾아내고는 '베이커는 작은 도시'라며 얼버무리던 그의 유머.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던 땀을 통해 그가 했을 걱정과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지. 단 하루 만난 이방인을 위해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곳곳을 뒤져서 반가운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우리 집으로 가자! 여기에 둘 수 없어."

단호한 그의 말에 담긴 진심이 가슴을 쳤다. 어지러이 널려있던 짐을 그러모았다. 그의 도움으로 자전거와 가방을 트럭에 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왔던 길을 다시 되밟는다. 사고가 났던 지점, 신나게 내려오던 내리막. 힘겹게 오르던 언덕. 전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할프웨이(Halfway)에 다시 돌아왔다. 모든 사정을 전해 들었던 미셸 아주머니가 반겨주었다.

"너 집처럼 생각해."

친절한 미국인들은 2층의 침실 하나를 비워주었다. 새하얀 침대보가 두툼하게 깔린 포근한 침대가 나를 맞아주었다. 모텔에서 느꼈던 암담함은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몸을 적셨다.

내가 천국에 있는 것일까?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빌 아저씨 덕택에 하루만에 별5개 짜리 호텔에 묵게 되었다.
▲ 할프웨이(Halfway)에 돌아오다! 내가 천국에 있는 것일까?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빌 아저씨 덕택에 하루만에 별5개 짜리 호텔에 묵게 되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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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이사 가는 이웃을 위해 마련한 만찬. 나까지 10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흥겨운 식사를 즐겼다. 나에 대한 위로와 걱정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돌아가고 잠자리에 들 즈음. 아침부터 있었던 마법 같은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피붙이 못지 않게 대해주는 사람들의 친절.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사람 냄새. 사람은 피부와 인종을 떠나 통할 수 있다. 오리건 주 할프웨이(halfway), 인구 몇 백 명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태그:#미국, #자전거,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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