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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아치
 자연이 만든 아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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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장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 수건을 가지고 샤워장으로 향하는 사람 등으로 새벽부터 활기가 넘친다. 우리도 일찍 일어나 고지대 특유의 싸늘하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저녁 선셋 포인트(Sunset point)에서 보았던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의 모습이 아침까지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이른 아침이라 식사도 거른 채 안내소에서 제공한 지도를 들고 구경할 곳을 찾아 나선다.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자동차 시동을 켠다.     

숙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브라이스 포인트(Bryce Point, 전망대)부터 가보자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면서 핸들을 돌린다. 브라이스 포인트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이라 우리밖에 없다. 기분 좋을 만큼의 차가운 공기와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좋다.

뒤따라온 자동차에서 내린 노부부도 시선을 멀리 두고 말을 잃는다. 눈인사를 우리와 나눈다. 흔히 미국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뷰티풀'이라는 말도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아주 아름다우면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영어 잘하는 외국 사람에게 영어 잘한다고 칭찬하지 않는 것처럼.  

또 다른 전망대를 향해 자동차를 돌린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제목이 붙어 있듯이 국립공원에서는 전망대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음 전망대 이름은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이다. 어떠한 감화 내지는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전망대를 몇 군데 거치며 국립공원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어제 충격으로 다가왔던 국립공원의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즐거움과 자연이 만든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진다. 커다란 아치가 있는가 하면, 위대한 예술가가 특별한 목적으로 섬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다.

넓은 지역에 걸쳐 깊은 계곡에 자연이 무궁한 세월에 걸쳐 만든 조각품을 보며 인간의 왜소함을 다시 느낀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다. 인간은 자연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 일정이 빠듯한 관광객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만큼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는 산책로가 많다. 여행 일정을 바꾸어 이곳에만 며칠 머물면서 산책길을 거닐며 자연과 하나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만약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이곳에만 머물다 돌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많은 곳을 둘러보는 것과, 한곳에서만 머물러 지내다 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을까? 한 번쯤 한곳에서만 오래 머물다 가는 여행도 시도해보고 싶다.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려고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려고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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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조각품을 수집해 놓은 듯 하다
 신이 만든 조각품을 수집해 놓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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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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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로 돌아와 조금 늦은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한다. 다음 목적지는 시온 캐니언 국립공원(Zion Canyon)이다. 시간이 조금 남는다. 텐트를 거두어 차에 싣고 어제 저녁에 들른 선셋 포인트(sunset point)에 다시 들른다. 오후 늦게 본 풍경과 아침에 보는 풍경은 다르다. 어제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은 많이 사라졌으나 차분하게 바라본 풍경에서 또 다른 설렘을 느낀다.    

어제는 저녁이라 관광객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많은 관광객이 계곡 사이를 오르내린다. 사진을 찍는 사람, 그룹으로 온 관광객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관광객 대부분은 유럽 쪽에서 온 듯하다. 물론 요즘에 부쩍 늘어난 중국 사람도 많다. 가끔 한국 사람도 보이고.

어젯밤 늦게 둘러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선셋 포인트 계곡 사이를 내려간다. 같은 곳을 걸어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펼쳐지는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아침과 저녁의 바뀜도 새로운 곳을 걷는 것과 같은 기분을 만들어준다.

삶도 다시 되돌아가며 살펴본다면 어떨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인생길이다.

계곡 사이를 오르내리며 관광하는 사람들
 계곡 사이를 오르내리며 관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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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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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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