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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목요일

Wisdom, MT - Hamilton, MT
73 mile = 116.8 km

모기가 들끓던 리전 공원 공원(Legion park)이여, 안녕! 우리와 함께 하룻밤을 지냈던 하이커 할아버지가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보스턴까지 두 발로 걸어간다는 그는 위즈덤(wisdom)까지 6마일을 남겨두고 심한 탈수 증세로 곤란을 겪었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 그를 차에 태워 우리가 있는 공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가 가진 거라곤 침낭과 잡동사니 조금. 벤치에서 자다 일어난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우리 셋은 출발했다.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Adventure cycling association)이 위치하여 자전거 라이더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줄라(Missoula)로 가는 길. 고개 하나만 넘으면 끝까지 평탄한 길이다. 메리가 선두로 치고 나가고 커트와 나는 약간 떨어져 동행했다. 십여 년 동안 자전거를 탔던 커트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풀어놓았다.

"미국에서 ACA 루트에 포함되지 않은 주가 딱 두 개 있는데. 알아맞혀봐!"
"음. 뉴멕시코? 텍사스?"
"아칸소(akansas) 주랑 내가 사는 오클라호마(oklahoma) 주."

최근 ACA에서 새로운 루트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시카고에서 산타모니카(santa monica)까지 Old highway 66번을 이용해 자전거 길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 오클라호마 주를 경유해야 하는데 주 정부에서 반대가 심해 결렬되었다. 언제쯤 그가 사는 곳에도 자전거 루트가 생길까?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주마다 법이 다른 미국에서 주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그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와이오밍 주에서는 음주 운전이 합법이다. 그는 근처 술집 여주인에게 당장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
"적정 수치를 넘으면 경찰한테 끌려가요."

경찰이 혈중 농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수히 많은 취객들이 핸들을 부여잡고 차를 몬다는 말이렷다. 와이오밍을 진즉 지나쳐 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몬태나 또한 만만치 않은 법률 조항이 있다. 갓길조차 없는 주도로(State Road)에서도 70마일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다른 주에서는 시속 55마일로 제한하는데 70마일 정도면 상위 도로인 인터스테이트(Interstate)에서나 적용될 법한 속도이다. 자전거 라이더 입장에서 그야말로 후덜덜한 일이다.

열띤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커트가 제안을 하나 한다. 정식 경로에서 벗어나 기번스 패스(Gibbons pass)라는 우회로로 들어가 보자는 것이다.

1877년 8월 6일 800명에 달하는 네즈 페르세(Nez perce) 인디언 부족이 이 길을 지나갔다. 5명의 추장들은 자신들을 아이다호 주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 몰아넣으려는 백인들과의 조약을 거부했다. 평화를 간절히 바랐던 그들은 싸움을 피해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

산길은 험하고 가팔랐지만 인디언들에게는 친숙했다. 버팔로를 사냥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번스(Gibbons) 대령이 몰래 그들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1877년 8월 8일 정찰대가 인디언 부족을 발견했다. 보급마차와 곡사포는 나중에 뒤따라 오게 하고 주력부대가 서둘러 나아갔다.

백인들을 믿지 못한 인디언 청년들은 추장에게 후미로 정찰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추장은 백인들과 맺은 평화협정의 신뢰에 금이 간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1877년 8월 9일 고요한 새벽의 공기를 찢으며 미 제 7보병대의 급습이 시작되었다. 그 비극의 무대가 되었던 산길은 가해자의 이름을 버젓이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네즈 페르세(Nez perce) 패스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었을까?

울창한 숲길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 괜찮네

기번스 패스(Gibbons pass) 울창한 침엽수림이 하늘을 찌르는 맑고 상쾌한 산길
 기번스 패스(Gibbons pass) 울창한 침엽수림이 하늘을 찌르는 맑고 상쾌한 산길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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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이 흐르고 침염수림이 울창한 숲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9마일을 가니 기본스 패스 정상이 나오고 다시 9마일을 내리막길로 내지른다. 페달을 밟을 필요없이 산길 9마일을 달리니 느낌이 묘하다. 가드레일 없는 흙길 옆은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이다. 자칫 한눈팔다가는 그대로 황천행이다. 굽이굽이 구곡간장을 돌고 돌아 털털털털 자전거가 굴러간다. 진동이 심해 페니어 백이 세 번이나 랙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핸들을 잡았던 손바닥은 한참이 지나도 얼얼하다.

다비(Darby)에 도착했다. 맥다니엘 부부는 이쯤해서 하루를 마감하려 했지만 내가 그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내일 목적지는 미줄라잖아요. 여기서 쉬면 내일 61.5마일을 가야 돼요. 조금만 분발해서 해밀턴까지 가면 내일 44.5마일만 남는다는 거죠. 그러면 미줄라에 빨리 도착할 수도 있고 쉬는 시간도 늘어나지 않겠어요?"

편의점 앞 벤치에서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지막 17마일을 달리기 앞서 혈당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커트는 약발을 제대로 받는다. 스낵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어 혈당이 높아지면 속도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내가 시속 20마일로 쫓아가보지만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1마일 남겨둔 시점에서 타이어가 털털털털 거린다. 공기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자세히 보니 타이어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불거져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전거 가게가 문 닫기 30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비공 아저씨 말에 따르면 외부의 충격에 의해 타이어 속 코드가 부서졌다. 그래서 빵빵한 튜브의 압력을 골고루 분산시키지 못해 한쪽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타이어를 바꾼다. 버지니아 샬로츠빌(Charlottesville)에서 앞뒤 타이어. 콜로라도 푸에블로(Pueblo)에서 다시 앞뒤. 몬태나 해밀턴(Hamilton)에서 뒷바퀴 하나. 타이어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다.

커트가 돈을 절반 부담하려고 한다. 자신이 기번스 패스로 가자고 꼬셔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눈물겨운 마음씀씀이지만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대신 밥이나 사달라며 농담을 던졌더니 정말로 사줄 기세다. 다시 한번 라이더의 훈훈한 정을 느끼며 하루를 마감한다.

7월 20일 금요일

Hamilton, MT - Missoula, MT
49.5 mile = 79.2 km

미줄라(Missoula)까지는 50마일. 평소 70마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허겁지겁 행장을 꾸려서 캠핑장을 빠져 나왔다.

지금껏 고생한 라이더를 위한 배려인지 길은 평탄하다. 특히 스티븐스빌(Stevensville)을 지나면서 바이크 패스가 16마일이나 깔려 있다. 도로를 사납게 점유하고 있는 차량들을 피해 쾌적한 라이딩을 즐긴다.

롤로(Lolo)에 이르자 자전거 전용도로가 사라지고 자동차들이 우글우글한 정글로 다시 들어서야 했다. 페더럴 루트(Federal Route) 12번과 93번이 겹쳐 지나는 8마일 동안 잊고 있던 공포심이 생겨났다.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스쳐지나가는 트럭들의 행렬에 기가 죽는다.

ACA(Adventure Cycling Association) 본부. 모든 자전거 라이더들의 정신적 고향
 ACA(Adventure Cycling Association) 본부. 모든 자전거 라이더들의 정신적 고향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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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줄라 시가지가 보이면서 차들은 신호 대기를 받느라 속도를 줄였고 나는 안전한 골목을 찾아 꺾어 들어갔다. 39th Street를 지나 히긴스 애비뉴(Higgins Avenue)를 따라 올라가니 고즈넉한 건물이 나타났다.

어드벤처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Adventure cycling association). 왜 가톨릭 교도들이 바티칸(Vatican City)을 찾고, 이슬람 교도들이 메카(Mecca)를 찾는지 이해가 되었다. 생초보가 그토록 기나긴 길을 밟아 자전거 본부까지 무사히 오게 되다니. 여행이 끝난 듯이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방명록에는 오늘 하루에만도 수많은 여행자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직원이 다가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이밀었다. 금세 출력된 사진에 내 이름 석자를 써서 벽에 붙였다. 맥다니엘 부부의 사진이 이미 걸려 있다.

10분마다 한번 꼴로 자전거 여행자들이 들이닥쳤고, 그만큼 수많은 사연이 ACA를 장식하고 있었다. 사진첩 중에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몇 명 눈에 띄었다.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찍은 걸로 봐서는 유학생활 도중 라이딩에 도전한 듯했다.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나를 포함한 라이더들은 ACA 건물 투어를 시작했다. 새로 교회 건물을 사들여 규모가 더욱 커졌다. 자전거 용품과 ACA 지도를 판매하는 공간, 다양한 자전거 관련 서적이 망라된 작은 도서관, 지도 제작 부서 등. 한국에서도 자전거 여행을 관장하는 협회가 생겨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코스를 계발하길 바래보았다.

자전거 여행자들의 '정신적 고향' ACA

우리 여기 왔어요! 맥다니엘 부부와 나의 폴라로이드 사진첩이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여기 왔어요! 맥다니엘 부부와 나의 폴라로이드 사진첩이 나란히 붙어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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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어느 정도 서편으로 기울었을 무렵, 맥다니엘 부부가 묵는 모텔에 나란히 방을 잡았다. TV를 켠다.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전해졌다.

총기난사 사건. 장소는 콜로라도 주 오로라(Aurora) 시의 멀티플렉스 건물이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를 심야 상영하고 있던 도중 한 젊은이가 방탄복과 총기로 무장하고 난입했다. 최루탄을 뿌리고 총기를 난사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다쳤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이건 홈즈(James Eagan Holmes). 내향적이라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말로만 듣던 총기난사 사건을 미국 현지에서 전해 들으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한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콜로라도 주에는 유난히 총기 사건이 잦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다큐멘터리로도 널리 알려진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1999년 4월 20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평소 '트렌치코트 마피아'라 자칭했던 에릭(Eric Harris)과 딜란(Dylan Klebold) 두 학생은 900여 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의 총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총기 소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참사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총기 소지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미국인 대다수는 총기 규제를 원하지 않았다. 엄격한 규제를 원하는 사람은 40퍼센트였던 반면 나머지 60퍼센트는 총기 규제가 강화되길 바라지 않았다.

개인의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 여기에는 미국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과 독립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인들은 스스로 무장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영국으로 대변되는 전제적인 정부의 상비군이 민중의 안전과 권리를 위협한다. 정부에게 모든 무력이 집중된다면 언젠가는 국민의 권리가 빼앗길지 모른다. 자신과 가족의 권리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총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헌법을 만들던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전제적인 정부에 맞서는 국민의 기본권이고 총은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많은 주들이 헌법 비준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명시된 조항이 헌법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제임스 매디슨의 주도하에 10개의 수정 조항이 추가되었다. 그 중 수정헌법 제2조는 "규율을 갖춘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당시 민병대는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모든 시민들을 통칭한 것으로 국민 전체를 가리킨다. 지금도 이 조항은 미국인들에게 무기를 가질 권리는 천부인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이자 전미 총기 협회(NRA) 회장을 역임했던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은 총기 소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용기로 건설된 나라이다. 난 죽어도 총을 포기 못한다. 이것은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 선조들이 물려준 권리이다. 난 장전을 선택했어."

연간 총기 피살자 수. 일본 39명, 호주 65명, 영국 68명, 캐나다 165명, 프랑스 255명, 독일 381명... 그리고 미국 1만1127명. 총기를 소지할 권리가 진정 필요한지 되묻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은 거듭되는 악몽을 겪어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
-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
- 미국의 총기 문화(손영호 저 / 살림 / 2009.03.25)

7월 21일 토요일

Missoula, MT

맥다니엘 부부와 같은 모텔에 묵었던 나는 아침이 밝자마자 숙소를 옮겼다. 혼자 독방을 차지하기에는 비용이 부담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근처에는 공동으로 방을 쓰는 값싼 호스텔(hostel)이 있었다.

애초 계획으로는 미줄라에서 하룻밤만 머물려 했지만 부부 라이더의 설득은 끈덕졌다. 앞으로 볼 길 없는 그들과 하루라도 더 있고 팠던 내 속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아웃도어 매니아인 부부와 함께 R.E.I(Recreational Equipment Inc) 매장에 들렀다. 야외 활동에 필요한 장비들을 종류별로 갖춰놓은 전문 매장이었다.

로이드와 매리 앤더슨 부부(Lloyd and Mary Anderson)는 1938년 워싱턴(Washington) 주 시애틀에 최초의 REI 매장을 세웠다. 초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얼음을 깨며 등산하는 '피켈'을 수입했다. 이들은 아웃도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려 했다.

1970년대에는 산악 등반이나 원정대 등의 전문가들을 위한 제품을 공급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이르러 이사회 결정에 따라 가족 단위 캠핑 문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카약, 자전거, 스포츠 의류 등 다양한 아웃도어 용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1만10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고 1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침낭, 텐트, 옷, 신발은 물론이거니와 휴대용 향신료 통, 계란 보관함, CO₂타이어 충전기, 산악용 조리기구, 접을 수 있는 볼(bowl), 음수(飮水) 백(hydration bag), 6가지 기능을 가진 다용도 키, 생존 시리즈에서 나온 점화 도구 등이 시선을 잡아끈다.

CO₂카트리지. 펑크 난 타이어를 별도의 수고없이 한 번에 충전시킬 수 있는 CO₂주입기
 CO₂카트리지. 펑크 난 타이어를 별도의 수고없이 한 번에 충전시킬 수 있는 CO₂주입기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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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으로 여행을 하던 터라 눈요기 외에는 사치였다. 다만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몇 가지 있긴 했다. 다 찢어져가는 넝마주이 같던 비옷 대신 산뜻한 주황색 우의와 슬리퍼를 하나 샀다.

맥다니엘 부부의 카트에는 이것저것 많이도 담겼다. 지금껏 본 자전거 라이더 중 장비빨로는 최강이 아닐까 싶었다. 계산에 여념이 없는 커트 뒤에서 메리가 속삭였다.

"오늘이 커트 생일이야!"

자전거 여행길에서 맞는 탄신일. 커트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저 멀리 한국에서 온 동양인 라이더 한 명이 있었다. 조촐한 저녁 식사로 파티를 대신했다.

숙소에 돌아와 생각하니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생일 잔치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나는 부부 몰래 깜짝 파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근처 마트에서 케이크 하나와 스크류 드라이버 한 박스를 사서 자전거에 실었다.

객실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메리가 문을 열었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며 외쳤다.

"서프라이즈(Surprise)!"
"에이. 그럴 필요 없는데."

황금, 유약, 몰약을 짊어진 동방 박사 대신 케이크를 든 동방 라이더의 등장. 곰 같던 커트 아저씨의 얼굴에 즐거워하는 낯빛이 떠올랐다. 당장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촛불을 한 번에 꺼야 한다는 내 말에 그는 의아해했다.

"그 사람이 건강하다는 증거죠. 그만큼 심폐지구력이 아직 쓸만하다는 거니까. 하나라도 못 불면 아저씨 망신이에요!"

여행 중 맞이한 탄신일. 지난해 생일 즈음 그는 오리건 주에서 홀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작은 방에 달랑 3명이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성대하기 그지없다.

메리가 나를 불렀다. 아이패드에 저장된 자신들의 결혼식 장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결혼식이 열린 교회 주변은 공원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던 곳이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애초 초대했던 하객 200명이 어느덧 400명으로 불어났다.

주례가 끝나자 면사포를 쓴 신부와 연미복을 입은 신랑이 아래로 내려섰다. 그리고 자전거를 탄다. 좌우로 늘어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나아간다. 'Just married(방금 결혼했어요)' 글자가 큼지막하게 씌어진 천자락이 펄럭거렸다. 그대로 몇 십 마일동안 깜짝 자전거 여행을 하며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들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정년 나이는 65세. 일하는 동안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경우 유럽은 최대 2달의 휴가를 내지만 미국인은 3주에 지나지 않는다. 막상 은퇴한 후에는 체력적인 한계와 정열의 퇴색이 여행을 가로막는다. 이런 딜레마를 안고 있던 커트를 한 권의 책이 바꿔놓았다.

롤프 포츠(Rolf Potts)의 저서 <배거본딩(Vagabonding)>. 작가는 말한다. 닥치고 여행을 떠나라. 돈이 없음보다 정열이 없음을 걱정하라. 여행을 하다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죠? 일해라. 여행경비만큼 벌었다 싶으면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떠나주면 된다.

머리만 잘 써도 여행 자체를 하나의 돈벌이로 만들 수 있다. 여러 권의 여행기를 통해 많은 인세 수입을 올렸던 저자는 이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가며 여행을 한다.

책 하나가 부부의 여행계획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번 미국 횡단이 끝나면 내년에는 유럽으로 간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둘러보고(나로 인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다) 호주까지 건너가는 일정이 대략 1, 2년.

지금껏 저축한 돈으로 여행 경비를 충당한다. 모자라면 다시 일자리로 복귀.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커트와 간호사인 메리에게 재취업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은퇴 후 여행이 아니라, 여행 은퇴 후 취업이라는 신선한 발상이다.

진정한 보헤미안이 되기 위해 이들은 달린다. 이들이 마일리지를 쌓을 때마다 미국인들의 휴가 일수가 늘어나는 캠페인을 해보면 어떨지 문득 생각해 본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태그:#미국, #자전거,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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