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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의 전경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의 전경
ⓒ 마을이야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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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수산면에 위치한 대전리. 하루에 단 네 대만 다니는 제천발 버스를 타고, 1시간여 즈음 굽이길을 돌다 보면 버스 노선의 종점인 마을 어귀에 도착한다. 광산 개발 등으로 마을이 시끌벅적할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고요할 정도다. 주민들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인삼과 약초 농사, 사과 등의 과실수와 콩, 수수, 고추 등의 작물 농사를 짓는다.

대전리에는 수산초등학교 대전분교가 있었으나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았다. 그런데 건물 외관을 보아 하니 관리가 꽤 잘 된 듯하다. 게다가 이곳에 어린 아이들 대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 시골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모습의 청년들이 꽤 눈에 띈다. 그들은 반갑게 주민들을 맞이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며 수다를 떤다. 호미질 등 농사일에 익숙한 주민들은 붓질이 서툴기만 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그들의 그림을 모으고 이야기를 듣는 데 열중이다.

이들은 바로 도시에서 내려와 지역 주민을 위해 문화활동을 하는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 소속 회원들이다.

"그동안 활동하며 생각 외로 냉담한 마을 주민들 반응에 걱정이 심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저희 활동이 조금씩 열매를 맺는 것 같아 좋아요. 예술가들이 마을 주민들과 직접 교류하며 소통하려는 노력이 인정받기 시작한 거죠. 저희가 마을 주민들께 다가가 활동 취지를 설명하면 '젊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하네'라며 격려해 주시기도 해요."

지역공동체를 위한 풀뿌리 예술단체 '예마네'

'예마네' 사무국장 김송희씨가 제천에 정착한 2년 전만 해도 주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예술을 매개로 지역을 '자치와 자립의 공동체'로 만들자는 포부도 있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가장 큰 장애물은 예술에 대한 주민들의 낮은 이해도와 관심이었다. 책도 내고 잡지도 만들었지만, 주민들 호응은 더디기만 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정헌 '마을이야기학교' 대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정헌 '마을이야기학교' 대표.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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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100명 남짓한 조그만 산골마을에 '마을이야기학교'가 들어선 것은 2009년. 당시 김정헌(68) '마을이야기학교' 대표는 2008년 '참여정부 인사 표적 물갈이'로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자리에서 해임된 뒤 충북 제천 수산면 대전리로 내려와 '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전국 20곳에 이르는 마을 답사를 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폐교에 지역주민을 위한 미술학교를 세워 그들의 문화적 권리를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지역 자치와 자립을 위한 토대를 닦아나간다는 취지였다.

옛 제천 수산초등학교 대전분교에 둥지를 튼 '마을이야기학교'는 이후 미술과 지역주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비영리단체인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와 함께 3년간 작가체류 공간과 협동스튜디오, 마을이야기 박물관, 이야기캠프, 공동체부엌 등의 공간을 마련해 가꿔나갔다. 2011년부터는 생활문화공동체 시범사업 등을 통해 문화농활 레지던스, 주민문화사랑방, 생태문화지도, 마을잡지 발간 등 다양한 마을공동체 문화예술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했다.

장병철(52) 수산면 부면장은 "슬로시티라는 개념은 느림의 미학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지역민들이 자생적 문화 활동에 눈을 뜨는 일이 필수"라며 "마을이야기학교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참가하면서 세대간 화합에도 기여하고 문화적 소외계층에게 도움도 주는 의미있는 활동으로 계속 외연을 넓혀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로 파고든 '이야기 품앗이'

예마네 청년예술가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예마네 청년예술가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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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충북 제천시 수산면 체육대회에서 '마을이야기학교'는 '이야기 품앗이'를 진행했다. 청년예술가들이 주민들에게 초상화도 그려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는 다만 이야기 한 토막뿐.

실제로 이번 행사는 '마을이야기학교'가 계획한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지금까지 대전리 안에 국한됐던 활동 폭을 이번 행사를 발판 삼아 수산면 전 지역으로 넓힌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연대의 계기를 만들고 있다. 그림을 그려주거나 사진을 찍어주고 돈 대신 이야기를 받는다는 '이야기 품앗이'도 그런 차원에서 등장한 프로젝트였다. 행사에서 만난 차재숙(61·여·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씨는 예술가들에게 막걸리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나는 원래 전통 자수를 하다가 전통 음식도 만들고 그래서 음식 종류가 전, 양갱, 부각 이런 종류를 좀 해요. 그래서 (음식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 그러면 내가 가르쳐 주지."

차씨는 평소에도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농촌에서 문화교류를 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가 사는 도전리도 대전리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이번 행사에서 서로 만나지 못했다면 교류는 요원했을 일이다. 차씨는 이번 기회에 마을이야기학교와 계속 교류하길 바란다.

"제가 황토집도 짓고 거기서 살고 있는데, 이제 누가 와서 쉴 수 있는 쉼터로 구들방을 하나 만들고 있어요.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놀다 가고 쉬다 가고 그렇게 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제 (마을이야기학교가) 한번 나를 초대해야지.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제공하고, 서로 뭔가를 나눌 수 있게 해야지. 교류를 하다 보면 나도 좀 쓸 만해. (마을이야기학교에도) 도움은 될 거야."

지난 3년이 어느 정도 지역 기반을 다져 싹을 틔우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지역 전체에 그 뿌리를 내려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겠다는 목표가 있다. 그 중심에는 김정헌 대표가 있다.

"문화예술로 세대간 차이와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목표는 단순히 평소 문화적 소양을 기르고 거기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소외계층에게 예술을 전파하는 것으로 그치자는 게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마을 자치·자립을 바라보고 주민들의 관행이나 습관 자체를 변화시키는 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죠."

김 대표가 말하는 '자치와 자립'은 지역 주민의 자발적 행정 참여를 뜻한다. 예술을 통한 마을 공동체 회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마을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업이 무엇이며 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이 잦다고 지적한다. 지역마다 자치정신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면(面)마다 의회 역할을 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있지만 이런 단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주민이 대다수다. 이런 경우 위원회 차원에서 열심히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행정에 참여하는 데 문화예술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예술을 접함으로써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삶을 주도하는 적극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존심보다는 자긍심이 중요합니다. 자긍심은 어떻게 살고 활동할 것인지를 정립하는 일이죠. 남과 비교해 비교우위에 만족하고 마는 자존심과는 성질 자체가 다릅니다. 예술은 자긍심을 길러주는 매개지 자존심을 높여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 활동도 이런 바탕에서 시작된 거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마을이야기학교'

포토존 앞에서 활짝 웃는 수산면 주민들.
 포토존 앞에서 활짝 웃는 수산면 주민들.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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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이면 '마을이야기학교' 임대 기간인 3년이 만료되는 시점이다. 김 대표는 지난 활동으로 지역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는 만큼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은 중앙기관 차원의 지원을 받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박명학 예마네 상임이사도 한마디 덧붙였다.

"마을이야기학교는 당연히 지속적인 운영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마네 식구들의 쌈짓돈과 품앗이로는 운영이 버거운 게 사실입니다. 그간 애써 가꿔온 마을의 문화공간이 좀 더 주민 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지자체에서 건물을 매입하고 운영을 예마네에 맡기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정적인 임대료나 운영비를 덜 수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음력으로 날짜를 표시하면서도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24절기를 구분했다. 농경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데 계절은 태양이 이동함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쉽고 편하게 할 일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얼마 전 입동이 지났는데 이는 농한기를 의미한다. 예전 같으면 농민들이 여유를 갖게 되는 계절이다. 

그런데 대전리 농민들은 여전히 바쁘다. '마을이야기학교'가 연 문예교실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마을 총무인 이정자(74·여·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씨는 말한다.

"(농번기에는 바빠서 학교가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진 못해. (마을이야기학교가 생긴 지는) 올해로 3년째여. 어떻게 될라는지. 또 있을라는지. 3년 동안 잘했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년예술가, #예술과마을네트워크, #예마네, #마을, #제천시 수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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