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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천수만에서는 철새들을 위한 먹이나누기 활동을 한다.
▲ 먹이나누기 서산 천수만에서는 철새들을 위한 먹이나누기 활동을 한다.
ⓒ 김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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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천수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새가 많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많은 겨울철새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보기 힘든 검은목두루미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아주 다양하고 소중한 겨울철새들이 속속 천수만을 찾고 있다.

게다가 올해 천수만에는 국내 최초로 붉은가슴기러기도 관찰되었다. 현재도 수만 마리의 기러기와 많은 겨울철새들이 찾아왔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새들과 맹금류도 찾아와 새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흑두루미가 낚시꾼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 흑두루미들의 비상 흑두루미가 낚시꾼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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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새들의 공통된 최대 관심사는 바로 '생존'이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살아가기 적합한 서식지와 먹이다. 넓은 논밭과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있기에 천수만은 새들의 서식지로는 제격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그 어떤 철새도래지를 가든 마찬가지지만 철새들은 먹이부족을 겪고 있고 천수만도 새들의 먹이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새들을 보는 사람이나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수만'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이자 '천수만지킴이', 자연을 사랑하는 수의사이신 김신환 원장님이다. 김신환 원장님은 올해로 4년째 '먹이 나누기'를 하고 계신다. 먹이 나누기는 먹이 주기와는 좀 다르다. 먹이 주기는 기르는 동물, 즉 가축에게 주는 것이다. 먹이 나누기는 옛날엔 쌀 타작을 하면서 낱알들이 논밭으로 떨어져서 새들의 먹이로 돌아갔는데 이제는 그게 없으니 공생하자는 의미로 '나누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년 천수만의 새들에게 주는 볍씨의 양은 4~5t 정도 되는데 새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먹이를 넉넉하게 주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정도까지 준다고 한다. 2010년에는 태풍 곤파스로 일어난 백화현상에 의해서 서산시로부터 358t의 쌀을 받았는데 그 해 철새들이 이 볍씨들을 모두 먹고 갔다고 하니 새들이 먹는 먹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볍씨 1t을 사들이는 데 들어가는 돈은 140만 원. 새들의 먹이를 사는 돈은 후원금을 받아 마련한다고 한다. 후원 모금은 네이버 해피빈에서 시작했는데 첫 회에서는 470만 원 정도 받았고 일반 후원금은 300만 원 정도 모였다고 한다. 이렇게 받은 후원금으로 볍씨를 사들여 천수만 들판에 뿌려주시는 것이다.

먹이가 부족하여 큰기러기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다.
▲ 먹이다툼을 일으키는 큰기러기들 먹이가 부족하여 큰기러기들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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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인 지금은 아직 논밭에 낙곡이 많이 남아 있어서 괜찮지만 11월 중순이나 말이 되면 새들의 먹이가 부족해진다. 그러면 새들은 먹이를 찾아 인근 농가 근처의 논밭까지 가게 되는데 그럴 경우 질병에 취약한 닭이나 다른 가축들이 조류독감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먹이 나누기 활동이 중요하다.

올해는 천수만의 새들을 위해서 3t의 볍씨를 준비해뒀고 자원봉사자를 받아서 밤에 먹이를 뿌려주고 있다. 나도 한번쯤 꼭 천수만에 가서 먹이 나누기 활동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지난 10일 토요일 1박 2일로 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내 18년 인생 최초로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설레고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천수만 들판에서 위장텐트를 펼치고 그 속에서 노숙을 할 계획으로 차가운 바람에 대비해 나름 두꺼운 침낭과 뜨듯한 옷들을 가득 껴입을 준비를 했다. 게다가 새들의 천국 천수만이다. 카메라 배터리는 가득 충전해놨고 학교의 캠코더까지 빌렸다.

천연기념물 228호 멸종위기종 2급 흑두루미가 천수만을 찾았다.
▲ 흑두루미 천연기념물 228호 멸종위기종 2급 흑두루미가 천수만을 찾았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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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시내는 굉장히 도로가 복잡한 곳이었다. 신호가 없어서 차들이 서로 먼저 가다가 경적에 째려보기는 기본이고 창문을 열어 욕까지 내뱉는다. 도로를 걸을 때는 정말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곳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조심조심하며 김신환 원장님의 동물병원을 찾았다. 터미널에서 대략 100m 정도 떨어진 동물병원에 들어가자 김신환 원장님과 야조회 1기 회장님이시라는 분, 그리고 최근 내 블로그에 간간이 댓글을 달아주시던 대학생 형까지 만났다. 블로그도 우연히 발견했는데 오프라인에서도 얼떨결에 우연히 만난 것이 서로 신기해하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진씨는 오늘 밤 저기서 자는 거예요."

원장님께서 건너편 도로의 모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헉, 나 모텔에서 잘 돈도 없는데. 오늘 밤 천수만에서 노숙을 할 생각이라 말하니 다들 춥다고 절대 안 된다고 하신다. 야조회 1기 회장이라는 분이 "내가 예전에 건방 떨면서 한번 노숙하려다가 너무 추워가지고 차로 돌아가서 히터 튼 다음에 잤잖아. 안 돼, 추워서 안 돼"라고 하셨다.

"원래 나이가 어린 놈들은 자기들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말 안 듣습니다. 저도 이 기회에 한번 건방 떨면서 덜덜덜 떨어봐야 다음부턴 춥다고 안 하겠죠, 하하."

200여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천수만의 논밭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흑두루미들 200여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천수만의 논밭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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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까지 노숙을 경험해보고 싶어 고집을 피웠다. 원장님도 더 말리지 않으시고 천수만으로 가신다 하셨다. 병원 옆에는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트럭이 있었고 뒤에는 800kg 커다란 쌀 한 포대가 놓여져 있었다. 이 트럭은 서산환경운동연합에서 새만금 방조제 반대활동을 할 적에 사용하다가 연식이 다 돼서 폐차하려던 걸 원장님께서 받았다고 한다. 이 트럭을 받은 것이 먹이 나누기를 하는 계기가 되어서 그 이후로 먹이 나누기를 해오셨다고 한다.

새를 보는 대학생 형과 원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한 트럭에 탔다. 원장님은 천수만으로 가시는 길에 먹이 나누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이게 왜 먹이주기가 아니고 먹이 나누기인지, 돈은 어느 정도 들어가는지, 쌀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구하는지. 그러다가도 새들이 보이거나 새들이 보이는 포인트에 도착하면 과연 천수만지킴이답게 설명을 하셨다.

"저기 도랑 보이시죠? 저기에 겨울이 되면 흰눈썹뜸부기가 와요. 매년 옵니다. 그리고 또 올해 이곳 갈대밭에 개개비사촌 6마리가 왔어요."

김신환 원장님은 새가 언제 어디서 뭘 하는지 훤히 다 꿰뚫고 계신다. 우리는 그렇게 원장님의 설명과 안내를 받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관찰되었다는 붉은가슴기러기를 찾으러 나섰다. 첫 관찰 이후로 두 번 더 관찰되었다는데 삼십만 마리의 기러기들 중에서 그 한 녀석을 어떻게 찾으셨을까. 우리는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했지만 녀석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꼭 보고 싶었던 녀석이지만 우리는 우선 천수만의 진객 흑두루미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흑두루미를 보다가도 붉은가슴기러기가 보일 수도 있으니까.

사람에 놀란 고라니에 기러기들이 놀라 날아가고 있다.
▲ 고라니와 기러기 사람에 놀란 고라니에 기러기들이 놀라 날아가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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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가슴기러기와는 달리 우리는 흑두루미를 쉽게 발견했다. 덩치가 크기도 했고 무엇보다 원장님께서 새들이 어디 있는지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흑두루미는 원래 한국에서 월동하던 새였는데 서식지가 많이 파괴된 이후로 일본의 이즈미에 가서 월동을 한다.

일본 이즈미에는 약 1만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오는데 김신환 원장님 말에 따르면 이즈미에서는 먹이 나누기가 아닌 먹이 주기로 흑두루미들을 사육하다시피 먹이를 많이 준다고 한다. 덕분에 흑두루미들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니 수익이 되고 흑두루미들도 겨울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길들여진다는 점이 있으니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내가 판단하기엔 좀 어려운 것 같다.

제일 먼저 우릴 반겨준 흑두루미는 4마리로 구성된 한 가족이였다. 먹이를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건지 원장님 트럭이 익숙한 건지 우리가 트럭을 타고 가까이 접근해도 흑두루미 가족은 날아가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아무 작동도 안 하는 카메라. 평소에도 가끔씩 이렇게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일어났는데 하필 오늘 흑두루미를 만나는 순간에 말썽을 부렸다.

카메라의 말썽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10분 정도 이러다가 다시 찍혔는데 계속 작동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2년 동안 쓴 카메라를 중고로 사서 8년을 썼으니 10살이 된 카메라인데다가 이제는 단종되어서 더 이상 팔지도 않는 오래된 모델의 카메라다. 어쩌면 수명이 다 된 것이 당연한 일일이지 모르겠지만 그게 왜 하필 이 순간이냔 말이다.

김신환 원장님은 내 카메라를 잠시 확인하시더니 내장배터리가 다 나간 것 같다고 말하시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진씨 카메라 고장나서 오늘은 노숙하지 말고 바로 올라가야겠네요. 그죠?"라고 덧붙이셨다. 계속 노숙을 하겠다는 것이 어지간히 걱정되셨나 보다. 그리곤 대신 자신의 대포망원렌즈와 최상위급 카메라라 할 수 있는 1D Mark4를 쓰라고 하셨다. 내 카메라가 망가진 대신 이런 카메라를 잠시나마 써볼 수 있게 되다니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난감하다.

잿빛 회색을 띄는 검은목두루미와 온몸이 검은 흑두루미, 두 종의 새가 낚시꾼에 놀라 함께 비상하고 있다.
▲ 검은목두루미와 흑두루미 잿빛 회색을 띄는 검은목두루미와 온몸이 검은 흑두루미, 두 종의 새가 낚시꾼에 놀라 함께 비상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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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고라니다!"

고라니 한 마리가 트럭에 놀라 기러기들 사이를 돌파하며 달아갔다. 처음 써보는 무거운 대포장비로 셔터를 눌러보니 타타타타타 연사 소리를 내며 사진이 찍혔다. '장비가 다르니 사진도 확실히 다르게 나오는구나' 나도 좋은 장비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엄청나게 솟지만 가라앉혀야 한다. 금전적 문제도 있고 장비 욕심이나 사진 욕심이 한번 들면 마약처럼 빠져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공감할 내용이다.

흑두루미 가족은 고라니의 출현에 잠시 고개를 들어 경계했을 뿐 잠시 후 다시 먹이를 먹는 데 전념했다. 건너편 논밭을 보니 흑두루미 200여 마리가 낙곡을 주워먹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검은목두루미 2마리도 보였다. 검은목두루미는 흑두루미에 비해서 상당히 보기 힘든 종이지만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엔 새로운 새를 보게 되면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다시 그때 그 느낌이 들면 좋을 텐데.

조용히 사진만 찍고 있을 때 갑자기 흑두루미들이 목을 일자로 세워 경계 태세에 들어가더니 "뚜루루루" 요란하게 울며 날아올랐다. 주변의 낚시꾼들을 보고 날아오르는 곳이다. 이렇게 새가 많은 곳에서 굳이 낚시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괜히 새들을 놀래켜 날린다. 김신환 원장님은 날아오르는 흑두루미들의 개체수를 재빨리 세시고는 황새를 보러 가신다 하셨다. 그 말에 왠지 난 웃음이 나왔다.

'흑두루미 황새나 정말 보기 쉽지 않은 새들인데 이곳 천수만에서는 그냥 보고 싶으면 볼 수 있구나.'

흑두루미 무리 사이에 잿빛 색깔을 띄는 검은목두루미 한 마리가 목을 세우고 앉아 있다.
▲ 흑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무리 사이에 잿빛 색깔을 띄는 검은목두루미 한 마리가 목을 세우고 앉아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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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우리나라 국토 위에 있는 황새가 몇 마리나 될까. 아마 한국에서 야생 황새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천수만인 것 같다. 원장님 말로는 현재 4마리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황새는 누렇다고 해서 황새가 아니라 덩치가 크다고 해서 황새다. 덩치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를 찾는 새 중 제일 크다.

덩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천수만이 워낙 넓은 탓도 있을 거다. 우리는 와룡천을 한 바퀴 둘러봤고 천수만의 넓은 논밭을 누비며 황새를 찾아다녔다. 논밭에 기러기 무리가 모여 있으면 붉은가슴기러기가 있나 찾아보았고 도로 위에서는 꿩들이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모습과 맹금류인 말똥가리가 쥐를 찾아 정지비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새만 보며 살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하겠다. 창문을 내리고 기러기 무리 속에 붉은가슴기러기가 있나 찾아보던 중이였다.

"찾았다!"

대학생 형이 외친 한 마디에 원장님과 난 심장이 벌렁벌렁하면서 "어디 있어요?" 하고 급하게 되물었다.

"황새요, 기러기무리 뒤쪽에 저 멀리 있네요."

에이, 붉은가슴기러기 찾았다는 줄 알고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붉은가슴기러기 찾는 데 혈안이 된 우리 앞에선 그 귀한 황새도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황새는 그 기다란 다리로 겅중겅중 거닐며 논밭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잠깐 동안 황새를 지켜본 뒤 원장님께서 천수만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간월호로 데려다주셨다.

기러기들이 사람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 날아오르는 기러기들 기러기들이 사람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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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호에는 천수만을 찾은 기러기와 흑두루미, 황새 등 모든 새가 한곳에 모여서 잠을 자는 풍경이 벌어지니 가히 천수만 탐조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새들이 잠을 자러 오기 전에 미리 가서 새들을 기다렸다. 이곳은 물 높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물 높이가 너무 높을 경우 새들이 잠을 자지 못 한다고 한다. 새들이 잠을 자기에 적당한 높이는 딱 발목 정도.

매번 물 높이를 관리하는 측에 전화를 걸어 새들이 잠을 자러 올 때는 물 높이를 낮추라고 하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여름에는 이곳에 수많은 물새들이 알을 낳고 번식을 하는데 장마가 오면 둥지의 알과 어린 아기 새들이 모두 물에 잠겨 익사를 한다고 한다. 장마철에는 물 높이를 낮춰서 아기 새들이 익사를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물 높이를 낮춰 달라 하면 그 물 높이를 관리하는 측에선 "여기 농사하는데 물이 부족하면 원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하며 장마철에도 물을 빼지 않아 아기 새들이 익사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뚜루루루~" 흑두루미들이 잠을 자러 날아오는 것이다. 간월호엔 이미 황새 4마리가 먼저 날아와 있었고 그 이후에 서너 마리씩 흑두루미 선발대가 간월호에 내려앉았다. 우리 트럭 옆에는 탐조여행으로 온 관광버스가 멈춰섰고 탐조관광 가이드 인솔 아래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잠을 자러 오는 흑두루미들을 바라봤다.

'나도 저렇게 탐조여행 갔다가 새에게 푹 빠져버렸지.'

날이 더 어두워지고 흑두루미들이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는 서너 마리의 가족 단위로 날아가는데 잠을 자러 올 때는 200마리의 흑두루미가 동시에 날아온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뚜루루루~" 날개를 퍼덕이며 흑두루미들이 내려앉는다. 날씨가 흐린 것이 참 안타깝고 마침 이런 날에 내 카메라 내장배터리가 다 떨어진 게 더 안타깝다. 캠코더로 영상을 찍었으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다. 흑두루미들은 황새와 백로들과 서로 어울려 좁은 장소에 다닥다닥 붙어 내려앉았다.

황새와 백로 각각 2마리씩 모여 앉아 있다.
▲ 잠을 자러 온 황새 황새와 백로 각각 2마리씩 모여 앉아 있다.
ⓒ 김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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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씨, 남부 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네요. 흑두루미들도 다 봤는데 오늘 올라가실꺼죠?"

나이가 적든 많든 모든 이에게 항상 존대를 하시는 원장님께서 내가 텐트 치고 노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끝까지 걱정하는 마음에서인지 집으로 돌아가길 권유하셨다. 이쯤 되면 나도 고집을 꺾고 원장님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내일 아침에 이 넓은 천수만에서 서산터미널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우리는 논길 위로 트럭 바퀴에 밟히는 자갈돌 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 없이 서산 시내로 돌아갔다.

사실 밤에 볍씨를 뿌려주는 먹이 나누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아직 논밭에 새들이 먹을 먹이가 충분해서 먹이 나누기 활동은 하지 못하고 갔다. 말로는 자원봉사자로 갔지만 실제로는 원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그저 즐겁게 새를 보고 온 여행객이 된 셈이다. 돌아가는 길에 원장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4년째 혼자서 (먹이 나누기) 계속 하려니 힘이 드네요. 하하."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후원금도 도움이 되지만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연과 새를 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태그:#천수만, #철새, #자연, #환경,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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