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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화산분화구
 아소산 화산분화구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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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전거 여행 둘째 날, 자전거를 타고 아소산에 올랐습니다. 첫째 날은 고작 6km 자전거를 타고, 후쿠오카에서 아소역까지 전철로 4시간 가까이 이동해 아쉬움이 많았는데 아소산에서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약간 들뜬 마음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아소산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아소산은 큐슈 지역 구모모토현에 있는 해발 1592미터의 칼데라 화산입니다. 정상부의 높이는 해발 1520미터로 해발 1507미터인 지리산 노고단과 비슷하지요. 지리산의 경우 정령치와 성삼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아소산의 경우도 화산분화구 근처 해발 1240미터(아이폰 GPS 측정값)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소산 화산분화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라고 합니다. 3천만 년 전부터 화산 폭발이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높이 1328km, 폭 1.1km, 깊이 100km의 나카다케 분화구는 지금도 용암을 내뿜고 있다고 합니다.

아소산 화산분화구는 해발 1300미터 정도 높이에 있습니다. 첫날 숙박지였던 유스호스텔에서 아소산 화산분화구까지 거리는 대략 15km 정도. 올라갈 때는 온전히 오르막길을 15km 정도 타야 하고 내려올 때는 내리막길 15km를 타야 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코스였습니다.

아소산 라이딩 기록
 아소산 라이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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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MTB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 산(불모산·신불산 간월재 등)을 여러 곳 가봤습니다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에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리산 성삼재와 정령치가 비슷한 높이입니다만, 아소산 분화구가 조금 더 높은 지점에 있습니다.

아소산 유스호스텔을 출발해 아소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쭉쭉 뻗은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삼나무 숲으로 유명한 제주 사려니 오름에 있는 삼나무 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소산 삼나무 숲은 그보다 훨씬 크고 넓었습니다.

이곳에는 1930년대에 조성된 제주 사려니 숲 삼나무 박물관 일대처럼 키 큰 삼나무는 아직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잘 가꿔놨다는 느낌입니다.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사무라이 병정들처럼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소산 가는 길
 아소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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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 삼나무 숲을 지나 아소산 중턱서부터는 초원지대가 넓게 펼쳐집니다. 또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간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 여러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 어떤 소들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온해 보였는지 일행 중 하나는 "만약 다시 태어나면 아소산 소로 태어나고 싶다"고도 하더군요. 늘 바쁘게 살다 보니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무난했던 오르막길, 갈수록 힘들어지네

멀리 연기가 올라오는 곳이 아소산 분화구
 멀리 연기가 올라오는 곳이 아소산 분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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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유스호스텔을 출발해 대략 10km 지점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이 쭉 이어졌습니다. 신불산 간월재에 오르는 길보다 경사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좀 탔다고 하는 중급자 정도라면 힘들지만 기어를 저단으로 놓고 페달을 밟으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약 10여km 구간은 평속 11km 정도를 유지하면서 달렸습니다. 함께한 동료 하나와 함께 무난히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산 정상부로 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길이 꼬불꼬불해졌습니다.

출발지에서 10여 km 정도 지나 아소산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 2km 구간은 가파른 경사로였습니다. 이미 10여 km를 오르며 체력이 떨어진 탓도 있었겠지만, 평속 7~8km밖에 낼 수 없는 힘든 코스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휴게소에서 다시 아소산 분화구 바로 아래 있는 케이블카 탑승장까지는 내리막길과 평지가 이어졌습니다. 기분 좋게 내리막길과 평지의 초원지대를 지나면 아소산 분화구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타납니다.

아소산 화산 분화구를 보러 오는 관람객 대부분은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분화구까지 올라갑니다. 저희 일행이 케이블카 휴게소에 머무는 동안에만 4대의 관광버스가 왔는데, 한국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모두 케이블카를 이용하더군요.

억새가 군락을 이룬 아소산 중턱
 억새가 군락을 이룬 아소산 중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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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휴게소에서 분화구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경사는 아주 가파릅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분화구 바로 아래 케이블카 타는 곳서부터 분화구까지 다시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하지만, 정상이 눈앞이라 힘든 줄 모르고 페달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동료 한 명과 둘이서 아소산 유스호스텔을 출발해 대략 1시간 20분쯤 달려 케이블카 휴게소까지 두 번째로 올라갔습니다. 자전거를 가장 잘 타는 동료 하나는 먼저 도착해 아소산 분화구 앞까지 올라갔더군요.

케이블카 휴게소에서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잠시 멈칫거리고, 입장료 같은 것은 내야 하는지 확인하느라 10여 분 이상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나중에 이 10분 때문에 크게 후회를 하게 됐습니다.

10분 때문에 분화구 100미터 남겨두고 돌아서다

케이블카 휴게소에서 화산 분화구까지 가는 길은 화산 활동이 위험해지면 즉시 통제하도록 돼 있고, 자동차는 추가로 요금을 내고 올라가도록 돼 있습니다. 안내판에 '이륜차는 10엔'이라고 적혀 있어 돈을 내야 하는지 물어봤는데 오토바이만 돈을 받더군요.

등산하는 보행자와 자전거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기분 좋게 인사하고 요금소를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기 위해 힘차게 패달을 밟았습니다.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 선두로 올라갔던 동료가 되돌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다 지쳐서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다른 관람객들이 타고 올라간 차도 모두 함께 내려오고 있더군요. 그는 20분쯤 전에 분화구 앞까지 올라갔지만 화산 활동 때문에 분화구 관람을 못하고 기다리다 대피령이 내려져 그냥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저희 두 사람도 내려가야 한다더군요. 불과 100미터도 안 남겨두고 돌아서는 게 아쉬워 우리는 '입구에서 올려보내 줬으니 그냥 올라가겠다'고 다시 분화구를 향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순찰차가 내려오면서 케이블카 휴게소로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만 좀 찍고 곧장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순찰차는 먼저 내려갔습니다.

아소산 억새군락지
 아소산 억새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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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휴게소에서 얼쩡거리며 보낸 10분을 후회하면서 동료와 저는 서로 인증샷을 찍었는데, 정작 화산에서는 아무런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난생처음 아소산에 오른 후배는 더 아쉬워하면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슬금슬금 분화구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몇 걸음 걷기 전에 먼저 내려갔던 순찰차가 갑자기 나타나 얼른 내려오라고 방송을 하더군요. 결국 분화구를 앞에 두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아소산 화산 분화구를 본 적이 있어 아쉬움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분화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보지 못한 아쉬움은 좀 크게 남더군요. 우리 일행 중에는 아소산에 처음 온 사람들도 여럿 있어서 다시 케이블카 휴게소로 내려와 1시간 가까이 기다려봤지만, 바람 방향이 바뀌지 않아서 다시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케이블카 휴게소에서 추위를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팩을 나눠 마시고, 따뜻하게 데운 사케도 몇 잔 나눠 마시며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아소산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 날씨가 추웠지만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나눠 먹었습니다.

한국까지 알려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소산 아이스크림은 정말 이름값을 하더군요. 흑임자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던데,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맛도 괜찮았습니다.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끝내 길은 다시 길은 열리지 않았고, 화산분화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새가 춤추는 환상의 내리막길

누군가는 다시 태어나면 아소산의 소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였다
 누군가는 다시 태어나면 아소산의 소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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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유스호스텔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정말 멋진 라이딩이었습니다. 해발 1240미터에서 출발해 해발 5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유스호스텔까지 다시 내려오는 15km 남짓한 코스. 3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번 멈추지 않았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선 구간에서 50km를 넘나드는, 가슴 속까지 시원한 내리막길 라이딩도 즐거웠지만 아소산의 가을 정취는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들,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으로 보이는 골짜기들과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들, 그리고 반대편으로 아소시가지를 완벽에 가깝도록 둘러싼 산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멋진 풍광에 반해 몇 번이나 자전거를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소산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도 좋고, 걸어서 올라가도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몇 년 전 차를 타고 휘 지나쳤을 때 놓쳤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아 힘들게 산에 다녀온 동료까지 일행들은 한결같이 겨울 자전거 여행 코스로 아소산을 포함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자전거 타기에 익숙지 않아 자전거를 그냥 끌고 올라가더라도 한 번쯤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소산 유스호스텔로 내려와 아침에 이어 점심도 컵라면·즉석밥·김치·참치 통조림 등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모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행은 비싼 일본 물가를 감안해 각종 컵라면과 즉석밥, 소주팩과 간식거리를 준비했는데 배낭 무게 때문에 둘째 날, 아침과 점심에 소주팩만 빼고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오후에는 오이타까지 라이딩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아소 분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합니다. 점심을 먹고 곧장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 36km 정도 자전거 라이딩을 해 다케타시까지 이동했습니다.

둘째 날 숙박지는 오이타역 근처였습니다. 다카타시에 도착할 무렵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 라이딩을 포기하고 전철로 오이타역까지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아소산 라이딩과 다케타시까지 라이딩을 합해 66km 정도를 달렸습니다. 참가자 중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동료들이 있어 예상보다 라이딩 속도도 느리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도 훨씬 줄어 전철을 자주 타게 됐습니다.

후쿠오카를 통해 입국해 자전거로 일본을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큐슈에서 아소산 라이딩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일본에는 지난 11월 1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본, #자전거, #여행, #아소산, #후쿠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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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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