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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로 단식 14일을 맞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22일로 단식 14일을 맞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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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상복을 입었다. 동료의 22번째 상을 치르고 한참이 지났지만, 언제나 죽음이 주는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또 다시 시작된 죽음의 행렬을 막겠다며 밥도 끊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 천막에서 생활한지 7개월째. 죽어가는 동료들을 살려달라는 외침 끝에 그는 자기 목숨을 걸기에 이르렀다. '정리해고'라는 한국사회 최대 현안의 꼭짓점에 서 있는 김정우 전국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김 지부장은 잘 웃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도 항상 저음이고 '까칠'하다. 통화는 몇 마디를 못 넘긴다. 분노하고 호통치고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노려보는 눈빛이 그의 평소 모습이다. 넉넉한 체격에 덥수룩한 수염은 그를 더 강해 보이게 한다. 어떤 사람은 김 지부장을 보고 "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막아서는 모습, 청문회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발언에 탁자를 내려치는 모습이 그를 대표한다.

지난 21일 단식 10일째를 맞은 김 지부장을 찾아갔을 때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오랜 허기가 그를 견고하게 만든 듯했다. 그가 1년 넘게 지부장을 하는 동안 수많은 집회에서 그의 연설을 들었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심각성을 토로하며 정치권과 시민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항상 당당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계속된 반복이었고, 단식까지 시작한 마당에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 가족들,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준비한 질문은 첫 번째에서 막혀버렸다. 가족의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곧바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안 한다"며 투쟁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번에 기선이 제압돼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 시작했다. 딱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가 "1990년 쌍용자동차에 들어가, 20년 가까이 정비업무를 했다"는 거다. 정비지회를 책임지고 있던 그는 지난해 11월 3기 쌍용차지부장에 뽑혔다. 그날 이후 평택공장 앞에서, 대한문 길거리에서 사는 그의 삶이 시작됐다.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희망버스, 우리에게로 돌리고 싶었다"

지난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해고된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자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21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고, 지난 4월 22번째 희생자는 정리해고 이후 구직에 실패해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렇게 한동안 쌍용차 죽음의 행렬은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대한문 분향소에 시민들이 찾아오고, 사회적 관심이 모이면서 국회 청문회까지 개최됐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차려진 분향소가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가능했던 건 그만큼 사회적 관심이 모였기 때문이다.

-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는데 단식을 시작했다. 무엇을 요구하는 단식인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죽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 희망을 만들려고 여기에 이렇게 진지를 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번째 죽음이 찾아왔다. 이곳에 와서 6개월 만이다. 보통 쌍용차 희생자들의 죽음은 4개월을 넘기지 않고 이어졌다. 이곳이 23번째 죽음을 두 달 더 연장시킨 것이다. 올해 안에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희망퇴직자를 포함해 해고자, 무급휴직자 모두 더 많이 힘들어질 거다. 단식하는 것도 그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내 마지막 책무다."

그가 여기 대한문 분향소를 '희망의 장소'로 보는 것은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발생한 죽음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거론이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 14번째 죽음부터다. 옥쇄파업에 참여하고 지부간부들과도 가까웠던 임아무개씨가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듯 휴대전화에 모든 번호를 지우고 자살했을 때, 평택 공장 앞에서 그의 동료들은 절규했다. 그 전부터 죽음이 있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지 않았다. 본격적인 싸움은 그때부터다.

처음에는 모든 투쟁이 평택에서 진행됐다. 해고노동자들은 공장 앞에 천막을 쳤고 평택 시내에서 구호를 외쳤다. 상복을 입고 상여를 매고 도로를 걸어도 봤지만 지역의 여론은 냉랭했다. 이미 옥쇄파업을 거치면서 공동체는 무너진 상황이었다. 그때 새로 당선된 김정우 지부장이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희망버스가 그의 결심을 이끌었다.

- 투쟁 전술이 변했다.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유가 있나?
"우리가 한진중공업으로 천리길을 걸었다. 2차 희망버스가 가기 전이었다. 우리는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한진이 정리가 됐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한진 노동자들은 희망이 보이게 된 거다. 우리도 미궁에 빠져 있던 길이 보였다. 희망버스를 우리에게 돌릴 수는 없을까. 그래서 '희망텐트'를 했고, 서울역에서 22명의 희생자들의 노제를 치르고 지금 이 자리로 왔다."

김 지부장은 "2012년 안에 반드시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나오지 않으면 또 무더기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지금까지 투쟁해오면 함께해온 동지들도 인생의 생명줄을 놓을 수도 있겠다고 예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택은 여론이 안 좋았다, 여기 나오면서 일반 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응원도 많이 받았다"며 "특히 공지영 작가가 '의자놀이'를 쓰고 난 후에는 지방에서도 찾아오고 발길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와 여기부터 들려 분향하고 가는 시민도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쌍용차 문제부터 해결하고 전태일 찾아가라... 그래서 막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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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부장은 최근 언론에 두 차례 주요하게 등장했다. 지난 8월 '전태일 재단' 방문이 무산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으로 향하자 김 지부장은 박 후보를 쫓았다. 박 후보가 헌화를 하려는 순간 김 지부장은 동상 앞으로 뛰쳐나와 박 후보를 막아섰다. 그리고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마시라"고 외쳤다.

- 박근혜 후보를 막았는데 원래 계획을 했던 행동인가?
"처음에는 재단방문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재단 앞 골목에서 박 후보가 차를 타는 게 보였다. 우리가 차를 타고 쫓아가면 늦을 것 같아 죽어라 뛰어갔다. 가서 뭘 하는지는 몰랐다. 다행히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꽃을 들고 오더라.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저지했다."

- '이건 아니다'라면 무엇이 아니라는 말인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 당신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면담 한 번만 해달라고 서 있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당직자 누구 한 명 찾아 온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헌화를 한다는 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그르치는 행동이다. 용서가 안 된다. 쌍용차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더러운 독재와 유신의 역사에 다 용서를 구한 후에나 헌화를 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을 거다."

쌍용차지부는 지난 9월 한 달 가까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 천막을 치고 박근혜 후보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바 있다.

또 한 번 그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 한 것은 지난달 개최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관련 국회 청문회에서다. 그는 한상균 전 지부장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는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 쌍용자동차 기업노조 위원장 등 사태 당사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특히 세무법인이 회사의 상태를 나쁘게 평가해 구조조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 청문회를 출석했는데 어땠나? 답답해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엄청 답답했다. 퇴장을 당하더라도 사고를 쳤어야 한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이채필 장관, 조현오 전 청장, 이유일 사장, 회사 노조가 일체가 돼서 똑같이 변명했다. 자기들은 상관없다고, 나는 모른다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럼 이 사태의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건가. 그날 저녁에 잠을 못 잤다."

특히 그를 분노하게 한 발언은 당시 옥쇄파업 진압 책임자였던 조 전 청장이 노동자들의 얼굴을 향해 쏜 테이져건(전기충격 총)과 관련해 "빗맞았다"고 말한 것이다. 김 지부장은 이때 회의장이 울릴 정도로 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목구멍까지 큰소리가 올라오는 게 보였지만 그는 힘겹게 삼켰다. 또 한 가지는 구조조정 당시 관리자였던 이유일 사장의 "돌아가신 분들 중에는 해고와 관련 없는 분도 있다"는 말이다.

- 이 사장이 그 말을 했을 때 회의장이 술렁였다. 김 지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천박하다. 해고자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일말의 고민도 없다는 거다. 그 천박함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해도 너무 뻔뻔스럽게 했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거라 생각한다."

26일 '희망 밥 콘서트' 개최... 대선후보 누가 분향소를 찾아올까?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청문회에서 홍일표 민주통합당 의원이 정리해고 후 부모가 모두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들 사연을 소개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정우 지부장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청문회에서 홍일표 민주통합당 의원이 정리해고 후 부모가 모두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들 사연을 소개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과 김정우 지부장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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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는 청문회 이후 아직까지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다. 구조조정의 근거가 됐던 자료가 조작됐거나 신뢰도가 낮다는 문제는 어느 정도 공감을 얻었지만, 구체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의 자동차 부문 파완 고엔카 사장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3개월 이후 무급휴직자들이 복귀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무급휴직자가 모두 복귀하는 데는 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힌 게 유일한 진전이다.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 지부장은 "사회적인 공감과 연대는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며 "대선 주자들이 그 주체가 돼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되면 쌍용차 문제부터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후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번 대선이 중요해 보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방문한 것 이외에 아직까지 별다른 흐름이 없는데,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이 되기 전에 세 후보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약정서를 써야 한다. 선거 때 뱉은 말은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이 문제를 해결 하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후보들의 움직임이 없다. 안철수 후보도 삼성백혈병 피해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노동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만 10만 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정리해고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풀지 못하는 자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김 지부장은 짦은 인터뷰 시간에도 상당히 힘이 든 모습을 보였다. 말은 느렸고 자주 물을 마셨다.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여기를 떠나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당장 걱정이 되는 건 오는 26일 열리는 '희망 밥 콘서트'다. 그동안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장기투쟁사업장을 지원해왔던 '희망식당 하루'가 이날 대한문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밥을 나누는 행사를 개최한다. '밥을 구하다 밥이 돼버린 우리 삶의 희망을, 밥 한번 먹자'라는 모토로 열리는 행사에 먹을 게 잔뜩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콘서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김 지부장은 "아 밥은 먹어야지"하면서 웃는다.

"먹어야지. 먹는 사람들은 많이 먹어야지. 그것도 싸움이다. 굶는 것도 싸움이고, 밥 먹는 것도 함께 싸우는 거다. 다 같은 길이다."

23일로 단식 15일차를 맞이하는 그다. 그가 밥 콘서트에서 같이 밥을 먹기 위해 필요한 것은 '희망'. 구체적으로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 또는 대선 후보들의 약속일 것이다.

26일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에서 '희망 밥 콘서트'가 개최된다.
 26일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에서 '희망 밥 콘서트'가 개최된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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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쌍용자동차, #희망식당, #김정우, #박근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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