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경상남도 거창은, 내게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돼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하면 여러 도 경계를 쉽게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여행 후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면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귀농학교로 탈바꿈했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잠깐! 베이스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그곳의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께 방문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였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돼 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한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나는 여러 농장을 다니면서 사과 작업을 했는데, 여러 명의 농장주분들이 이구동성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달라는 그 말에 농부님들이 바라보는 사과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봄부터 계속된 고된 작업의 결실이 가을 추수 기간에 사과라는 아기로 그들 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과를 애기 다루듯이 해달라'고 하셨던 농장주 분이다. 두 분 다 거창귀농학교 출신으로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귀농을 하신 분들이다.
▲ 사과농장 '사과를 애기 다루듯이 해달라'고 하셨던 농장주 분이다. 두 분 다 거창귀농학교 출신으로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귀농을 하신 분들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그렇게 농장주 분들의 피와 땀이 대변된 말이 내게는 좀 부담이었다. 투박한 내가 사과를 아기처럼 다뤄야 하다니.

사과 수확 작업은 단순했다. 일단 사과나무에서 색이 제대로 든 녀석을 골라 가위로 잘라내고, 무작위로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담았다. 그런 후 선별장에서 '과'라는 단위로, 크기별로 골라낸다. 통상 선별장에서는 10과에서부터 20과까지 걸러내는데, 10과가 가장 큰 녀석이고 20과 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얼핏보면, 10과짜리 홍로는 빨간색 호박처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컸다.

그렇게 과별로 선별된 사과들은 박스 포장이 되어 영농조합으로 넘겨지거나 택배로 도시민들에게 직접 배송이 된다. 이렇듯 사과 수확 작업은 무척 단순한 진행 과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이 단순하다고 노동 강도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난 거창 귀농학교에 2주 동안 머물렀는데, 16호 태풍 산바가 들이닥친 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과작업을 했고, 잘 때마다 계속 파스를 발라야 했다. 한마디로 '파스빨'로 버틴 것이다. 나는 '파스스타일'이었다.

사과작업을 하는 와중에 한 컷 찍어봤다. 사과작업 하느라 파스 좀 많이 발랐다.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와중에 한 컷 찍어봤다. 사과작업 하느라 파스 좀 많이 발랐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힘들게 사과작업을 하다보니 농부님들의 피와 땀이 저절로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B급으로 분류된 홍로도 난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다. B급은 점이 있거나 멍이 든 사과를 말하는데 상품성이 떨어질 뿐 맛과 품질에는 하등 문제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점 있는 거 점 빼서 먹고, 멍든 거 멍 파서 먹고

내가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섬세하게 사과작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욕은 안 먹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모난 짓을 하면, 거창귀농학교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긴장감 있게 작업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2주간의 나의 거창 고제면 사과작업은 무사히 마무리 됐다. 평소에 안 쓰는 근육을 썼던 터라 온 삭신이 다 쑤셨지만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에는 나도 사과를 아기처럼 다뤄야 한다는 말을 내 입에서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파스로 도배로 된 허리가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농촌 사과체험을 제대로 했던 것이다.

아래에 깔린 은박지는 반사 필름이다. 사과 하단면에도 태양빛을 들게 하기 위해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이다. 태양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부분은 홍로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돌지 않게 된다. 작업중에도 위쪽은 새빨갛게 붉은 빛이 잘 영글었지만 아래쪽은 히물건한 홍로들이 가끔 발견되곤 했다.
▲ 사과나무 아래에 깔린 은박지는 반사 필름이다. 사과 하단면에도 태양빛을 들게 하기 위해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이다. 태양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부분은 홍로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돌지 않게 된다. 작업중에도 위쪽은 새빨갛게 붉은 빛이 잘 영글었지만 아래쪽은 히물건한 홍로들이 가끔 발견되곤 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제 다음블로그(blog.daum.net/artpunk)에도 게재를 합니다.



태그:#사과작업, #거창군, #거창귀농학교, #홍로, #사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