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전지구 생태공원. '공원'보다는 '잡초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중전지구 생태공원. '공원'보다는 '잡초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강둑에 서자 느껴지는 것은 황량함뿐이었다. 이것이 33억 원을 들여 만든 '4대강 생태공원'이라니... 지난 1일 찾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 중전지구 생태공원. 잡초만 자욱한 공원에 새로 심은 나무들은 이미 죽었거나, 한두 가지 살아있어도 생명부지조차 힘겨워 보였다. 겨우 돋아난 몇 개 단풍나뭇잎 등이 이 나무들이 값비싼 조경수임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 위에는 잡초들이 한가득. 인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반생태공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단풍나무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단풍나무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농사짓는 늙은이들이 공원 가서 노닥거릴 시간이 어딨어? 강 둔덕에 농사나 짓게 놔뒀더라면 잡초도 없고 밭이 예쁠 텐데..."

이 생태공원 앞 작은 마을 마당에서 땅콩을 말리던 지옥진(82·여)씨는 집에서 5분 정도 걸리는 이 생태공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허리까지 구부정한 지씨는 거동조차 불편하다.

생태공원이 들어선 땅은 원래 남편과 고추 농사를 짓던 자리였단다. 비싼 운동시설들이 공원에 설치됐지만, 농사일만으로도 운동량이 넘치는 주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인근 주민들은 대개 70~80대 노인들이다.

제천시 금성면사무소에서 청풍 쪽으로 2km가량 달리면 고교천이 나온다. 고교천을 건너 좁은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이 생태공원에 닿을 수 있다.

충북 제천지역에는 총 사업비 207억 원에 길이 4.3km에 이르는 세 개의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중전지구·옥순봉지구·비봉산지구 생태공원이 바로 그것인데, 저마다 수생습지와 탐방로 등이 조성돼 있다.

"농사짓는 칠팔십 노인들이 뭔 운동을 하겠어?"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잡초가 통행로까지 침범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잡초가 통행로까지 침범했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공원 가장 왼편 관찰데크를 시작으로 축구장이 있는 중앙까지 오는 통행로는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크게는 성인 허리까지 자란 잡초 때문에 주변에 들꽃을 심어놓은 곳과 뚜렷한 경계가 없었다. 피다만 듯 여리게 자란 꽃들도 대부분 시든 지 오래. 중앙운동장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잔디를 심어놔 다른 구역보다는 관리가 잘 돼 있지만, 잡초가 자라는 건 매한가지다.

인근 주민 강석중(65·남)씨는 "관리도 전혀 안 되고, 이용할 사람도 없는데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준공한 지 불과 몇 달이 지났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방치된 이 생태공원의 한쪽에는 낚시꾼 몇 명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이곳이 "4대강 생태공원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습지원에는 인공으로 심은 식물 말고 어떤 생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습지원에는 인공으로 심은 식물 말고 어떤 생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생태'와 걸맞지 않은 습지원도 있다. 20만 ㎡의 수생습지원은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고교천의 물을 막아 조성된 곳. 수생식물인 부레옥잠과 갈대를 심어놨으나 자생적으로 자란 식물이나 곤충 또는 물고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더구나 생태공원이 물이나 토사에 잠기기라도 하면 인공습지는 무의미해진다. 그저 건설업체에 공사를 맡기기 위해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억지로 조성한 공간처럼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의 연령과 생활실태 등을 조사해봤다. 조사 결과 중전지구에는 53가구, 110명이 살고 있는데 11명만이 환갑이 안 된 58~60세였다. 나머지는 75~83세의 고령이었다. 주민 90%가 운동시설을 이용하기는커녕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들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저녁에 산책을 하려고 해도 가로등 하나 없는 생태공원에 뭐하러 가느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아 잡초로 뒤덮인 운동기구.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아 잡초로 뒤덮인 운동기구.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수몰지구'임을 알리는 안내판. 언제든지 침수될 수 있는 지역이지만 33억 짜리 생태공원이 버젓이 들어섰다.
 '수몰지구'임을 알리는 안내판. 언제든지 침수될 수 있는 지역이지만 33억 짜리 생태공원이 버젓이 들어섰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외지인 접근도 어렵다. 중전지구로 들어가는 버스는 제천에서 출발하는 925번 단 한 대뿐이고, 이마저 하루 세 번 운행할 뿐이다. 자가용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4대강 누리집이나 홍보책자 어디에서도 중전지구의 주소를 알 수 없다. 마을에 들어서는 길목에도 생태공원 알림 표지판조차 없었다. 친정을 찾은 장은숙(34·여·부천 거주)씨는 "노인이 대부분인데 마을 사람들을 위한 시설은 없고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기 어려운 공원"이라고 평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전지구가 지난 1985년 충주 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수몰지구'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수몰되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집 앞마당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로 마을 전체가 침수된 적이 있다고 한다.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비가 많이 오면 마을 입구 고교천이 침수되는 수몰지역에 생태공원을 조성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침수에 따른 수질 오염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운동장의 잔디나 잡초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할 수 있는데, 만약 공원이 침수되면 농약으로 인한 수질 오염은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유지비용 너무 많아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낫다"

중전마을 입구. 인공 생태공원이 없어도 이 마을은 원래 아름다운 곳이었다.
 중전마을 입구. 인공 생태공원이 없어도 이 마을은 원래 아름다운 곳이었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4대강 생태공원과 관련해 지난 1년간 문제가 된 지역들을 한국언론재단 뉴스DB '카인즈' 기사검색을 통해 찾아내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생태공원의 문제가 국지적인 게 아니라 전국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4대강 생태공원과 관련해 지난 1년간 문제가 된 지역들을 한국언론재단 뉴스DB '카인즈' 기사검색을 통해 찾아내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생태공원의 문제가 국지적인 게 아니라 전국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 진희정

관련사진보기


유지·관리 비용도 문제다. 제천시는 생태공원 유지·관리 권한을 올해 4월 국토해양부로부터 넘겨받았다. 유지·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국 4대강 생태공원 관리비용으로 400억 원을 책정했다. 올해 제천 지역에 배정된 예산은 1억9천만 원. 제천시 하천관리 담당자는 "준공된 지 얼마 안 돼 시설물 파손이 거의 없어 예산은 주로 제초 작업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전 지구는 추석을 앞둔 9월에 제초 작업을 한 뒤 해마다 두세 차례 제초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국에 퍼져 있는 생태공원에 해마다 시설 관리에만 총 5천억 원이 넘게 지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명예교수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말로는 400억 원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몇천억 원이라 돼 있을 것"이라며 "공사는 끝났지만 유지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지·관리에 따른 편익이 커야 계속해서 관리할 수 있는데 막대한 비용 때문에 오히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과 상생하는 생태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는 새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 곳으로 한때 동양 최대 철새서식지였다. 그러나 2009년 시작된 4대강사업으로 철새 전망대와 자전거 길 등을 갖춘 생태공원이 들어서면서 되레 철새들이 떠나갔다. 멸종위기 1급 노랑부리저어새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의 보금자리에 목재 데크와 콘크리트 도로가 들어선 것이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이곳은 1973년 팔당댐을 건설하며 국가소유 하천부지가 되면서 농민들은 땅 일부를 임대받아 농사를 지어왔다.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도 상수원보호지역으로 묶이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 농민들은 4대강사업 이전부터 유기농업조합을 조직하고 유기농업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강 준설이나 도로 건설을 막아왔다.

지난 2009년 국토해양부가 두물머리에 4대강 자전거 길과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뒤 반대운동을 시작한 농민들은 지난 7월 정부를 상대로 1심에서 승소했다. 4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농민들이 땅을 개간해 유기농업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농민들이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지막까지 두물머리에 남은 농민 중 한 명인 서규섭(45)씨는 "농민들이 농사짓던 땅에 천편일률적인 강변공원을 만드는 것보다 오랫동안 일궈온 유기농업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게 보전가치가 높고 생태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4대강 사업의 악몽은 계속된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쓰레기 더미뿐. 깨끗한 강을 만들겠다던 4대강의 기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쓰레기 더미뿐. 깨끗한 강을 만들겠다던 4대강의 기적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중전지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6년 충주댐 건설로 중전리가 수몰지구로 지정되면서 한국수자원공사로 농지가 수용됐고, 이후 주민들은 점용 허가를 받고 경작을 해왔다. 3300㎡ 정도의 땅을 경작하던 주민 이순분(79·여)씨는 "동네가 좁아 농사지을 땅도 마땅치 않은데, 저 공원 때문에 그나마 있던 농지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4대강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수몰지구라 농사짓기 어렵고 퇴비를 쓰면 토양이 오염돼 하천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하지만, 이순분씨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물이 더러워지는 건 농사 때문이 아니라 축사나 공장 때문이지. (정부가) 수몰지구라서 농사를 못 짓는다는 핑계를 대는데, 그래도 우리 먹고 살 수 있는 밥 한 그릇은 나왔어. 땅도 얼마 되지 않았고, 보상도 받아서 굶어 죽을 일은 없지만... 더 살기 힘들어진 건 사실이야."

다행히 두물머리는 법원 판결로 정부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생태적인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반면 중전지구에는 밭 한 뙈기라도 농사짓고 싶어 하는 주민들 염원 대신 누구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생태공원만이 남았다. 농민들이 보상을 받았다고 해서 4대강사업의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유지·관리 비용이 생태공원에 투입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순분씨는 정부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공원에 사람이 오길 해, 관광지처럼 입장료를 받을 수 있어. 잡초 뽑으라고 돈 주고 사람을 쓰는데 그거 다 우리 세금 들어가는 거 아냐? 나라에서 한 거니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4대강 , #생태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