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집권 새누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표방하는 정치는 '원칙과 상식 그리고 신뢰와 소통을 중시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굳이 박후보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이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고 소통과 신뢰의 덕목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은 영·호남, 진보·보수 등 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소망하는 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가 말로만 위의 덕목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를 실천하기위해 노력한다면 비록 현재 그녀를 지지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이지만, 혹여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당선을 축하하고 대통령으로서 지지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원칙·상식·신뢰·소통 같은 말들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다수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란 말 자체에 여러 원칙들이 포함돼 있고, 그 원칙들을 세워나가는 과정, 즉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소통과 신뢰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칙이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같은 상황에서 같은 잣대로 공평하게 적용되는 형평성을 갖춰야 하며, 상식은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의사결정 시스템보다 정실이 우선하는 박근혜식 소통

이런 면에서 박 후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원칙과 상식'을 주장해왔지만 이러한 주장은 거의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말하는 '원칙'은 사회적 합의를 거친 보편적 원칙이 아닌 타인에 대해선 엄격한 반면, 주변에 대해서는 관대한 자의적 원칙에 불과했다. 또한, "5·16은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이라는 그녀의 '상식'은 우리 국민 다수가 상식으로 받아들일 만큼의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30% 이상의 고정 지지층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후보가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가지게 한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차선이나 차악의 선택이 아니라 위험천만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소통의 부재(不通)'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다양한 사회의 이견을 조율해 하나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소통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여론 동향의 파악이나 전문가 또는 이해 당사자의 소통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정책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 그런데 박 후보는 이런 면에서 국가의 안위를 좌우할 수 있는 막중한 국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합리적 소통과정이 아닌 아집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정황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의 검찰 출석과 관련해 박 후보는 "모든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문제가 됐었던 박지만 부부 삼화저축은행 비리 연루설에서 박 후보는 "동생이 아니라고 했으니 아닌 것"이라며 연루설을 일축한 바 있다.

물론 가족으로서 동생이나 올케의 말을 믿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일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가족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수사기관 등에서 "혐의 없다"고 해야만 비로소 아닌 것인데도 박 후보는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신뢰의 척도로 사회 문제를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후보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원회가 격론을 거쳐 결정한 일들을 자신의 말 한마디로 뒤집는 빈번한 사례나 김형태 후보의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이 폭로되었을 때 말 한 마디로 논란을 잠재운 일 등은 박 후보가 훗날 대통령이 됐을 경우 어떤 식으로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것인지 점쳐 볼 수 있게 한다.

박 후보가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통이나 토론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며, 결정은 스스로의 독단에 따르거나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를 정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독단적 사고방식은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유신시절에 이미 다져진 것으로 보여진다.

미디어 오늘에 실린 당시 신문기사
▲ 최태민씨는 누구? 미디어 오늘에 실린 당시 신문기사
ⓒ <미디어 오늘>

관련사진보기


책 <태자마마와 유신공주>을 다룬 <미디어 오늘> 기사("박정희 집무실 금고, 박근혜에게 털렸다")에는 유신정권 말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근혜를 등에 없은 최태민 목사 파문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기사에는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쓴 <한국 현대사>의 인용문이 나온다.

"박근혜는 육영수의 사망 이후 최태민에게 의존했다.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이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 박근혜는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최태민은 자신을 '태자마마'라고 불렀다. 최태민이 뇌물을 받고 이권에 개입한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박정희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이러한 최태민의 전횡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게된 동기 중의 하나로 재판정에서 거론하기도 했으니 당시 대통령 박정희와 영애 박근혜가 의사결정 시스템을 무시하고 정실에 의한 결정이 <대통령 시해사건>이라는 미증유의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불통의 리더십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천헌금 수수사건'은 이른바 '박근혜의 분신'으로 불려지던 현기환 전 의원이 핵심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7인 연석회의에서 박 후보는 "공천은 독립적인 공천위에서 한 것으로 책임질 일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이 현기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의당 당시 비대위원장이었으며 계파의 수장인 박 후보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입각한 국민 다수의 여론인데도 박 후보는 이런 점을 완전 무시하고 일방통행하고 있다.

최태민 논란과 관련해 훗날 동생 박근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나 박지만의 인터뷰에서도 최태민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발언이 나왔었지만, 최태민 논란에 대한 박근혜의 반응은 언제나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사건건 박 후보는 자신이나 최 측근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른바 '불통(不通)'으로 대변되는 박근혜식 소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주요 안위가 걸린 문제에서 만약 이런 식의 정실정치가 반복된다고 가정해보자. '왜의 침입설'이나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하고 임진왜란을 겪었던 일이나, 북한군의 일요일 남침 같은 끔찍한 비극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안이한 정실에 의한 판단 오류가 빚은 역사의 비극이며, 지금 이 상태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시대에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세종의 리더십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야기를 해보자. 드라마에서 세종은 한글 반포의 옳고 그름을 놓고 정기준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이 마무리 된 후 거처로 돌아온 세종은 정기준의 반포 반대론을 곱씹으며 혹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세종이 역사에 성군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소통이나 토론을 단지 요식행위로서 한 것이 아니라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반대 논리를 충분히 검토하고 때론 수용하는 훌륭한 소통의 리더십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원칙의 잣대는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며, 소통은 단지 거쳐 가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숙고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춰야만 비로소 한 나라를 경영한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박근혜, #최태민, #유신공주, #태자마마, #세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