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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요식업체에서 매입해 온 중고 물품이 쌓여있다.
▲ 황학동 중고시장 폐업한 요식업체에서 매입해 온 중고 물품이 쌓여있다.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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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마다 켜켜이 쌓인 그릇과 의자, 싱크대, 에어컨…. 한 때는 어느 자영업자의 생계를 이어주었을 물건들이다. 황학동 중고시장에는 폐업한 가게에서 매입해 온 중고 물품들이 이렇게 가득했다. 좁은 골목들 사이에서 가끔 물건을 실어 나르는 1톤 트럭이 보였다.

구경이라도 하려고 매장을 기웃거리면 매장 주인이 얼른 나와 "뭐 찾으세요?" 하며 옆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흥정하는 손님은 드물었다.

트럭이 중고물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 황학동 중고시장 트럭이 중고물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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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영업은 전멸이라고 보면 돼... 전멸" 

폐업 정리 업체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문짝, 창틀, 벽 등을 철거하고 인건비를 받는 철거업체다. 다른 하나는 폐업 점주와 흥정을 벌여 가구, 주방기기, 전자제품 등을 중고로 구매하는 중고처분업체다. 이들은 폐업 현장에서 매입한 중고 물건을 수리하고 청소해 깨끗한 상태로 저가에 되판다.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시장에는 폐업중고처분업체 매장이 밀집해 있다. 매장에서 직접 폐업하는 업체에 가서 물건을 사 오기도 하지만, 요즘은 속칭 '나까마'라 불리는 중간업자들을 통해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 나까마들은 트럭을 몰고 다니며 폐업 현장에서 물건을 매입해 중고시장에 다시 넘긴다.

그런데 요즘 이곳 경기도 좋지 않았다. 3년째 중고가구를 판매하는 정아무개 T중고가구점 사장은 "요즘 자영업은 전멸이라고 보면 된다"며 '전멸'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폐업중고처분업체 사이에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비슷한 업체가 늘어나서 일이 없다"는 업자가 많았다. 하지만 "꾸준하다" 혹은 "늘어났다"고 답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이름 공개를 거부했던 한 '나까마' 업자는
"망하는 사람 천지야"라며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선호 T중고가구점 부장은 "(폐업하니까 중고) 물건을 사 가라는 사람이 많다"며 "가만히 있어도 중간업자들이 사가라고 연락이 온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폐업 상담이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아. 그래도 우리는 한 달에 15건 정도 상담이 들어와. 상담만 따지면 작년에 비해 20~30퍼센트 증가한 거지." 

자영업계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증명된다. 중소기업청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소상공인 종사자 수가 전체 종사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3.1%에서 37.7%로 줄어들었다.

또한 2010년 실패를 경험한 자영업자는 전체의 31.2%였다. 특히 부동산·임대업에서는 실패를 경험한 자영업자가 반 이상이었으며, 1년 미만의 사업체에서 실패 경험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당시 자영업의 평균 영업기간은 1년~5년 미만이 전체의 29.2%로 가장 많았다. 전체 평균 영업기간은 약 9년 반이었지만, 오락·문화·운동 관련업은 평균 영업 기간이 고작 5년이었다. 자영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숙박·음식업 역시 약 6년에 그쳤다.

폐업중고처분업체 간판들.
▲ 황학동 중고시장 폐업중고처분업체 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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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사람들은 다시 식당 하려 하지 않아" 

그렇다면 자영업자의 '불황'으로 폐업이 이어질 때, 역으로 폐업중고처분업체는 '호황'을 누리는 것일까? 막상 들여다보니 사정은 달랐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처럼, 자영업계의 불황은 중고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폐업중고처분업체는 폐업 현장에서 물건을 사들여 중고가에 되팔아 수익을 얻기 때문에, 결국 개업 혹은 재창업이 활발해야 중고시장도 호황이라는 것이 업자들의 설명이다.

"경기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야. 폐업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경기가 돌아야 하는데…, 경기 흐름이 제일 문제지."

최인식 S중고주방업체 사장의 말이다. 그는 요즘 폐업 대 개업의 비율이 어떠냐는 질문에 "7대 3 정도"라고 답한 뒤, "요즘은 물건이 와도 안 팔릴 게 뻔하니까 물건을 살 수가 없다"며 "우리도 창고에 물건을 쌓아둘 수는 없지 않나?"라고 호소했다.

"망한 사람들은 다시 식당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증언도 있었다. 15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Y중고주방업체 사장의 경험에 따르면, 사업 실패를 딛고 재창업하는 경우는 "있긴 있지만 드물다"고 한다.

이들은 자영업이 가장 호황이었던 때를 IMF 구제금융 시기로 기억한다. 너나없이 "당시 명예 퇴직한 사람들이 퇴직금을 들고 '만만한' 식당을 개업하러 왔던 시절"이었다. T중고가구업체 정 사장은 "IMF 때 장사를 시작했던 사람들이 2~3년 전 많이 접었다"며 "요즘은 폐업조차 많지 않다"고 말했다.  

"요새는 장사를 접고 다시 시작할 여력도 없어. 그래서 같은 요식업 내에서 고기장사를 하다 채소나 횟집을 하는 식으로 살짝 업종만 변경하는 거야. 그래서 중고시장에서 수저나 그릇, 이런 것들만 바꾸지. 그래도 예전에는 장사를 시작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돈이 돌지 않으니. 그냥 다들 버티는 거야. 하루하루." 

한마디로 '시작'도 '끝'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 폐업중고처분업체들이 느끼는 자영업의 현실이다. 남복현 H폐업대행업체 사장은 "폐업을 안 하게 하는 방법이 아닌 재창업 교육 활성화가 시급하다"며 실패를 경험한 자영업자를 위한 체계적인 재창업 교육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황학동 중고시장 전경
▲ 황학동 중고시장 황학동 중고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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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폐업중고처분업체, #황학동중고시장, #자영업자몰락,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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