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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소속 샤르티 병원 파업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소속 샤르티 병원 파업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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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산별노조운동에 대해서 차분히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1998년부터 산업별노조를 지향해온 노동운동이 최근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거대한 벽 앞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급해하고, 불편해하고, 심지어 좌절감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산별노조운동의 새로운 추진력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산별노조운동에 대해 중간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산별노조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이 산별노조를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현 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가 산별일까? 산별노조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이 갖는 실질적 의미를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어느 사이에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관성화된 의제가 되어버렸고, 제도적 및 조직적 변화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산별노조운동은 단순한 제도적 및 조직적 변화로만 이해 내지는 막연한 기대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산별노조운동은 제도적 및 조직적 변화이자 문화적 혁신의 운동이 되어야 하며, 문화적 혁신의 내용은 바로 '과정으로서의 연대'이다.

이 글을 독일산별노조 사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이 그간 잊고 있었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제기하고 같이 고민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첫 번째로, 산별노조운동은 정치적 운동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동운동을 불온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산별노조운동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굳이 외면해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연대의 확보는 단순한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 및 복지 격차를 실제 수행한 노동에 대한 차이로 조정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현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제도 실현을 위한 정치적 활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달성됟 수 없다.

독일산별노조는 독일노총과 산하노조의 일상적 활동을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정치적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노총의 중요한 기본 원칙은 통일노조이다. 통일노조의 원칙이 등장한 이유는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독일 사회 및 경제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일종의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독일 산별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조직적 연대를 통해 사회민주화 및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정치적 주체, '산별노조'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소속 샤르티 병원 파업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소속 샤르티 병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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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사회민주화에 대한 독일산별노조운동의 개입은 독일 복지국가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니라 지역 및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이 바로 사회적 연대의 핵심적 내용이다. 취업과 실업, 산업재해, 근무환경, 장애인, 남녀고용평등, 양질의 일자리, 일과 생활의 균형, 은퇴 후 노후대비 등 산별노조운동은 개별 기업의 노동자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 개개인이 안게 될 위험을 축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수행해왔다.

사회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민주화는 일상적 삶의 문제를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이며, 결국 제도와 정책으로 귀결된다. 전체 노동자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험을 풀어가야 할 중요한 역할을 독일산별노조운동은 전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이제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운동도 우리 사회의 핵심적 집단인 노동자계급의 일상적 삶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제도화시키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과제의 수행을 위해서 기업 단위를 넘어 노동자의 전체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산별노조운동이 더욱 절실하다.

세 번째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독일산별운동의 기여를 들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양극화와 같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 내지는 상생협력과 같이 가진 자의 수혜적 논리로 접근되고 있다. 재벌기업과 가진 자의 선한 의지만으로 구조적 불평등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거나 사기에 불과하다. 경제민주화는 제도와 구조의 문제로서 접근할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독일산별노조운동이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수행해온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산별노조가 195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노동자 경영참여는 바로 경제민주화의 시작과 끝은 바로 기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준다.

간략히 말하면, 독일의 노동자 경영참여는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와 현장노동자의 경영참여로 구분된다. 독일 산별노조의 활동가들이 주요 핵심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 단위인 감독회에 1/2 또는 1/3 비율로 참여하여, 기업의 인수합병, 공장이전, 구조조정 등 노동자의 노동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는 해고, 배치전환, 기업복지, 인적자원개발, 직업훈련교육 등의 영역에 노동자 대표가 공동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독일 산별노조의 활동가들은 주요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기업이 경영논리에 의해 자의적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보다 근원적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경제민주주의를 추상적인 구호나 허무한 정부정책의 수준이 아니라 보다 더 현장과 개별 노동자의 삶에 가까운 구체적인 연대의 과정으로 변화시켰다.

개별 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연대의 정신'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최저임금 거리행진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최저임금 거리행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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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산별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전략을 들 수 있다. 앞에서 독일 및 스웨덴 산별노조의 교섭전략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그 함의만을 간략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독일 산별교섭 역시 스웨덴보다는 약하지만 마찬가지로 산별노조를 통한 노동자의 핵심적 산업정책 수단으로 작용한다.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한계기업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나쁜 일자리가 아닌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국 산별교섭의 문제는 두 번째로 언급한 복지체제의 사회민주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계기업의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연대로서의 복지체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산별교섭이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산별노조운동은 이러한 문제를 나름대로 유연하게 해결함으로써 산별교섭과 복지국가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구축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독일산별노조의 전략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전술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높은 실업률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양보교섭과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에게 예외규정을 한시적으로 적용해줌으로써,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보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산별교섭체제의 정착은 향후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할 중요한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과 일중독은 우리나라 고임금군 및 저임금군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체제와 산별교섭을 동시에 전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산별노조운동의 정착은 우리나라 산별교섭의 패러다임의 성립여부 및 향후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적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산별노조운동은 숙련노동자 중심의 특권적 노동조합에서 탈피하여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고이윤의 독점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이 아니라 중소기업, 취약계층 노동자, 여성노동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예비노동자, 실업자 등 일반 노동자의 대표적 조직으로 발전해 왔다. 그 핵심은 개별 노동자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전체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연대의 정신에 있다.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이 독일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함의는 제도, 조직,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의 노동자들이 산별노조를 통해 어떻게 노동자 집단으로 형성될 수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산별노조운동의 경우에는, 이렇게 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되고, 조합원으로서 내부적 연대를 확보해가는 과정에 대한 논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앞에서 얘기한 문화적 혁신으로서의 산별노동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업단위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한 산별노조운동이 벽에 부딪힌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노동자들 또는 조합원들이 여전히 기업단위의 틀에 갇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감수하고 있는 사회적 위험을 산별노동조합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산별노동조합운동의 성패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복지국가, 산업정책으로서의 산별교섭, 경영참여를 통한 산업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와 같은 제도 및 구조는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독일 베르디(공공노조) 최저임금 거리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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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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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좋은기업센터 전문위원입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산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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