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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가 되면 가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파리에서 한 학기동안 살았지만 정작 '나는 어차피 여기 사니까'라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항상 다녔던 곳만 다녔던 것 같다. 새로운 빵집을 들어갈 때조차 무엇인가 어색해서 주춤하게 되고 원래 가던 빵집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여행자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걸어서 많이 다니기 때문에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던 길이 이렇게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가다가 예쁜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으면 고민도 하지 않고 문을 열게 된다. 왠지 '여행자'란 지위가 모든 것을 허락해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리언니가 파리에 다시 오고 나서야 나는 다시 그 여행자의 지위를 얻었다.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은 부족하고 발에 불이 나도록 걷는다. 언니가 파리에 도착한 첫날도 짐을 놓고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밖으로 나섰다.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오는 길,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작품들을 관람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한걸음도 못 뗄 정도로 다리가 쑤셨다. 그래서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Pont des Arts(예술의 다리)'에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파리에 센느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총 37개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이 다리는 파리에 지어진 최초의 철제다리이다. 게다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다리이기 때문에 매연과 소음을 피하여 센느강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국 남산처럼 '연인들 자물쇠' 달린 사랑의 다리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Pont des Arts(예술의 다리)'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Pont des Arts(예술의 다리)'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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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그린 '예술의 다리'. 돔 지붕이 루브르궁이다.
 르누아르가 그린 '예술의 다리'. 돔 지붕이 루브르궁이다.
ⓒ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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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다리'라는 이름만큼 종종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갖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 다리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다리에 걸려있는 자물쇠들이다. 연인들이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그 증표로 자물쇠에 이름, 날짜를 적어 다리에 걸어 논 것이다.

예술의 다리에 언약의 상징으로 채워진 자물쇠들
 예술의 다리에 언약의 상징으로 채워진 자물쇠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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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놓여있는 벤치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우리 앞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보였다. 우리의 눈길이 느껴졌는지 먼저 말을 거신다. 이때다 싶어서 무슨 촬영을 하고 계시냐고 물으니, 아저씨가 일하는 프로그램에 내보낼 이 다리에 대한 3~4분 정도 짧은 영상을 만든다고 한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인 이 분은 아랍어로 방송되는 채널에서 일한다고 한다. 역시 주목하는 점은 이 다리에 걸린 자물쇠들이었다. 역사적인 다리에 이렇게 자물쇠를 거는 것이 옳지 않아 조만간 자물쇠를 다 없앨 거라는 소문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다. 한국에도 남산에 이렇게 연인들의 자물쇠가 채워진 곳이 있다고 하니, 눈빛이 반짝이면서 아예 나를 일으켜 세워 카메라 앞에 세웠다. 아랍어권 사람들이 보는 만큼 옷을 잘 추스르고 이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아랍 방송 채널과의 우연한 인터뷰... 여행의 묘미인 '만남'

아랍어 방송 PD와와 '예술의 다리와 자물쇠'에 관한 인터뷰
 아랍어 방송 PD와와 '예술의 다리와 자물쇠'에 관한 인터뷰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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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아저씨가 질문하면 내가 한국어로 대답한 다음에 뒤에 프랑스어로 다시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내 소개에서부터 이 다리가 마음에 드는지 또 이런 역사적인 다리에 연인들의 자물쇠가 채워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셨다.

'예술의 다리'에 연인들의 자물쇠가 채워지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 라고 한다. 늘어나는 자물쇠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아서 이게 문화를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물쇠를 없애곤 했다. 2010년 5월에는 2000개 가량이었던 자물쇠가 이틀 밤사이에 거의 모두 제거되어 40여 개 밖에 남지 않게 된 사건도 있었다. 파리시나 경찰에서 한 일은 아니라고 하니 아직도 누가 그 많은 자물쇠를 이틀 밤 사이에 제거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 사건 때문에 현재 다리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자물쇠는 2010년 이후에 걸린 것이라고 한다.

외국친구들이 오면 꼭 구경시켜주는 남산 그리고 연인들의 맹약의 자물쇠
 외국친구들이 오면 꼭 구경시켜주는 남산 그리고 연인들의 맹약의 자물쇠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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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마친 아저씨는 언니가 연극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한 번 눈이 반짝이신다. 사연을 듣고 보니 아저씨도 희곡을 쓴다고 하신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보통 사람이 죽으면 내세에서 영혼과 함께 육신도 부활한다는 믿음 때문에 매장을 하는데 그 희곡의 주인공은 그 전통을 거스르고 화장을 하려고 한다. 아저씨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흰양이라면 희곡의 주인공은 검정양이다. 아직 연극으로 올리진 못했다고 하셨지만 이야기를 하실 때 열정적인 아저씨의 모습만 보아도 곧 연극으로 올릴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 해본다. 역시 여행은 이런 뜻밖에 반가운 만남들 덕분에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예술의 다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중인 PD는 서울의 남산에도 자물쇠가 걸려있다는 것에 대단히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희곡작품에 관해 진지하게 소개해주었다.
 예술의 다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중인 PD는 서울의 남산에도 자물쇠가 걸려있다는 것에 대단히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희곡작품에 관해 진지하게 소개해주었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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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예술의 다리, #PONT DES ARTS, #파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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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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