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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최승호 PD(가운데)와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사옥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MBC 파업 참여와 무단결근, 대기발령 불응 등의 이유로 PD수첩의 최승호 PD와 전 노조위원장 출신의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최승호 PD(가운데)와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사옥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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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한 번의 대규모 중징계 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인 21일, MBC 노조의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발생한 잇따른 징계와 해고를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이래 최대의 언론 대학살"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여의도 MBC 남문 앞에서 열린 규탄 집회 사회를 맡은 장재훈 노조 정책교섭국장은 "YTN 구본홍 사장이 6명을 해고했는데, 김재철 사장은 8명을 해고하는 기염을 토했다"면서 사장실을 바라보며 '분노'의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같은 날,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는 노동, 장애,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등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현병철 연임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 출범을 선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수당인 새누리당과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씨는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가 지난 11일 현병철 위원장의 3년 '연임'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2012년 6월 21일, 여의도 풍경

자질 문제로 시민사회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청와대가 연임시키기로 내정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앞에서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질 문제로 시민사회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청와대가 연임시키기로 내정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앞에서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인권단체연석회의' 회원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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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바늘을 2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0년 11월, 유남영·문경란 두 상임위원의 동반 사퇴를 시작으로 조국 비상임위원이 현병철 위원장의 파행적 인권위 운영에 반발해 사퇴한 이후, 인권위가 위촉한 전문·자문·상담위원 70여 명이 동반 사퇴 의사를 밝혔다. 621개 전국 시민사회단체가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 위원장은 굳건했다. 2010년 국감 당시 "전직 인권위원들, 수백 개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 인권위 내부 직원들이 현 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나"라는 의원들의 질문에 현 위원장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많다"고 답해 '불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권위는 '식물인권위'로 전락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 용산 철거민 사망,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 두리반 단전조치로 인한 긴급 구제, 국무총리실의 김종익씨 불법사찰, 한진중공업에서 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 대한 긴급 구제 등 인권현안에 대해 "인권위가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 '연임반대 전국행동'의 지적이다.

정책 권고도 크게 줄었다. 인권위 정책국이 내놓은 정책 권고 수는 현 위원장이 취임하던 해인 2009년 33건에 비해 지난해에는 21건으로 급감했다. 특히 지난 1년 6개월 동안 '노동분야' 관련 정책 권고는 전무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 내부에서는 "현 위원장이 청와대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판세력에 대해서는 '징계'의 칼을 휘둘렀다. '현병철 인권위'를 비판한 노조 간부 강아무개 조사관을 해고(재계약 거부)하는가 하면, 동료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한 내부 직원 11명을 징계했다.

현병철 위원장과 김재철 사장은 닮았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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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과 김재철 사장은 닮았다. 현 위원장이 취임한 지 8개월 후인 2010년 3월 MBC에 '입성'한 김 사장은 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취임 초기부터 '자격 논란'을 빚었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은 지난 3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은 청와대 뜻과 무관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라고 인정하면서 "제대로 된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김 사장을 임명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을 찾을 수 없는 '날치기 인사'라는 이유로 2009년 7월 당시 취임식이 파행을 겪기도 했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침해되었다. 지난 1월 30일,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정영하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출정문'을 읽었다.

"공영방송 MBC는 MB방송 MBC가 되었으며, 국민의 방송 MBC는 정권의 방송 MBC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뉴스데스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전할 수 없으며, 더 이상 PD수첩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격자로 역할을 할 수 없기에 국민 여러분 앞에 석고대죄를 드리겠습니다."

노조에서 "살인마"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에서는 징계의 '피바람'이 불었다. 지난 2년 간 징계를 받은 조합원은 117명. 해고자만 8명이다. 야권은 물론이고,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조차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기 전에 김(재철) 사장님의 전향적인 결정이 있어야 했는데 정말 안타깝다"는 의견이 나왔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각계 300여 개 단체가 참여한 'MBC 파업 해결 및 김재철 사장 퇴출 촉구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MBC 노조는 현재 온·오프라인을 통해 김재철 사장 사퇴 촉구 10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선 5개월 앞두고 '연임' 결정... MB 통한 문제해결 요원 

김재철 MBC 사장(자료사진).
 김재철 MBC 사장(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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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재철 사장의 퇴진은 그리 쉽지 않을 듯하다. 김 사장은 지난 8일 임원회의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사장을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2014년까지 임기는 반드시 채울 것이며, 사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승호 PD와 박승호 기자에게 해고를 통보한 다음 날인 21일, 사측은 특보를 통해 "프로그램을 위해 파업 중인 후배들을 설득해야겠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결방시키는 것은 시청자들을 무시하는 행위"라면서 "가을 개편 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프로그램을 위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안광한 부사장의 발언을 전했다.

이미 파업 이후 4차례 경력기자를 모집한 사측은 "기획, 홍보, 기자, 시사·교양 PD, 예능 PD 등 전 분야에 걸쳐 경력사원을 모집하며, 앞으로 본부별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21일로 144일째. MBC 파업 사태 장기화의 '배후'로는 청와대가 지목된다. 20일 시국회의에서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정동익 4월 혁명회 상임의장은 "MBC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을 거두어들이기 전에 이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인권위 상황만 보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통한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2009년, 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20102년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두고 현 위원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인권위가 계속해서 '식물인권위'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시국회의에서 강기갑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MBC 사태를 대선 이전에는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에게 입장 묻는 인권단체... MBC는?

인권단체들은 일단 '공'을 박근혜 의원에게 넘겼다. 이들은 21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청와대가 인권위원장 임명권을 가졌더라도 차기 대통령 후보와 새로운 국회의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인권위원장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면 청와대가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생각"이라면서 "지금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선주자가 이명박 정부와 진짜 다르다는 것을, 시민사회와 소통하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MBC 노조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범국민 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은 "공정방송 편파보도 투쟁이 1기였다면, 법인카드 사용·J씨 특혜지원 의혹 등 김재철 사장 개인 비리에 집중한 것이 2기, 이제는 '학살자' 김재철 사장 퇴진에 집중하는 3기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30도 무더위에 서울 전역을 돌며 서명을 받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과 '평행이론'을 보여 온 김재철 사장은 현 위원장의 뒤를 이어 '임기 완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MBC 노조의 21일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끝난다.

"학살자를 이기는 길은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길엔 공정방송을 원하고 기다려온 국민들이 있다. 언론 살인마 김재철은 국민이 반드시 단죄할 것이다."


태그:#현병철, #김재철, #국가인권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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