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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기차여행책이 나왔다
 철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기차여행책이 나왔다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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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이동을 기반으로 하지만 출장이나 통근-통학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이 있다. 여행지 자체 못지않게 여행지를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안하게 가기만 하면 되는 업무통행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점은 기차여행이 더욱 그러한데, 차장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다양한 종류의 열차나 특별한 관광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도 기차여행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기차여행 안내 책자들은 여행 과정을 도외시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여행작가들이 철도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행지는 잘 알지만 철도는 모르는 일반적인 여행작가들이 여행지 소개만을 중심으로 글을 쓰다 보니, 분명 기차여행이라고는 하는데 굳이 기차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하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저 기차역 근처에 있는 여행지 소개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기차여행 책의 한계였다.

하지만 이번에 드디어 철도를 아는 철도전문가들이 쓴 제대로 된 기차여행 책이 나왔다. 임병국, 박준규, 정진성이 쓴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이 바로 그 책이다(2012년 5월 25일, 시공사-지식채널, 15000원).

Best코스, 테마별, 지역별 구분 중 지역별 기차여행에 제일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철도는 서울과 지방을 가장 편리하게 이어준다.
 Best코스, 테마별, 지역별 구분 중 지역별 기차여행에 제일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철도는 서울과 지방을 가장 편리하게 이어준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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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나 여행가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철도동호인들 중에 위 3명의 저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임병국은 국내 최고의 간이역 전문가로서 한국의 기차역을 모두 답사하고, 문화재청이 간이역 16개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도록 이끈 사람이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여행전문 객원 사보기자 활동은 물론 방송국의 간이역 관련 방송에도 빠짐없이 자문을 해주고 있다.

박준규는 Daum카페 '기차여행기를 적는 사람들'의 운영자이며, 영동선 철도 간이역인 망상역의 명예역장이기도 하다. 전국을 기차로 돌아다니며 취재활동을 하고, 명예역장 활동을 페이스북으로 공개하며 망상역을 기차여행 명소로 만든 그는 국내 최고의 기차여행 전문가이다. 마지막으로 정진성은 Naver 철도동호회 '엔레일'의 운영자이며 철도잡지 '레일러'에는 폐선답사기를 연재하는 등 우리나라의 기차여행과 철도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철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만든 기차여행 책은 어떻게 다를까? 일단 가장 큰 특징은 '기차를 탄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여행에 비해 기차를 이용하는 여행은 목적지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KTX를 제외하고는 열차의 속도가 느리고 열차를 갈아타기도 하는 등 단번에 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책들처럼 목적지 소개에 그친다면 기차를 탄다는 것은 고행(苦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시골철도, 곧 있으면 사라질 예정인 개량예정철도, 폐선을 따라 걷는 '레일길' 등 기차여행만이 줄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을 소개했다.

기존 책들과의 두번째 차이점은 실제 이용이 가능한 코스만을 안내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기차여행 책들은 저자가 철도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분명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인데도 실제로 이용을 할 수 없는 코스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열차출발시각, 소요시간, 각 역의 현황, 열차의 운행 특성 등을 제대로 모른 채 여행지만 안내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철도동호인계의 전문가들이다. 현재의 열차 운행 체계상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코스만 안내하였으며 맨 처음 출발열차와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는 열차번호까지 명시해두었다. 무엇보다 책 마지막에는 여행 중에 언제나 들춰볼 수 있도록 우리나라 모든 열차의 시각표를 부록으로 넣어두었다.

권말에 휴대용 열차시각표를 넣어두었다. 여행중에 지참할 수 있다.
 권말에 휴대용 열차시각표를 넣어두었다. 여행중에 지참할 수 있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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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존 책들과의 차이점은 앞으로도 스스로 여행코스를 만들어 기차여행 코스를 계속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순히 요리책처럼 코스를 따라서 가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테마를 찾고, 자신이 가보고 싶은 지역을 골라 스스로 기차여행 코스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셈인데, 이를 위해서 다양한 기차표 구입방법과 할인 혜택, 기차여행을 더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팁과 정보 사이트 소개 등을 잊지 않고 있다. 철도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소개하는 내용이라 그 깊이가 다르다. 기차여행이라고 해서 기차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기차를 중심으로 하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종합적으로 안내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열차가 더 이상 서지 않는 기차역들도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KTX 시대이니 철도 르네상스이니 하면서 철도가 주목받고 있지만 기차여행가들에게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도 기차여행이다. 열차가 통과하는 시골역이 늘어나고, 낭만적이던 구불구불한 시골철길은 어느새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직선 철로로 바뀌어 버리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의 중심점 역할을 하던 기차역이 어느새 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7일 무제한 열차패스인 '내일로'가 청소년 방학여행의 필수품이 되었고, 성인을 위한 3일짜리 내일로 티켓인 '자유여행패스'가 등장하였으며, 기차여행지라고는 정동진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조금씩 보다 많은 기차여행 명소를 알아가고 있으니 기차여행의 전망도 아직은 밝다.

또한 우리나라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도 와인트레인, 바다열차 같은 전통적인 베스트셀러에 이어, 에코레일 자전거열차, 한류테마열차 등 다양한 관광열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기차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저자들은 유명한 철도사진가들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직접 찍은 시원시원한 철도사진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유명한 철도사진가들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직접 찍은 시원시원한 철도사진들도 함께 볼 수 있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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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점에서 철도를 제대로 아는 철도전문가들이 만든 기차여행 책의 출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6~70년대 우리나라 철도는 산업화를 이끌었고, 8~90년대 우리나라 철도는 도시화를 견인했다. 21세기 들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를 이용한 당일 출장이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났으며, 이제는 철도를 이용한 여행문화가 더욱 확산될 차례이다.

우리의 여행문화는 지나치게 자가용 중심으로 흘러가버린 경향이 있다. 기차여행을 통해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여행지를 찾아가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가용 여행은 공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철도를 이용한 친환경적 여행, 목적지만을 보고 오는 여행이 아닌 여행과정 그 자체도 함께 즐기는 여행이 필요하다.

철도를 사랑하고 철도를 아껴온 3인의 철도동호인이 만든 이 새로운 기차여행책이 우리 여행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은 교통평론가, 미래철도DB 운영자(frdb.wo.to), 코레일 명예기자입니다



대한민국 기차여행의 모든 것 - 2012-2013 친구/연인/가족들을 위한 기차여행 완벽 가이드!, 내일로티켓.자유여행패스

임병국.박준규.정진성 지음, 지식채널(2012)


태그:#기차여행, #철도, #코레일, #엔레일, #철도동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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