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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은 황금연휴의 중간에 낀 일요일. 오랜만에 아내와 외지로 나갈까 하다가 포기했다.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있다는 소식과 절약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었다. 대신 단골 식당에서 외식도 하고, 며칠 동안의 찬거리 준비를 위해 재래시장에도 들렀다.

다양한 일과 중 장보기는 가족의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어서 우리네 어머니들은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할지 항상 고민해왔다. 그러나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재래시장 장보기는 생각에 따라, 방법에 따라 여행에 버금가는 재미난 나들이가 되기도 한다.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는 것으로 장보기를 마쳤다고 생각하면 오산. 흥정을 벌이면서 사들인 찬거리를 차에 싣고 오면서 나누는 뒷이야기와 집에 도착해서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치고, 김치도 담그면서 주고받는 대화와 맛있게 먹는 것도 장보기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서다.

풋고추 몇 개와 홍당무 하나 덤으로 받은 사연

구시장(재래시장)에 도착해서 2층의 옷 수선 전문 가게 먼저 찾았다. 딸에게 선물 받은 바지 길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바지 줄이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아주머니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도깨비가 방망이 휘두르 듯했다. 수선료는 3000원. 그러나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구시장 입구 노점상 아주머니가 대파를 다듬고 있다. (자료 사진)
 구시장 입구 노점상 아주머니가 대파를 다듬고 있다. (자료 사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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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으로 내려와 '신영시장'을 오가며 병어(10000원), 시금치(2000원), 쪽파(2000원), 깻잎(1000원), 열무 한 다발(3500원), 혼자 있으면서 궁금할 때 먹을 오란다 과자(3000원)를 구매했다. 열무에서 500원 깎았고, 풋고추 몇 개와 홍당무 한 개를 덤으로 받았다.

"아주머니, 열무 한 다발에 얼마씩 하나요?"
"한 다발에 4000원씩 파는디 싸게 드리께 사가셔유. 3500원씩 세 다발이믄 1만 500원인디 꼭대기 끊어버리고 1만 원에 드리께유. 아무리 돌아댕겨도 이렇게 깨끗허고 얌전허게 다듬어 놓은 지꺼리(열무)는 없을 거유. 더 다듬을 것 없이 물에 헹궈서 담가 먹으믄 되니께···." 

열무가 싱싱하고 연하게 보였다. 그러나 많이 담가놓았다가 맛이 변해 속상했던 경험이 생각나서 한 다발만 사겠다며 1만 원을 건네주었다.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며 돈을 받은 아주머니는 1500원을 거슬러주고 돌아서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착각한 모양이었다.   

"(거스름돈을 보여주며) 아주머니, 오천 원 더 거슬러주셔야죠."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하이고, 내가 지금 정신을 어디다 팔어먹고 있는지 모르겠네. 죽어도 싸당게. 아자씨 미안혀서 어쩐댜. 이거 홍당무인디 겉절이 담글 때 잘게 썰어서 넣으믄 보기도 좋고 맛도 훨씬 좋아지니께 가져가셔유··." 

얼굴이 그야말로 홍당무처럼 빨개진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5000원과 함께 홍당무 하나와 풋고추 몇 개를 얹어주었다. 미안한 마음에서 주었겠지만, 덤은 덤이었다. 홍당무와 풋고추를 받는 순간, 구수한 된장국이 생각나 시금치 2000원어치를 더 구매했으니까.

돌아오는 차에서도 "나이 먹은 디다가 정신까지 없어져 저승사자가 델러 와도 헐 말이 없게 생겼다!"며 허둥대던 아주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올랐고, 아내는 "생각지 않은 반찬을 사느라 지출이 많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다. 

"자기는 생각은 좀 띨띨해도 손맛은 천재여!"

집에 돌아와 서재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겉절이가 잘 버무려졌는지 맛보라는 아내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이내 주방으로 달려갔으나 맛을 보고 자실 것도 없었다. 구수한 멸치젓국 냄새와 매콤한 양념 냄새가 침샘을 자극해서였다. 

어머니 손맛을 떠오르게 하는 아내의 병어 양념회
 어머니 손맛을 떠오르게 하는 아내의 병어 양념회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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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밤(나이트) 근무여서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시금치 된장국이 가득 담긴 국솥을 보여주었고, 병어회가 담긴 유리그릇도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고 알려주었다. 병어 머리와 뼈는 나중에 묵은 김치 넣고 찌개 끓여 먹으려고 냉동실에 보관해놓았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좀 띨띨한 모양이에요. 된장국은 열무 시래기로 끓이면 되는데 시금치를 또 샀거든요"라며 띨띨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아내. 그럼에도 반찬 챙겨주는 모습은 어렸을 때 음식 있는 곳을 알려주던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면서 잠시 상념에 빠지게 했다.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과 매콤, 달콤, 새콤한 맛에 깻잎까지 썰어 넣어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병어(병치)회를 보니 식욕이 본능적으로 솟구쳤다. 해서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서 싱싱한 열무 겉절이를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살이 연하고 비린내가 없는 병어는 애주가와 미식가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특히 까칠까칠한 깻잎 뒷면에 싸서 초장을 찍어 먹어야 제맛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밥반찬으로 먹을 때는 깻잎에 싸먹는 것보다 입안에 오감이 감도는 양념회가 제격이다.

아내가 금방 버무린 열무 겉절이. 열무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놓았다.
 아내가 금방 버무린 열무 겉절이. 열무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놓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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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가위로 열무 겉절이를 자르려고 하기에 그냥 먹는 게 좋다며 말렸다.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맛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자랐고, 언젠가부터 버릇이 되었다. 줄기를 자르면 먹기에 편하지만, 입가에 양념이 묻어야 겉절이의 매콤한 향과 상큼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맛있다며 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니까 반찬을 만든 아내도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자리를 뜨지 않고 "맛이 어때요?"라며 자꾸 되물었다. 성가시도록 묻는 아내에게 "응, 자기는 말이지 생각은 좀 띨띨해도 손맛은 천재여 천재!"라며 재래시장을 고집하는 이유도 얘기해주었다.

"내가 재래시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기하고 함께 다니면서 구경하는 재미, 흥정하는 재미, 그리고 반찬에서 느끼는 깊은 맛 때문이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내의 손맛, #재래시장, #병어 양념회, #열무 겉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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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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