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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판스워스 화가는 돌이 많은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수도 워싱턴으로 가 있는 동안 고향의 돌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에린 판스워스 에린 판스워스 화가는 돌이 많은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수도 워싱턴으로 가 있는 동안 고향의 돌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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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날아온 여류화가 에린 판스워스(33·Erin D. B. Farnsworth), 그녀의 금빛 머리칼은 길고 눈부시다. 훤칠한 키에 정교하게 조각된 석고상 같은 얼굴과도 잘 어울려 그야말로 금발미인이다. 한국에는 군의관 남편을 따라왔지만 창작과 전시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부터 송탄국제교류센터 로비에서 수채화 그림 '돌 그림전'(Arranged Stones)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하는 첫 개인전이었다. 지난 12일 전시를 마치고 곧바로 가까운 진위면의 한 농장으로 작품을 옮겨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버섯을 재배하는 농장주 박순애씨가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든 갤러리에서 주민들이 출품한 도자기 공예전시회와 함께 돌 그림전시회도 유치했다. 비록 화가의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한국사람들에게도 자연의 일부로서 너무나 친근한 돌멩이 그림을 보면서 고향을 느끼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돌 그림전 시리즈는 길을 가다가 주웠던 매혹적인 돌멩이들에게서 얻은 영감을 통해 나온 작품입니다. 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채색하는 대신 소박한 실내장식과 대비시켜서 돌멩이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돌멩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림의 주체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구성하고 흥미있는 그림으로 변화시킨 돌은 여전히 살아있는 주체입니다. 저는 또한 돌멩이를 묘사하기 위해 물감으로 수채화로 그렸는데, 그 이유는 돌의 밝은 면과 반투명한 성격을 띤 자연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죠."

에린이 오로지 돌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배경에는 고향이 있다.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미국 중서부의 유타 주는 지독한 산골이었다. 항상 눈에 보이고 발에 차이는 것이 돌멩이나 바위였다. 그러나 정작 고향에 있을 때는 그 흔한 돌을 그림의 소재로 여기지 않았다. 유타 주에서 브리검 영 대학교(BYU)를 다니며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수채화 물감으로 인물화를 그리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2001년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동부의 워싱턴으로 이사한 그녀는 비로소 돌멩이나 바위투성이의 산들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았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GWU) 석사과정에 들어간 그녀는 고향의 풍경을 상기시켜 주는 예쁜 돌멩이들을 수집해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에린의 돌 그림이 송탄국제교류센터의 로비에 전시되고 있는 동안 미국에서 시부모님이 방문했다. 돌의 투명하고 맑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녀는 수채화를 선택해 그렸다.
▲ 에린의 시부모님과 두 딸 에린의 돌 그림이 송탄국제교류센터의 로비에 전시되고 있는 동안 미국에서 시부모님이 방문했다. 돌의 투명하고 맑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녀는 수채화를 선택해 그렸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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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소재로 삼기 위해 투박한 돌멩이부터 부드러운 조약돌을 주워 모았고, 매우 윤이 나게 가공했거나 절반쯤 값진 보석이 박힌 돌은 호주머니를 털어 샀지요."

그녀는 돌멩이 그 자체의 자연스런 모습부터 인간의 손길에 의해 부서지고 연장으로 깎여지거나 연마되어져 윤을 내며 장식용으로 매매되어 실내공간 안으로 들어가 진열되기도 하는 돌멩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얀 배경의 화폭에 다른 실내장식물과 돌멩이를 배열하기도 하고 나뭇잎과 풀 같이 유기체적인 요소들과도 대비시켜 보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것이 원래 있었던 원초적인 장소를 일깨우며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도록 했다. 

에린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배웠다.

"저의 친정 부모님 두 분이 화가이시고 저의 친지들 가운데서도 예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묘사하고 채색하는 법, 조각과 도자기 빚는 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11살 무렵 방학 때 어머니께서 저에게 정확하게 얼굴의 균형을 잡아 묘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영향으로 저는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됐죠."

그녀는 2001년 학부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개인전 및 단체전을 할 만큼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해왔다. 2010년에는 남편이 발령을 받은 일본 아오모리 현에 머물면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남편은 지금 송탄 미공군 K-55부대에서 가정의학전문의로 근무한다. 2011년 8월에 한국으로 왔는데, 아쉽게도 올 여름 남편이 새로 발령받은 독일로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불과 1년만에 한국을 떠나게 돼 아쉽습니다. 한국은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녀는 자신만을 위해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하게 나누고 있다. 미군기지 안에서 그림을 가르치기도 하고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내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그림과 영어회화 교사로도 봉사한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지역의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지 못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신 그녀가 존경하는 한국의 화가로는 권경엽과 문범 화가를 꼽았다.

남편 데이비드 판스워스 씨(왼쪽에서 두 번째)는 송탄 미군기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다. 아버지 리처드 씨도 의사로 예술가 집안인 처가와는 대조적이다.
▲ 에린 부부와 함께 남편 데이비드 판스워스 씨(왼쪽에서 두 번째)는 송탄 미군기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다. 아버지 리처드 씨도 의사로 예술가 집안인 처가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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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타 주는 모르몬교의 성지로도 유명한 곳,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였다. 마침 평택을 방문하고 있는 그녀의 시아버지 리처드 판스워스(62)씨는 청년시절이었던 1960년대 말과 30여 년이 지난 2004년 두 번에 걸쳐 모두 6년간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활동했다며 그 때 배운 한국어를 서툴게 구사했다. 

"한국을 떠난 지 6년 만에 왔어요. 저는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해요. 한국을 한 번 다녀간 외국인들은 다들 자기 나라에 가면 홍보대사가 됩니다."

리처드씨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유타에서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며 아들 데이비드씨도 의사로 길렀다. 자신의 집안은 그림과 거리가 멀지만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화가 며느리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덧붙이는 글 | 평택시사신문에 게재했습니다.



태그:#에린 판스워스, #돌 그림전, #송탄국제교류센터,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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