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현재 100여 분의 탑승객들이 법원으로부터 벌금형 등의 약식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이런 탄압에 맞서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기소된 분들이 자신의 의지와 희망버스 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기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각종 기금 마련 등 모금 운동도 계획 중입니다.
 
쌍용자동차 22분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연대하기 위해 19일 3시에는 범국민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도 희망버스를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기자 말>
 

희망버스를 타자는 송경동 시인의 글을 읽고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사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과 벼랑 끝에 내몰린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내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면서 나 또한 고통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알고 싶지 않은 일을 굳이 꺼내어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야만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며 희망의 버스를 타자고 했다. 나는 솔직히 그것이 희망의 버스가 아니라 절망 버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시작도 하기 전에 밀려왔다. 희망을 노래하는 버스는 달콤하지만 불가능한 꿈이었고 절망의 현장으로의 초대였다.

 

절망의 현장이었지만 어쩐지 가야만 할 것 같은 초대를 받고서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평화바람' 식구들과 희망밥차를 하게 됐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김밥이나 식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항상 안타까웠다. 행복하게 먹고 살자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밥상은 받아야 한다는 신념(!)도 있었던지라 밥차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 24시간 불 앞에서 육수를 끓이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고단했지만 땀이 섞인 국밥을 사람들에게 나눌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설렜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조직된 사람들도 활동가들만도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도 있었고 휴가를 내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너무나 다양해서 꼭 찍어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해고가 곧 노동자들에게는 살인을 의미하며 그 일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김진숙이라는 사람,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있었다.

 

밥차 끌고 간 부산 영도... 그곳에서 만난 희망

 

내가 김진숙 지도위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3년 한진중공업 회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다 85호크레인에서 생을 마감한 김주익 열사를 통해서였다. 추모사를 꾹꾹 읽어가던 그 여성의 목소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해져 가슴을 후벼팠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죽음의 길로 가고 있었고, 나 역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뜨거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버스를 통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크레인 위 그 쟁쟁한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나는 그녀를 올려다 볼 수 없었다. 희망버스를 마치고 공장을 나설 때 사람들은 김 지도위원과 해고노동자들에게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있었지만 나는 약속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국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것 이외에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망설이고 주저하는 이유가 무얼까. 사진집 'CT 85'를 읽고 알게 됐다. 흰머리가 가득한 채 웃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 김주익 열사를 위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도사. 변하지 않는 회사는 살인과도 같은 해고를 저지르고 그녀는 조금 늙어 있었지만 세상은 그녀를 다시 크레인 위로 떠밀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세상에 암담함을 느꼈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움찔 하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들의 비극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나 자신의 모습.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괴로워 주저하고 망설이고 외면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버스를 통해 인간적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했고,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가 그 토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이 끝없이 함께 하면 뭔가 조금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됐다. 잊고 지냈던 '연대'라는 말이 내 가슴으로 다가 왔다. 희망버스는 그렇게 달려가기 시작했고 함께 했던 무지개 같은 사람들은 희망의 증거가 됐다. 나에겐 절망의 버스로 시작해 희망의 버스로 끝난 해피엔딩 드라마였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노사합의가 이뤄졌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김진숙 지도위원이 걸어서 크레인을 내려오는 순간 희망버스는 내 기억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희망버스를 기억하라... 기묘한 자극제

 

그런데 난데없이 부산법원에서 약식명령서가 날아왔다. 불법주거침입과 교통방해, 집시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벌금을 내라는 통보다. 공장의 주인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초대에 기꺼이 함께 한 것이 불법주거침입이고, 경찰의 차벽에 가로 막혀 거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교통방해이고, 밤을 새워 함께 공연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밥을 나눠먹은 것이 해산명령 불응이며 야간집회란다.

 

알립니다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070-7168-9194

hopebus@jinbo.net 

트윗 @hopebus85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반사회적, 비윤리적인 탄압으로 현재 100여분의 탑승객들이 벌금형 등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이런 탄압에 맞서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에게 그러했듯 외롭게 법정투쟁에 나선 희망버스 승객들을 함께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희망버스 운동을 지지해주셨던 많은 이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합니다. 먼저 기소된 분들이 자신의 의지와 희망버스 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기고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는 지금껏 공동변호인단과 대책모임을 구성해서 함께 해주시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조만간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각종 기금 마련 등 모금 운동도 계획 중입니다. 작년에 함께 나누었던 연대의 마음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너무나 소심하게도 밥 퍼준 일이었다. 죄목으로 열거된 것이 부끄럽게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최루액에 고통스러워할 때 삶고 있는 감자 냄비가 엎어질까, 국밥 끓이던 솥단지가 엎어질까 노심초사 했던 게 전부였다. 아마도 밥차를 끌고 가며 함께 도와줄 이들을 찾고자 이름을 올리고 전화번호를 남겼던 것이 빌미가 된 듯하다. 그 수천의 사람들은 어떠한 자의 소집 명령에 온 사람들도 아니고 조직을 갖지도 못했으니 경찰이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희망버스를 기억하라는 자극제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현장에서 잊고 살아 왔을 사람들에게 다시금 희망버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니 오히려 감사 표시라도 해야 할까! 혹시라도 국가 기관이 희망버스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하시길 바란다. 희망버스는 여러모로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딸기님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회원입니다. 


태그:#희망버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