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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활짝 핀 청산도. 본디 멋진 청산도를 더 멋스럽게 해주는 풍경이다.
 유채꽃 활짝 핀 청산도. 본디 멋진 청산도를 더 멋스럽게 해주는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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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배경으로 유채꽃과 어우러진 돌담길이 펼쳐진다. 밭을 따라 야트막하게 쌓인 돌담과 흙길도 멋스럽다. 돌담 너머 밭에선 푸른 빛을 띤 청보리와 마늘이 하늘거린다. 노랑 유채꽃과 어우러진 마늘·보리밭이 잘 다듬어진 정원 같다. 몸도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오른다. 벅찬 감동이다.

마을 풍경도 옛 모습 그대로다. 구들을 깔고 흙을 올려 만든 구들장 논과 계단식 다랑이 논도 있다. 섬 고유의 장례풍습을 엿볼 수 있는 초분도 보인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불러온다.

그 길을 걷는다. 싱그러운 봄내음에 금세 긴장이 풀어진다. 몸도 마음도 느슨해진다. 부러 싸목싸목 걸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풍경에 취해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길도 걷기 편하게 다듬어져 있다. 이름하여 '청산도 슬로길'이다. 하늘하늘 걸으면 걷는 맛이 더 별나다.

취향에 따라 골라 걸을 수 있도록 특성에 따라 11개 코스로 구분해 놓았다. 흙돌담을 따라 걷는 길도 있고, 바다풍광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도 있다. 길이도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42.195㎞에 이른다.

청산도 도청항. 청산도의 관문이면서 슬로길의 출발점이다.
 청산도 도청항. 청산도의 관문이면서 슬로길의 출발점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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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슬로길 1코스.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흙돌담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청산도 슬로길 1코스.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흙돌담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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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1코스. 슬로길의 출발점으로 청산도의 관문인 도청항에서 선창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선창 앞쪽 너른 길에서는 청산도의 현재를, 뒤쪽 골목길에선 청산도의 과거를 만날 수 있다.

길은 도락리 안길을 지나 서편제 촬영지, 드라마 '봄의왈츠' 세트장, 화랑포 갯돌밭으로 이어진다.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가는 돌담길 양옆으로 노랑 유채밭이 꿈속처럼 몽롱한 풍경을 연출한다. 영화 <서편제>에서 진도아리랑 가락에 실어 애절한 한을 마음껏 풀어냈던 그 길이다. 흡사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 같다.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쟁기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밭을 가는 소와 농부. 청산도 슬로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밭을 가는 소와 농부. 청산도 슬로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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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독특한 장례풍습인 초분. 가묘 형태로 3년 정도를 지낸 뒤 본장을 한다.
 청산도의 독특한 장례풍습인 초분. 가묘 형태로 3년 정도를 지낸 뒤 본장을 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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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왈츠 세트장에서 화랑포로 가는 길엔 걸음을 멈춰 뒤를 틈틈이 돌아봐야 한다.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지나온 길도 모두 절경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바닷가에 길게 쌓인 돌무더기도 눈에 들어온다. 섬사람들이 바닷고기를 가두기 위해 만들었던 독살이다.

화랑포를 휘돌아 가면 청산도 사람들의 독특한 장례풍습인 초분과 띠무덤도 만난다. 초분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이엉과 짚으로 덮어두었다가 일정기간 지나 본매장을 하는 풍습이다. 섬지방에서 주로 행해지는 장례풍습인데, 청산도에는 최근까지도 이 풍습이 남아있다.

가히 청산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코스다. 5.71㎞로 걷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걸음이 느릴수록 더 보이고 더 만날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 범바위로 통하는 슬로길 6코스다.
 청산도 슬로길. 범바위로 통하는 슬로길 6코스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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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느림보우체통. '슬로시티' 청산도를 빛내는 우체통이다. 1년 뒤 배달해 준다.
 청산도의 느림보우체통. '슬로시티' 청산도를 빛내는 우체통이다. 1년 뒤 배달해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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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와 칼바위 능선을 넘으며 탁 트인 바다의 전망을 조망하는 5코스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1년 뒤 배달되는 느림보 우체통도 이 길에서 만난다. 청산도 사람들의 독특한 농경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랑이논과 구들장논, 오래된 돌담을 만날 수 있는 6코스와 7코스도 인기다.

가파른 산을 깎아 층층이 만든 다랑이 논과 한옥에 사용했던 구들구조를 논에 차용한 구들장논이 애틋하다. 쌀 한 톨이라도 더 얻기 위한 섬사람들의 눈물겨운 애환과 지혜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도시에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생태적 지혜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면서 편안한 정겨움도 묻어난다.

뿐만 아니다. 슬로길 코스엔 저마다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다양한 꽃과 나무가 반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일 수 있는 쉼터도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걷기를 더 재밌게 해줄 슬로걷기축제도 30일까지 열린다. 청산도 사람들이 손수 거둔 갖가지 특산물을 싸게 살 수 있는 특산물 판매장도 들러볼만 하다. 돔, 농어, 해삼, 멍게, 전복 등 청정바다에서 갓 잡아온 신선한 회도 맛볼 수 있다.

생선회, 전복죽 등 전통 해물음식도 특별한 맛이다. 성게비빔밥도 별미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섬사람들의 소박하고 유순한 심성은 '슬로시티' 청산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래저래 멋진 섬이다.

상서마을 돌담길. 슬로길 걷기를 더욱 여유롭게 해주는 풍경이다.
 상서마을 돌담길. 슬로길 걷기를 더욱 여유롭게 해주는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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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전복죽. 청산도 앞바다에서 잡은 전복을 푸짐하게 넣어 끓인 죽이다.
 청산도 전복죽. 청산도 앞바다에서 잡은 전복을 푸짐하게 넣어 끓인 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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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아름다운 섬 청산도가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서편제'를 통해서였다.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청산도의 돌담길은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 찾으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드라마 '봄의왈츠', '해신'도 청산도를 배경으로 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청산도는 본디 매혹적인 섬이었다. 면적 41.8㎢로 적당한 크기에 산과 들판, 마을, 길 그리고 바다가 소박하면서도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섬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생활공간과 들판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섬마을 곳곳이나 매혹적인 언덕길 어디선가 정말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만 같다. 청산도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도심 생활에 찌든 때를 훨훨 떨쳐버릴 수 있는 청산도는 남도의 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섬이다.

청산도 슬로길. 앞으로 보이는 풍경도, 뒤를 돌아 보는 경치도 아름답다. 봄의왈츠 세트장에서 화랑포 구간이다.
 청산도 슬로길. 앞으로 보이는 풍경도, 뒤를 돌아 보는 경치도 아름답다. 봄의왈츠 세트장에서 화랑포 구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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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4월 14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슬로길, #청산도, #느림보우체통, #유채밭, #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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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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